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마다 봄철 관내 간판정비사업 ‘분주’
...그러나 상권은 침체, 새 간판 아래 '임대문의' 안내문
도심 벗어나면 폐업후 텅빈 매장
새 간판과 어울리지 않는 ‘임대’ 딱지만 즐비

경기도 북부의 한 소도시 풍경.
경기도 북부의 한 소도시 풍경.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경기 북부의 한 소도시는 방금 설치한 듯한 세련된 디자인의 간판으로 중심가 일대가 장식돼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은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각종 가게가 밀집한 반경 약 200m 가량의 상가에선 거의 3곳 중 한 곳이 새 간판을 매단 빈집들이다. 그 대부분은 ‘임대문의’나, ‘매매’라는 딱지가 유리창에 붙어있다. 새롭게 간판 정비를 한 낡은 ‘유령도시’라고 할 만하다.

5월을 앞두고, 전국의 각 시··구마다 간판정비사업 계획을 실행하느라 분주하다. 주로 LED조명을 곁들인 표준화된 디자인으로 관내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체의 광고물과 간판을 바꾸는 내용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간판정비사업이 상권 활성화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장사가 안되어 문닫은 빈 건물에 새 간판만 덩그러니 매달려있는 이색 풍경이 늘어나고 있다. 예년처럼 올해도 경기침체로 인해 새 간판 교체와는 무관하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나 소기업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른자위 상권’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부도심이나 변두리 상권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방은 물론, 서울·수도권도 마찬가지다. 외곽 또는 부도심권에선 ‘임대 문의’라는 안내문이 붙은 가게에 새로 설치한 산뜻한 간판이 매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도시경관이나 디자인 개선을 내세운 획일적 자치행정과 엇나가는 현실을 말해준다.

지자체 ‘옥외광고 소비쿠폰’ 제도로 매년 간판정비

이같은 현상은 특히 각 지자체가 지역상권 활성화를 명분으로 실시하는 ‘옥외광고 소비쿠폰’ 제도 실시 이후 더욱 잦아졌다. 행정안전부가 주도한 ‘옥외광고 소비쿠폰’ 제도는 자영업체나 소기업 한 곳당 200만~300만원씩 간판 설치비를 지원해주는 내용이다.

··구청은 주로 해당 지역의 옥외광고협회와 연계, 관내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소비쿠폰’제도를 시행하는게 보통이다. 이를 통해 가게 돌출간판이나, 지주이용간판, 옥상간판, 입간판 등을 설치해준다. 자부담없이 간판을 설치해준다기에 건물주나 자영업주들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최근 수도권의 많은 지자체들도 5월부터 2023년 옥외 광고 소비쿠폰(간판교체) 지원사업 신청자를 모집하고 있다. 대부분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위해 도시의 미관을 해치거나 노후화로 인하여 안전을 위협하는 간판 등의 정비를 지원하는 것”이란 취지다. 보통은 1개 사업장(자영업체 등) 당 최대 300만 원 이내에서 간판 교체비용을 지원한다.

지난해부터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되고 있는 ‘옥외광고 소비쿠폰’ 제도는 관내 도시미관과 함께 특히 불법광고물 퇴치를 명분으로 한 것이다. 일부 지자체에선 “아름답고 세련된 간판으로 교체하면, 방문객도 늘어나고 상권도 활성화될 것”이란 명분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현실도 그러한지는 입증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영업자들은 “간판 새로 바꾼다고, 장사가 잘 된다는 법이 어딨냐”고 반문한다.

경기 북부의 한 소도시 가로 풍경.
경기 북부의 한 소도시 가로 풍경.

빈 가게의 오래된 낡은 간판…‘도시의 흉물’

간판정비로 교체한 간판의 수명은 보통 3년이다. 본래 그 이상이 되면 다시 간판정비의 대상이 되지만, 예산 등의 이유로 현실적으론 그 보다 훨씬 오래 간다. 불경기로 인해 세입자가 폐업한 후 임대도 잘 안되고, 가게가 오랫동안 비어있다 보면 자연스레 ‘흉물’이 되곤 한다. 그래서 서울 외곽이나 지방 소도시에 가면 빈가게에 낡은 간판만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도시미관은 물론, 오히려 상권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일부 지자체들은 지역 옥외광고협회 등과 협조, 철거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 자칫 건물주의 재산권과 충돌할 소지가 커서, 그마저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골머리를 앓다 못해 아예 허가 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연장 신고를 하지 않은 낡은 간판이나 광고물을 한시적으로 양성화하는 지자체도 많다.

이들 지자체들은 “정해진 기한에 해당 간판 광고주나 옥외광고사업자의 신고”를 기다리곤 한다. 그러나 이미 망해서 나간 빈 가게인데다, 이를 제작․설치한 옥외광고업자들마저 폐업하거나,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지자체마다 “기한 내 신고 안하면 집중 단속 후 이행강제금 부과나 강제철거 등 엄정 처리할 방침”이라고 하지만 허공에 대고 삿대질하는 격이다.

그럼에도 매년 각 지자체 도시디자인과나 건축과 등은 앞다퉈 ‘소비쿠폰’ 제도를 활용해 간판정비사업을 반복하고 있다. 올해에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텅빈 상점이나 ‘임대문의’ 딱지만 붙어있는 가게, 그리고 그 위에 매달린 낡은 간판만 늘고 있다.

경기도의 한 지역 옥외광고협회 관계자는 “간판 교체할 때마다 고객들(자영업자들) 장사도 잘 되었으면 싶은데, 전혀 그게 아니어서 안타깝다”면서 “간판정비 뿐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실질적인 상권 활성화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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