나도성 중소기업정책개발원 이사장, 경제학 박사
전 중소기업청 차장

나도성 전 중소기업청 차장
나도성 전 중소기업청 차장

최근 한국경제는 무역수지적자 행진이 계속되고 성장률도 잠재성장을 밑도는 상황이다. 반도체 등 주력산업 수출부진과 중국시장의 침체 그리고 미중간 패권다툼 등 구조적 악재가 겹치고 있다. 산업현장이나 주변의 골목상권을 가보면 한국경제의 밑바탕이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빈공장, 빈가게, 빈건물 들이 즐비하다. 특히, 국민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는 무역진흥을 위해 대통령까지 나서서 있고 중소기업을 살리고자 소상공인 손실보상금 지급, 벤처생태계 확산, 규제혁파, 납품단가연동제, 기술탈취 근절 등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인 듯하다. 경제가 회복되기 보다는 장기불황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작금의 한국경제는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와 함께 디지털 대전환과 글로벌 경제환경의 급변과 같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기존의 정태적 사고와 대응으로는 문제 해결이 난망하다.

정부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서 기업들이 마음 놓고 기업가적 혁신역량을 발휘토록 해야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우는 양상이 다르다. 시장작동에만 맡겨 놓으면 자금, 인력, 기술, 경영역량 등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대량 아사하게 된다. 그렇다고 기존의 백화점식 정책지원을 이름만 바꾸어 늘린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중소기업 정책의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전환이 필요하다. 개별기업에 대한 퍼주기식 정책지원을 지양해야 한다. 디지털시대에 맞도록 중소기업들간의 네트워크 협력을 촉진해야 한다. 그동안의 창업 및 성장지원 위주의 정책에서 사업전환, 회생 및 파산, 그리고 M&A 촉진 등 구조전환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 중소기업정책은 기업의 생-노-병-사 사이클상에서 ‘생-노’에 관심을 두고 ‘병-사’에 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 더구나 최근처럼 기업의 생-노-병-사 사이클이 짧아지고 변화무쌍해지는 상황에서는 ‘생-노’보다는 더욱 더 ‘병-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더하여 신속한 ‘병-사’를 통해 ‘생-노’와 유기적으로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 중소기업정책에서 아쉬움이라면 기업들이 아프고 죽어갈 때 ‘왜, 어떻게, 어떤 속도’로 퇴출시켜 나갈지에 대한 기본철학과 실천적 방법론이 부족했다. 변화에 부응한 사업전환, 신속한 회생과 퇴출, 그리고 기업간 결합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중소기업정책에서 ‘생-노’와 ‘병-사’간의 정책적 불균형은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려서 계속 강화되었다. 스타트업 촉진과 기업성장 지원은 표얻기에 도움이 되지만 구조조정과 퇴출 촉진은 표를 깍아 먹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중소기업정책이 1500개가 넘을 정도로 넘쳐나고 세계일류를 자랑한다. 하지만 정작 중소기업 현장에서 정책 체감도는 낮다. 생-노-병-사 사이클에 맞는 정책의 균형적이고 유기적인 상호작용 부족 때문이다.

최근 금융위원회에서는 STO(Security Token Offering)허용 방안을 확정하고 올해 하반기 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STO는 제도권을 통한 토큰증권 발행 허용을 의미한다. 그동안 비공식적 코인시장에서 발행되거나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던 코인 중에서 자산이나 비즈니스모델을 기반으로 그 가치평가가 가능한 코인을 토큰증권으로 발행을 허용하는 것이다. STO는 자산 및 비즈니스모델을 기반으로 한 코인을 증권시장에 편입하여 토큰증권으로 받아들여 제도권의 규제를 받으면서 시장거래를 촉진토록 한 것이다. 금융위원회의 STO의 허용방안은 ① 토큰증권을 전자증권법 제도상 증권발행 형태로 수용하며 ②직접 토큰증권을 등록·관리하는 계좌관리기관을 신설하고 ③투자계약증권·비금전신탁수익증권의 장외거래 중개업을 신설하는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동 STO 허용에 따라 조각투자를 통한 STO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그동안 시장에서는 미술품, 음악, 축산, 부동산, 중고명품, 골동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각투자 플랫폼들이 구축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토큰을 활용해 이들 자산의 분산투자에 기여해 왔다. 이러한 조각투자 플랫폼에서 개발한 토큰들이 STO를 통해 제도화되는 것이다. STO가 제도권에 편입되면 다양한 자산들이 디지털화되어 블록체인을 통해 분산원장에 기록되어 토큰화되고 시장에서 유통되면 시중의 자금들이 이러한 자산시장으로 유입되는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이에 더해 다양한 창의적 융복합 비즈니스모델들도 적절한 가치평가를 통해 디지털 토큰으로 분할되어 판매되게 되면 창의적 비즈니스모델의 사업화에도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ICO(가상화폐공개) 시장에서 비즈니스모델의 뒷받침 없이도 그냥 발행되어 널뛰기 하던 잡코인들의 사례를 볼 때, 창의적 비즈니스모델의 증권토큰화는 기존 증권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지름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중에서도 중소기업 회생촉진을 위한 STO전략은 가장 주목할만한 STO 비즈니스모델의 하나라 할 것이다.

현재 중소기업의 ‘병-사’ 관련 정책은 중소기업 사업전환 및 M&A지원, 회생 및 재기 지원, 법원의 회생 및 파산 절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소기업이 스스로 사업전환을 하고자 하거나 하는 경우 장기저리 자금을 지원한다. M&A를 통해 기업매각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원활한 M&A를 위한 정보 및 컨설팅을 제공한다. 중소기업들이 경영상 어려움에 봉착한 경우 주거래 은행을 통한 회생이나 워크아웃 등 지원 및 회생지원 컨설팅을 제공한다. 한편으로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법원에 의한 기업의 회생 및 파산절차가 통합적으로 제공된다. 아울러 실패기업의 재기지원을 위한 정책지원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병-사’ 관련 제도들은 파편화되어 있고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기업이 한번 실패하면 주변에서 다시 한번 밟아버리는 경향도 강하다.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좀비기업들이 신속히 사라지지 않는 경향도 강하다. ‘생-노’ 부문에 대한 과다한 정부정책에 의존해서 생존하는 기업들이 많고, ‘병-사’ 부문에서는 시장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제도적 분위기에서는 창의적 비즈니스모델이 개발되고 활용되지 않는다. STO 허용은 이러한 한국적 기업회생 시장의 근원적 변화를 추동할 기폭제가 될 것이다. 시중에는 부동자금이 대규모로 떠돌고 있다. 이들 자금을 중소기업 회생시장으로 끌어들이게 되면 중소기업의 30% 수준에 이르는 좀비기업들을 신속히 퇴출시킬 수 있다. 신속한 퇴출과 퇴출기업 자산의 축적은 새로운 혁신기업의 탄생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그동안 기울어진 ‘생-노’와 ‘병-사’ 부문과의 균형추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 회생시장의 STO 비즈니스모델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중소기업의 구조조정과 퇴출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분야별 구조조정 전문회사의 설립을 유인한다. 이들 분야별 전문회사들이 STO 발행주체가 되어 시장에 존재하는 분야별 워크아웃 및 파산대상 기업들을 전문적인 기업가치 평가를 통해 매입한다. 동 매입자금의 조달은 각각의 구조조정회사가 자체적으로 20%정도 조달하고 나머지 80%는 STO 토큰 발행을 통해 조달한다. 매입된 워크아웃 및 파산기업들은 패키지화되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된다. 뉴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기업의 구조혁신이나 자산매각 그리고 신규기업의 창업 등 다양하게 창출된다. 그야말로 융복합 창의적 비즈니스모델로 전환되어 통합된 실체로서 기업가치를 높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파산기업이 보유했던 기술 및 노하우 자산도 보존되어 더욱 더 기업가치를 높인다. 정부는 (가칭)중소기업 회생펀드를 조성하여 동 펀드를 통해 이들 구조조정회사에 시드머니를 제공하여 이들 회사들의 구조조정 및 퇴출 활동을 촉진한다. 정부의 펀드를 통한 최소한의 재정투입과 STO를 통한 시중자금의 유인 그리고 중소기업 구조조정회사의 전문적인 비즈니스 역량을 결합하면 회생 및 퇴출시장의 작동이 극대화하게 될 것이다. 특히 퇴출기업들이 가진 자산이나 기술, 그리고 경영 노하우 등이 사장되지 않고 구조조정 전문회사의 자산으로 축적되면서 이들 구조조정회사들의 미래가치는 더욱 상승하게 된다. 곧바로 STO투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에게도 그 이득이 환원된다. 그동안 개별 중소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과정에서 자산가치가 대폭 하락하고 미래 회생가능성도 거의 사라지는 상황에 있어 일대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구조조정 회사에 축적된 퇴출기업들의 경험 자산들은 새로운 뉴비즈니스 스타트업에 활용되는 소중한 재생자원이 될 것이다. 좀비기업의 신속한 퇴출과 창의적 뉴스타트업이 동시에 전개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중소기업 회생촉진을 위한 STO전략을 통해 한국 중소기업 정책의 생-노-병-사 사이클 전반에 걸친 균형추 회복과 창의적 융합 비즈니스모델이 다수 탄생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