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회사를 살렸다”…LG전자와 24년 동행

황명주 경성전자부품유한공사 부사장 부도위기 회사 인수...기술혁신과 현지화로 세계 각국으로 수출 견인

2025-10-10     박철의 기자
난달 9월 26일 본지는 중국 톈진 소재 경성전자부품유한공사 황명주 부사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 회사가 아니어도 내 회사처럼 일해야 합니다. 주인 의식이 기술을 만들고, 기술이 회사를 살립니다.”

중국 톈진의 경성전자부품유한공사(이하 경성전자) 황명주 부사장의 말에는 30여 년의 현장 경험이 묻어난다. 지난달 26일 LG전자 톈진공장과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이 회사를 찾았다.  공장 입구에는 중국어와 한국어로 씌여진 ‘작은 일에 정성을, 모든 일에 최선을, 결과에 책임을’이라는 사훈이 눈에 들어왔다. 

부도기업 인수해 재기…“생존보다 신뢰의 싸움이었다”

당시 그는 2010년 전후로 꾸준한 기술지원과 함께 별도로 현금  5억 원을 투자했던 중국의 현지 업체가 부도위게 몰리자 이를 회생시키기 위해서 2012년 태주에서 천진으로 긴급 호출됐다. 당시 김경호 대표와 함께 황 부사장은 채권자들을 일일이 만나 밤을 새다시피 하면서  “할부로 갚겠다”며 설득했고, 그 진심이 통했다.

“하루아침에 정상화는 불가능했죠. 빚을 갚으며 공장을 돌렸습니다. 신뢰가 기술보다 앞서야 회사를 살릴 수 있습니다.”

결국, 현지 공장을 인수해 경성전자 텐진 법인과 통합,  LG전자와의 거래 관계를 유지하며 재도약에 성공했다. 현재 톈진 공장은 전자레인지, 에어컨 등 LG 가전의 핵심 사출 부품을 생산하며, 생산량의 99%를 미국과 유럽 등으로 수출한다. 부도기업이 세계 수출 거점으로 거듭난 셈이다. 황 부사장은 34년간 금형과 사출 기술만을 다뤄온 전문가다. 그는 “중국의 금형기술은 이미 한국과 대등한 수준”이라 단언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이 앞섰지만, 지금은 설비 기술 면에서 중국이 빠르게 따라잡고 있습니다. 특히 장비 가격은 30% 저렴하면서 성능은 거의 비슷합니다.”

경성전자는 과거 독일·한국산 사출기를 사용했지만 현재는 전량 중국산 설비로 교체했다. 황 부사장은 “가격 경쟁력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세밀함, 정밀함, 문제 해결력은 한국이 앞선다”며 “품질 철학의 깊이가 진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경성전자의 모기업인 경남 김해의 경성정밀은 1997년 창립 이후 2001년 LG전자 창원공장 리빙사업부와 협력관계를 맺으며 성장했다. 이후 2011년 톈진과 태주법인에 이어 최근에는 베트남 공장까지 확장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금형 설계와 기술개발은 본사 연구소가 담당하고, 각 공장은 생산기지로 역할을 나누는 구조입니다. 기술은 한국이 뿌리이고, 현장은 세계로 뻗어 있는 셈이죠.”

경성전자는 현재 30여 건의 금형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20명의 연구진이 연구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내년에는 LG와 함께 인도 진출도 계획 중이다. 관세 절감과 인도 내수시장 공략이 목표다. 톈진 공장의 근로자는 약 550명, 이 중 한국인은 단 2~3명뿐이다. 황 부사장은 “경성전자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현지 근로자들은 명절에 고향을 다녀오면 30~40%가 돌아오지 않는 등 이직률이 높아요. 직업의식에 대한  목표가 조금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과급, 인센티브, 교육제도를 정착시켜 근속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조선족 근로자들의 초기 역할도 높이 평가했다. “초창기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기에 조선족들이 언어·문화의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현지 산업의 숨은 동력이었죠.”

환경규제 속 기술투자 — “10억 원 들여 공기정화시스템 구축”

중국에서 사업을 하며 가장 힘든 점으로 황 부사장은 ‘정책 불확실성’을 꼽았다.

“황사나 스모그로 대기질이 나빠지면 ‘황색경보’가 발령돼 공장을 절반만 가동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10억 원을 투자해 공장 내부를 밀폐형으로 바꾸고 공기정화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중국 산업의 급성장을 위협이 아닌 ‘자극’으로 본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자동화 설비와 공장 인프라 수준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국이 배워야 할 것은 싸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빠르게 바꾸는 구조입니다.”

현재 경성전자는 사출라인의 완전 자동화를 추진 중이며, 품질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스마트팩토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불량률 1% 이하를 유지하려면 설비 데이터의 정밀 분석이 필수입니다. 기술과 사람, 두 바퀴가 함께 굴러야 공장이 돌아갑니다.”

스마트팩토리화는 단순한 효율성 제고가 아니라, 글로벌 고객사 대응 속도와 품질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황 부사장은 기술력의 격차가 좁혀진 시대에도 한국 제조업의 본질적 강점은 여전히 ‘품질 철학’에 있다고 강조한다.

“중국은 빠르게 모방하지만, 한국은 ‘신뢰와 정밀함’이 뿌리입니다. 기술력의 차이는 줄었지만, 철학의 깊이는 다릅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경쟁력입니다.”

그는 13년간 중국 현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공장에서 보냈다. 새벽 5시에 출근해 24시간 돌아가는 설비를 관리하며, 현장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그의 팔에는 수많은 상처가 남아 있다.

“기술은 책상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손끝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손끝의 정성이 회사를 살립니다.”

“기술이 회사를 살리고, 신뢰가 회사를 키운다”

경성전자의 성장 스토리는 단순한 ‘협력업체 성공기’가 아니다. 부도 위기 속에서도 기술과 신뢰로 재기한 한 기업인의 생존 철학이자, 한국 제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에 대한 시사점이다. 톈진 경성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부품 하나에도 기술을 담고, 신뢰를 새기는 그들의 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