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의 또다른 ‘셀럽’…엔비디아 ‘젠슨 황’에 시선집중
APEC ‘CEO 서밋’, “‘글로벌 종합 빅테크’로 인식시킬 스킨십 마당” 美제재 맞선 中정부의 ‘엔비디아칩 금수 조치’ 반전시킬 기회로 기대 젠슨 황, ‘데이터센터, 컴퓨팅, AI, 자율주행 등 종합 빅테크 행보’ 가속화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APEC 2025’에서 이목이 집중된 인사는 단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수석 등이다. 북-미 회담의 물꼬가 트일 수 있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성사 여부도 주목된다. 그러나 이들 못지않게 시선을 집중시킬 인사가 또 한 사람 있다.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최강자 입지 재확인
젠슨 황의 방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만 출신답게 그는 주로 대만과 일본, 동남아를 순회하곤 했다. 이번엔 APEC 정상회의의 부대행사인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 마지막 날인 31일 특별 세션을 통해 AI, 로보틱스, 디지털 트윈, 자율주행 기술 등을 망라한 엔비디아의 비전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3자간 회동 여부도 주목되고 있다. 삼성과 SK는 엔비디아와 오픈AI, 소프트뱅크 공동의 거대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전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그런 만큼 이번 회동이 세계 AI 공급망 재편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젠슨 황의 APEC 참여는 그로서도 중요하다. 날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시총’ 세계 1위의 ‘엔비디아 아성’에 대한 도전 역시 거세게 일고 있다. 이에 엔비디아는 이미 ‘脫칩셋 기업’임을 선언한 바 있다. 더 이상 AI칩을 위시한 GPU, CPU 플랫폼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이에 차세대 GPU, CPX로 다각화된 ‘베라 루빈 플랫폼’은 물론, 데이터센터, 슈퍼컴퓨터, 로보틱스, 자율주행, 거대 AI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종합 빅테크’로 거듭나고 있다.
그 옛날 자그마한 ‘게임용 가속기 업체’의 추억은 까마득한 전설로 남겼다. 대신에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서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APEC은 그로서도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무려 1,700여개의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는 ‘최고경영자(CEO) 서밋’은 엔비디아의 현주소를 각인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벌써부터 그의 연설에서 어떤 내용이 나올 것인가에 관심이 높다. 이미 당일 컨퍼런스 티켓은 예전에 매진될 만큼 그의 존재감도 여느 국가 지도자못지 않다.
‘종합 빅테크’ 향한 엔비디아의 ‘대장정’
이달 들어서도 엔비디아는 전에 없는 행보로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 주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컨소시엄을 꾸려 400억 달러 규모의 ‘얼라인드 데이터센터’를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얼라인드 데이터센터’의 자금줄인 맥쿼리 자산운용은 블랙록의 ‘글로벌 인프라스트럭처 파트너스’, ‘인공지능 인프라 파트너십’(AIP), MGX,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엔비디아가 이끄는 컨소시엄에 ‘얼라인드 데이터센터’를 매각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로써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 AI아키텍처에 자사 AI칩을 공급해오던 ‘부품업체’가 더 이상 아니다.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글로벌 AI 기업으로서, 인프라를 통한 AI산업화의 선두 주자로 나선 것이다. 이번에 인수한 ‘얼라인드 데이터센터’는 짧은 기간에 무려 50곳으로 데이터센터를 확장한 운영기업이다. 미국, 멕시코,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에 걸쳐 5기가와트 이상의 시설과 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4일엔 “세계에서 가장 작은 AI 슈퍼컴퓨터”를 엔비디아가 공개했다. 자체 AI컴퓨팅 역량도 막강함을 과시한 셈이다. 젠슨 황 CEO는 공개된 AI 슈퍼컴퓨터 ‘DGX Spark’에 대해 “차세대 혁신 물결을 일으킬 AI 컴퓨터로서, 세계에서 가장 작지만 강력한 AI 슈퍼컴퓨터”라고 했다. 컴팩트한 데스크톱 폼팩터에 ‘페타플롭’의 속도, 128GB의 통합 메모리, 최대 2,000억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AI 모델 추론 능력을 과시한다. 또 엣지에선 최대 700억 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모델을 미세 조정할 수 있다.
젠슨 황은 “개발자는 AI 에이전트를 생성하고 고급 소프트웨어 스택을 로컬에서 실행할 수 있다”며 “챗GPT가 AI 혁명을 일으켰다면, DGX-1은 AI 슈퍼컴퓨터 시대를 열었고, 이번 DGX Spark를 통해 모든 개발자에게 AI 컴퓨터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선언했다.
물론 경쟁자들의 도전도 거세다. 여러 빅테크들이 일종의 反엔비디아 ‘칩동맹’이라고 할 UA링크(Ultra Accelerator Link)를 결성한 것도 대표적인 움직임이다. AI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이른바 엔비디아의 독자 기술 생태계인 ‘NVLink’와 직접 경쟁하는 ‘연합군’이 출현한 셈이다.
UALink는 데이터센터의 ‘스케일업 AI 시스템’의 차원을 높이고 있다. 고속, 저지연 통신을 위한 새로운 AI칩 표준을 개발하는 등 별도의 기술 생태계도 구축하고 있다. 인텔, AMD,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HPE, 시스코, 브로드컴, 그리고 엊그제는 애플도 UA링크 이사회에 합류했다.
이에 엔비디아와 젠슨 황도 다급해졌다. 궁여지책으로 오랜 숙적인 인텔과 손을 잡았다. 인텔의 CPU 아키텍처 ‘x86 SoC 칩’을 엔비디아 칩렛과 연결하는 등 새로운 기술 혁신을 위핸 50억 달러의 거금을 투자했다. ‘UA링크’에 맞서기 위한 ‘적과의 동침’을 택한 셈이다.
인텔의 x86 아키텍처는 CPU의 핵심이다. 앞으로 인텔은 엔비디아 RTX GPU 칩렛과 쉽게 통합될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된 ‘맞춤형 x86 SoC’(시스템온칩) 설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 SoC는 엔비디아의 고성능 CPU 및 GPU를 구동하는 PC 데이터센터에 탑재, AI 프로세스를 가속화한다. 인텔은 또한 데이터센터용 ‘엔비디아 맞춤형 x86 CPU’도 개발할 예정이다. 결국 엔비디아와 인텔 아키텍처가 엔비디아의 ‘NVLink’ 인터커넥트를 통해 연결된 것이다.
당시 젠슨 황도 직접 나서 “이 역사적인 협업을 통해 엔비디아의 AI 및 가속 컴퓨팅 스택과 인텔의 CPU, 그리고 방대한 x86 생태계가 긴밀하게 결합되어 세계 최고 수준의 플랫폼이 융합될 것”이라고 밝혔다. ‘UA링크’와 한판 정면 승부를 가려보자는 결기를 내비친 셈이다.
‘UA링크’, ‘차이나 리스크’ 등 도전 극복도 과제
알려져있다시피 엔비디아는 비슷한 시기에 차세대 AI를 겨냥, 오픈AI와 1,000억 달러 규모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른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다. 양사는 2026년 하반기부터 ‘베라 루빈’ 칩을 통해 최소 10기가와트 규모의 AI 용량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오픈AI는 특정 기간 동안 ‘귀하신 몸’으로 인식된,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을 넉넉하게 확보할 수 있다. 10기가와트는 400만~500만 개의 GPU에 해당한다. 엔비디아는 컴퓨팅 아키텍처를, 오픈AI는 고도의 생성AI 개발 역량을 지닌 만큼 서로가 보완하며 시너지를 기한다는 의미다.
‘호사다마’격으로 엔비디아와 젠슨 황에게 최근 가장 큰 걸림돌이 생겼다. ‘차이나 리스크’다. 지난 9월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대중 제재’에 맞서 자국기업들에게 “엔비디아 AI 칩 사용을 자제할 것”을 권했다. 사실상 금수조치를 내린 셈이다. 젠슨 황은 이에 “우리는 아마도 그 어떤 국가보다 중국 시장에 더 많이 기여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그런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더 큰 의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저는 그 점을 이해한다”고 짐짓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문제의 ‘더 큰 의제’가 논의될 절호의 기회가 바로 APEC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엔비디아 역시 자사 칩의 대중 수출을 미·중 양국이 양해하는 ‘반전’이 APEC에서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또 라스베이거스 ‘CES’와는 달리, 수 천개의 세계 주요기업들과 좀더 긴밀한 ‘스킨십’을 하며, ‘NV링크’가 건재함을 알리는 모처럼의 기회를 만끽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젠슨 황과 엔비디아에게 이번 APEC은 더욱 절실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