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 시장 ‘갑질’ 심해, 다단계 하청으로 수익성 미미
조달시장 겨냥, 원청·관공서 직접 공략
...안정적 수익 도모

사진은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수도권의 한 중소 사업장.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최근엔 조명업계나 건축자재업계, 옥외광고업계, 인테리어 및 금속창호업계, 디지털사이니지 제작업체 등에선 무조건 최저가가 아니라 비교적 합리적인 입찰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조달시장으로 대거 옮겨가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한층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경기도에 소재한 E 업체의 경우 몇 년 전만해도 기업이나 일반 생활 간판을 제작, 납품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20여년간 옥외광고업계에서 활동한 만큼 기술이나 영업을 비롯한 노하우도 상당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국내 간판 시장에서 업체간의 단가경쟁이 심화되기 시작하자, 조달청 나라장터에 주력하고 있다.

나라장터에서는 벤치, 안내사인, 버스 쉘터 등 다양한 공공시설물이 거래되는데, 옥외광고 업계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해당 시장에 접근하기에 매우 적합했기 때문이다.

또, 최저가 입찰로 제품을 납품해야 하느라 수입 보전은 커녕 손해 보는 경우가 많은 현실이지만, 조달시장은 일반 점포주들도 인터넷을 통해 최저가에 간판을 구입할 수 있는 생활광고 시장과 달리 제도적으로 수익도 보호받을 수 있다.

E 업체 관계자는 “민간시장에선 단가만 따질 뿐 품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최종 소비자가 대다수여서 업자들도 기술보단 단가경쟁에만 매몰될 수 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시장만 갖고 생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 E 업체는 민간 소비자에게 납품하는 광고물의 경우, 알음알음 찾아와 주문하는 정도의 소량만 소화하고 있다. 나머지 매출은 모두 조달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2차 밴더로 참여하는지라 원청인 건축 디자인 회사로부터 일감을 받아 제작 납품하고 있다.

다만 이 업체 관계자는 원청인 디자인 회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발주처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만한 디자인을 갖추고 관공서 관계자를 만나 영업을 하는 실행력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2차 밴더로 참여하는 제조업체의 경우 해당 사업에서 직접 발주를 받는 주체는 아니지만, 관공서 관계자가 제안 받은 디자인에 설득이 된다면 원청인 디자인 회사에 해당 제조업체에 제조를 맡기라고 주문하기 때문이다.

관광객 유치하려는 지방 도시, 공공 시설물 수주 경쟁

마찬가지로 나라장터에서 공공시설물을 제조 납품하는 F 업체 관계자는 “최근엔 지방 도시, 그 중에서도 버스 쉘터 교체나 녹지 공원에 설치되는 벤치 등의 시설물 발주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도권에서는 버스의 이동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설치하는 등의 버스 쉘터 현대화 작업이 대부분 마무리된 상태다. 또, 녹지 공원 역시 많이 조성이 된 상태여서 지자체들의 수요가 상당수준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대신 최근 지방 지자체들이 녹지 공원 조성사업과 버스 쉘터 현대화 사업에 관심을 보이면서 나라장터 내 발주량도 늘었다.

지방 도시들이 관광자원을 개발하면서 자기 지역의 생태와 문화를 보여주면서 관광객을 모을 수 있는 녹지 공원도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벤치, 각종 안내판 등 공공 시설물이 연중 꾸준히 나라장터를 통해 거래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버스 쉘터 발주량이 늘어난 것도 이처럼 도시 경관을 정비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지방 도시 중엔 지주에 안내판만 붙어있거나 벽돌로 지어놓은 식의 낡은 버스정류장이 많다. 이를 수도권처럼 각종 디스플레이와 통신장비를 사용해 현대화하는 교체 수량도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F 업체 관계자도 E 업체와 마찬가지로 조달 시장이 기존 민간 시장보다 훨씬 수익을 보전하기 쉽다고 답했다.

과거엔 조달 시장도 요즘의 기업 시장과 마찬가지로 최저가 입찰을 시행해 도산 기업이 속출하고 부실공사가 지적되는 등의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개선 움직임이 꾸준히 이어진 결과, 최근에 와선 적정 수준의 가격에서 입찰을 붙이도록 제도화했다. 그 때문에 하청 업체인 제조업체 입장에선 수익을 충분히 보전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으로 원청인 디자인 업체에 견적을 올리고, 디자인 업체는 여기에 자기들 수익을 덧붙여 입찰에 참가한다는 것이다.

또, 조달 시장에선 원청인 디자인업체로부터 바로 하청을 받는 것도 장점이다. 한 건축자재업체 관계자는 “민간 시장에선 제조 업체가 조달을 중개하는 대형 기획사 이하 몇 단계의 하청을 거쳐 제일 아래 단계에서 일을 받기 때문에, 자재와 인건비 등 상당 수준의 금액을 투자해야 하는 제조 업체입장에선 오히려 밑지는 경우도 있다”고 비교했다.

대형 전광판·조명업계 등 민수시장 위축…관급 사업 공략

최근 전광판이나 가로등, 투광등과 같은 조명제품을 만드는 업계에서도 관급시장으로 진출을 꾀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기능을 복합적으로 부가하는 제작기업을 선보이기도 한다. 단순히 시정홍보용 알림판과 같은 제품으로 납품하는 게 아니라, 미세먼지 등 대기정보를 홍보하는 등 특정 기능을 강조한 제품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는 민수시장의 전광판 수요가 확연히 줄어들고 있는 최근의 시장 상황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일반 상권이나 상업용 건물의 경우 전광판은 이미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보급이 많이 된 광고물이다. 점포들이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소비자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다. 전광판이 내걸린 거리가 익숙한 풍경이 되다보니, 시선을 줄만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시기가 된 것이다.

결국 민수시장에서 수익이 줄어들기 시작한 전광판 업체들은 관급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근 시‧도‧구청 등 청사에서 안내 전광판 설치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관급시장에 진입하려는 전광판 업체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텍스트만 표출하는 기존 전광판보다 동영상이나 정지 영상까지 함께 표출할 수 있는 전광판의 수요가 그나마 많은 편이다. 일부 업체들은 동영상이나 정지 영상을 함께 표출하는 미세먼지 등 대기정보 알림 전광판을 초등학교, 지자체 등 관공서에 납품하기 위한 별도 브랜드를 런칭하기도 했다.

최근 또 디지털사이니지 시장이 확대되면서 관공서나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공공 메시지나 데이터를 자사 서버로 받아, 전국에 설치된 자사 제품으로 전송, 자동으로 화면에 표출하는 제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기정보 안내 디지털사이니지의 경우는 대기정보, 기상정보, 시간정보, 문장표출 등을 두루 게첨하기도 한다.

전문 영상제작팀을 보유하고 있는 이 업체는 “표출 항목과 영상을 지속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라며 “제조업체마다 큰 차이점이 발생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술 평준화가 되어있기 때문에, 정보가 표출되는 디자인을 개발해 한층 밀착되게 조달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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