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평 칼럼] 정책 결정에는 과학성과 합리성이 우선이다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정책 결정에는 과학성과 합리성이 우선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정책 결정 과정을 보며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전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들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정반대로 뒤집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는 고질적인 관행이 되었다. 이는 양극화된 양당 제도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국가의 장기적인 비전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책의 연속성과 축적의 지혜가 중요함에도 ‘덧셈’이 아닌 ‘뺄셈’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그 결과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국민 불편과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다.
최근 마침내 인공지능(AI)의 특이점이 시작된다고 한다. AI가 그렇게 발전하는 것은 이미 학습하고 체득한 방대한 지식과 기술을 늘 출발점으로 해서, 주체나 시스템이 바뀌어도 그 위에 새로운 데이터를 더하고 알고리즘을 고도화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과를 부정하거나 초기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덧셈과 확장을 통해 혁신하고 변신한다. 사실은 인류의 발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확보된 선대의 지식과 경험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문명은 꽃피웠다. 그런데 유독 우리 사회는 왜 이 당연한 이치를 거스르는가. 공들여 쌓아 올린 지식과 경험의 탑을 스스로 허무는 우를 범하고 있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과 4대강 보 해체의 재추진 움직임은 이러한 뺄셈 정책, 즉 실익보다는 이념 중심적 정책 결정의 단적인 예이다. 깊이 있는 전문가의 검토와 과학적 데이터를 무시한 채, 특정 이념에 경도된 소수의 목소리나 형식적인 명분만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국가 정책을 변경하는 것이다. 납득하기 어렵다.
탈원전 정책은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다. 문재인 정부 때 편향된 환경 이념에 경도된 일부의 주장에 휩쓸려 탈원전이 시작됐다. 그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세계 제일의 원전 산업 생태계를 훼손하고, 원전 수출에 먹구름을 씌웠다. 윤석열 정부는 다시 원전 강국으로의 회귀를 선언했지만, 새 정부는 다시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원전은 기후 위기 시대의 탄소 중립은 물론, AI 산업에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전력 공급원으로서 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원전을 녹색 에너지원으로 분류하며 재개를 선언했고, 세계적으로도 원전 확대가 대세가 되었다. 한 번 가동을 멈춘 원전을 다시 살리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며, 관련 산업 생태계가 붕괴된 후 재건하기는 더욱 어렵다. 원전을 죄악시하는 비합리적인 정책은 국가의 성장 동력을 허물어뜨린다.
4대강 보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은 시작 때부터 명분만을 앞세운 극단적인 환경론자들에 의해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수질 개선과 생태계 복원을 명분으로 보 해체를 추진했다. 그 근거는 감사원 감사와 사법부에 의해 비과학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해체를 반대한다. 선진국의 수많은 강에 수많은 보를 설치하여 강물을 자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다시 보의 해체를 논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갈등을 치르고 있다.
일부 극단론자들에 떠밀린 이러한 실익 없는 뺄셈 정책들은 단기적으로는 그들의 자기만족이 될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고 국가경쟁력을 저하 시킨다. 사회에도 사회적 지능이 있다. 사회적 지능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집단적 역량이다. 사회적 지능도 인공지능처럼 더하고 통합되어야 발전하는 것이지, 빼고 분산시키면 탈레반적 폭거와 문화혁명적 퇴행을 겪게 된다. 이는 결국 사회를 퇴보시키고 국가를 쇠망으로 이끄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사회적 지능을 확장하는 노력을 해야 할 때다. 이념갈등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사회의 힘을 약화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 국가간 경쟁이 치열하고 첨단 기술이 사회 전반을 리드하는 오늘날에는 오직 사회적 지능을 확장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덧셈을 통해 발전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은 인간의 지식과 경험이 축적된 과학적 근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에 대한 과도한 우려로 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조사와 감시 등에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다. 실용이 중요하다. 의도와 이념을 줄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정책결정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