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때마다 ‘공공기관 혁신’...기시감
개혁 대상 공공기관 14곳 중 12곳 ‘에너지’ 관련
한전, 매 먼저 맞나...정부, 전기요금 묶어둔 게 한몫
에너지 공공기관장, '잘릴까' 좌불안석

기획재정부가 재무위험기관으로 꼽은 14개 공공기관 중 (왼쪽부터)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지역난방공사 본사.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기시감, 또는 ‘데자뷰(deja vu)’가 다시 나타났다.

바로 ‘공공기관 개혁’이다. 5년마다 한 번씩 정권이 바뀔 때면, 여론과 의욕을 뒷배로 신 정부는 전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질책하며 이를 앞세운다.

이번 윤석열 정부도 공공기관 중 공기업, 그 중에서도 에너지 관련 공기업의 경영부실, 과도한 팽창 조직과 인력, 과다 임금 등을 들어 지난 정권의 이른바 ‘적폐’를 청산하고 과감하게 손본다는 방침이다. 전체적으로 공공기관의 공적 역할보다 경영의 효율에 중점을 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물론 경영의 효율화도 공공기관의 혁신책으로 기대되지만, 일본의 섣부른 전기, 철도, 도로, 수도 등 민영화 결과에서 볼 수 있듯 공공기관의 공적 역할 ‘폭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어쨌든 향후 부실 기관의 경영진은 퇴출되고, 임직원들 연봉은 줄며, 인력 감축으로 조직은 축소될 것이 자명하다. 그럼 왜 이같은 공공기관 개혁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습관적으로 이뤄질까.

국회 동의 없이 통치권자 혹은 정부 뜻대로 구조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권의 성향, 즉 ‘색깔’에 따라 공기업의 역할과 지향점을 바꿀 수 있는 점도 내포돼 있다. 신 정부는 공공기관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공기업 임원진을 정권 취향 인사들로 채울 수 있으며, 공기업 존재의 이유나 성격까지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공기업 등 공공기관 개혁은 언제나 시작은 ‘창대’하지만 마지막은 ‘미미’ 혹은 ‘미흡’하게 끝나 차기 정부에 또 다른 개혁의 빌미를 줘 왔다는 데 있다. 대대로 공공기관 개혁은 ‘낙하산’ 기관장이나 ‘알박기’ 인사, 민영화 여부 및 노조와의 갈등,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 등 의 각종 문제점을 반복적으로 노출시켰고, 그에 따른 논란이 거세질수록 개혁은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행태를 이어왔다. 이번 윤석열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을 눈여겨 봐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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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대상 공공기관 14곳 중 ‘에너지공기업’ 12곳

윤 대통령의 공공기관 개혁의지는 확고하다. 지난 6월2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공공기관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고연봉 임원진의 성과급 등 처우를 포기할 것과 과도한 복지제도의 축소 등 솔선수범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는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환수한 비용은 국고 또는 사회적 약자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내놨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고 말했다. 이는 해석에 따라 지난 문재인 정부 5년간 조직의 과도한 팽창과 재무 악화가 심화됐다고 인식, 앞으로 큰 폭의 구조조정으로 공기업의 기업성, 즉 ‘경영 효율화’를 이루겠다는 방침이다.

기재부는 먼저 ‘재무위험기관’을 솎아냈다. 기재부가 지난달 30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선정한 재무위험기관은 최근 수익성이 악화 또는 징후가 보이는 9개, 재무구조 전반이 취약한 5개로 꼽혔다. 수익성 악화(징후) 기관은 ▲한국전력과 발전자회사(남동·동서·남부·서부·중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다. 재무구조 전반 취약 기관은 ▲자원공기업(석유공사·광해광업공단·가스공사·석탄공사)과 ▲한국철도공사다. 이번 재무 상태 평가 대상은 자산 2조원 이상 또는 정부 손실보전 조항이 있거나 자본잠식으로 고시된 중장기 재무 관리계획 작성기관 39개 중 금융·기금형을 제외한 27개 기관이다. 눈에 띄는 것은 LH, 철도공사를 제외하면 한국전력을 포함해 14개 기관 중 무려 12개 공기업이 모두 에너지 관련 공기업이라는 점이다.

이번 평가는 20점 만점으로 ▲재무지표 ▲재무성과 ▲재무개선도를 분석했다. 먼저 16점으로 이뤄진 재무지표는 민간 신용평가법을 기본으로 사업수익성 및 재무안정성 지표의 과거 5년간 실적, 향후 전망을 파악했다. 기준은 매출액대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총자산수익률, 부채비율 등이다.

재무성과(4점)는 경영평가 점수를 활용해 재무·예산 운영성과의 최근 3년 등급을 산정했다. 재무지표 평가점수, 부채비율, 총자산대비 순차입금 비율이 평가 직전 2개년 연속 개선 할 경우 2점 가점을 줬다. 재무위험기관은 평가 결과, 총점 20점에서 14점 미만인 기관 혹은 부채비율 200% 이상인 기관이다. 기재부는 이 같은 평가는 민간 신용평가사 등급체계상 ‘투자 부적격’ 기준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만 아니었다면 재무구조 악화와 자금조달 어려움으로 경영위기에 놓일 수 있는 곳들이라는 것이다.

재무위험기관 14개의 평균 점수는 20점 만점에 8.7점이다. 전체 대상기관 27개 평균 점수인 13.5점보다 무려 5점 가량 낮은 점수다. 재무위험기관에서 제외된 13개(16.8점)보다는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재무지표는 재무위험기관이 총점 16점 중 겨우 6.2점으로 전체 평균(10.7점)에 못 미쳤을 뿐더러 비재무위험기관(14.0점)의 절반도 안 됐다. 재무성과에선 총점 4점 중 전체 평균이 2.3점이고 비재무위험기관은 2.4점, 재무위험기관 2.1점을 받았다. 14개 재무위험기관의 자산은 512조5000억원으로 전체 350개 공공기관(969조원)의 53%, 절반을 넘는다. 부채 비중은 전체 583조원의 64%인 372조1000억원으로 자산 비중보다 훌쩍 높다. 결국 정부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근거다.

‘미운털’ 한전, 매 먼저 맞나.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기자간담회에서 “한전 스스로 왜 지난 5년간 한전이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며 힐책했다.

이번 공공기관 개혁의 대표기관으로 한전이 대두된 것이다. 기재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1년도 경영평가’에서도 종합 보통(C) 등급을 받았음에도, 최근 재무상황 악화에서 비롯된 강도 높은 자구노력 필요성을 감안해 9개 자회사까지 포함, 임원 성과급을 자율 반납토록 권고했다. 결국 이번에 경고 받은 한전과 6개 발전사는 임원과 1직급 이상은 국제 에너지시세 폭등 고통분담 차원에서 성과급을 전액 반납했다.

한전은 지난해 5조9000억원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더욱이 지난 1분기에는 7조8000억원의 적자를 낸 데다 전체 부채 규모 또한 145조원대에 달해 정부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를 놀라게 했다. 추경호 부총리가 비판한 근거다.

▲한국석유공사 ▲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가스공사 ▲한국석탄공사 등 4개 자원공기업은 재무구조 전반 취약기관으로 지정됐다. 이들 기업은 해외투자로 인한 자산손상 및 저수익성 사업구조로 당기순손실이 누적돼 완전자본잠식 상태이거나 부채비율 300% 이상에 달한다.

한전 등 재무위험기관은 이달 말까지 ▲비핵심자산 매각 ▲투자·사업 정비 ▲경영효율화 방안을 포함한 5개년 ‘재정건전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집중관리 이행실적은 내년 발표할 2022년 경영평가 편람에 반영된다.

이번 경영평가를 받은 한전 등 주요 공공기관장들은 지난 정부에서 주요 보직을 맡다가 취임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번 재무 성과 평가 강화는 자진 사퇴 등 기관장 교체를 이끌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실제로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를 살펴보면, 현재 364개의 공공기관 중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곳은 68.9%(251개)에 달해 거의 10명 중 7명에 해당한다.

한 대학의 경제학부 교수는 “공적 기능을 제공하는 공공기관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맡은 공공서비스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그럼에도 경영평가에 따른 공공기관장 교체 등 구조조정 등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강도 높은 자구노력은 지극히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등 한전 산하 발전 공기업들은 전력을 생산한다. 한전은 이를 판매하는 형태로 분리돼 있다. 그러나 5개 발전자회사의 비즈니스모델이 대부분 유사할 뿐만 아니라 비능률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탄소중립 달성 등을 위해서는 한전과 자회사들의 역할이 큰 만큼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시 기재부는 한전을 포함한 모든 전 공공기관으로부터 인력 운용 현황을 보고받고, 인력 구조조정을 골자로 한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 방안을 보고한 바 있다.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한전의 방만 경영에다 그간 이뤄진 인력 증가 등 비효율 문제가 많다고 인식한 만큼 인력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간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면서 조직을 확대한 곳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 한전을 포함한 에너지 공기업들은 낮은 목소리로 불만을 표출한다.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문재인정부의 ‘공공성’ 역할 강조에 따라 지출이 늘고 적자가 쌓인 경우가 많다는 주장이다. 특히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 이후 정부의 서민 물가 안정 우선에 따라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 가격을 올리지 못한 에너지 공기업들의 고충을 이해해 달라는 볼멘소리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에서 한전 인력들의 행태가 경영실적 악화를 불러일으킨 면도 있다는 내부 고발자도 나왔다.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한 누리꾼이 ‘공기업 때려잡아야 함’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우선 “한전 직원들이 하는 일에 비해 돈을 많이 받는다”며 “교대 과장 20년 차가 1억 1000만원, 30년 차는 1억3000~1억4000만원을 받는다”고 밝혔다. 또한 작성자는 고액 연봉 한전 직원들이 “유튜브 보고 주식하고 놀고먹으며 받는 것임. 시간이 남아도니 골프, 테니스도 많이 함”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가라출장(거짓출장)’도 많음. 2만원짜리는 물론이고 일에 4만원짜리 1박2일 끊고 당일치기로 갔다 와서 회사 안 나옴”이라면서 “부장 정도 되면 법인카드도 사적 용도로 씀”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안팎으로 한전에 대해 혁신과 개혁이 절실하다는 지적과 함께 이번 전기요금 5원 인상으로 뭇매를 맞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에너지 공기업 기관장들 ‘좌불안석’

정부는 앞서 언급한 ‘경영평가’와 이달 수립되는 ‘재정건전화 계획’을 기초로 8월 초 한전을 비롯한 전체 공공기관 관리체계 개선 방안도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공공기관 관리를 책임지는 중점 부서가 기재부여서 이를 주무부처로 이양, 공공기관 자율·책임 경영체계도 재편하는 등 종합적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영 효율화를 명분으로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 수장들의 대거 물갈이도 있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돼 기관장들은 좌불안석이다. 특히 정권이 바뀌면서 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들이 주 대상으로 여겨져 더욱 그렇다.

구체적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지낸 정승일 한전 사장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적이 있는 원경환 대한석탄공사 사장 등은 이른바 ‘친문’ 인사로 꼽힌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황창화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도 비슷한 경우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 들어 문재인 정부의 대표 에너지정책인 탈원전은 ‘적폐’로까지 폄하되면서, 이에 앞장섰던 공기업 및 기관장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어 한전은 물론 관련 에너지공기업 수장들의 거취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이 강력한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예고하면서 뚜렷한 개선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기관장 해임은 물론 직원 성과급 삭감까지 단행하겠다는 공격적인 입장이라 더욱 엄혹하다.

재미있는 점은 한전과 한전 그룹사 사장은 대부분 문재인정부 임기 1년을 앞둔 지난해 4월 이른바 ‘알박기’ 논란 속에 임명된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이에 정부가 손쓸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지난 정부의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폭로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가 대놓고 사퇴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실상 경영평가 성과급 반납 압박과 일부 기관장들의 업무보고·정부회의 참석 배제 등 사실상 ‘알아서 나가라’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보여, 만일 임기 전 한 명의 기관장이라도 사퇴하게 되면 잇따른 사퇴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에너지 공기업 기관장 공모도 잇따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한국수력원자력 신임 사장 선임을 시작으로 한국가스공사·한국지역난방공사 등의 새 사장 공모가 속속 이어진다.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은 다음달 8일, 황창화 지역난방공사 사장은 오는 9월30일 임기 만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이 임기 만료로 새 기관장을 임명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기업은 당장 한수원·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 등 3곳에 불과하다.

이처럼 정권 교체 때마다 임기 관련 논란이 반복되고 있어 대통령과 기관장 등의 임기를 동조화하는 식으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현행법상 공공기관장 임기는 3년, 대통령 임기는 5년이라 새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임기가 어긋나 정책을 집행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이전 정부 기조에 맞출 수도 힘들 뿐 아니라 관계기관 간 업무협조에도 어려움이 적잖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 임기종료 때 기관장 임기도 만료된 것으로 간주하고, 기관장 임기 및 연임 기간을 각 2년6개월로 해 대통령 임기와 일치시키는 내용의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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