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대 열린다

국회, 가상자산의 ‘헌법’격 ‘디지털자산기본법’ 추진, 명문화 원/달러 및 국내 자금시장의 구조적 변화 초래 예상 알고리즘 기반보단 “‘준비금’ 기반의 발행 형태”가 기본

2025-06-12     이상영 기자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시사하는 이미지. (출처=셔터스톡)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 등 모든 가상자산의 ‘헌법’격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국회에서 발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동법이 만들어지면, 국내 최초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된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은 자기자본 5억원 이상인 국내 법인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은행·증권·보험 등 전통금융산업은 물론 플랫폼 기업이나, 일반 기업도 이를 발행할 수 있다.

‘민간 주도형 디지털 원화’ 시스템

동 법안은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정 요건을 갖춘 민간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른바 ‘민간 주도형 디지털 원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이후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급성장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발행과 유통을 규율하는 입법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울러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서둘러 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해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을 비롯한 금융계와 관계 안팎에서 이견이 많았다. 특히 이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대체재인 만큼, 비은행 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할 수도 있어 통화정책을 위협할 수 있다”면서 “만약 화폐 대체재가 부도가 나거나 사고가 나면 지급결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한꺼번에 추락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를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한은 등의 태도 역시 변하고 있다. 한은은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반대하는 전문가뿐 아니라 찬성하는 업계 관계자도 참석하는 콘퍼런스를 구상하고 있다.

한편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원/달러 및 국내 자금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원화 수요가 감소하면 원/달러 환율은 구조적 상승 압력을 받고 이로 인해 내국인의 해외투자 감소와 같은 하락 요인에도 원/달러 하락은 제한된다.

원화 기반 스테이브코인 발행 이미지. (출처=디크립트)

은행 예금 및 신용기능 약화 등 ‘부작용’도

다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국내 여유자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면 은행의 예금 기반이 축소되고 기업과 개인에 대한 대출 여력이 감소하는 등 신용 중개 기능이 약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단기자금시장의 유동성 축소와 자금 이동의 불투명성 확대를 유발하기 때문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이전에 이를 관리·감독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크다.

또한 디 페깅(De-pegging), 정책 효과 약화, 높은 네트워크 유동성 등 리스크도 존재한다. 디 페깅은 스테이블코인의 시장가격이 약정된 교환비율에서 크게 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시장 및 경제상황이 급변할 경우, 발행사의 발행 능력이나 환매 역량을 의심받고 해당 자산의 신뢰가 축소되면 ‘디페깅’이 발생해 시장에 혼란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확대는 자금이 전통 금융기관을 우회하는 요인이 되고, 이로 인해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이 실물 경제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통화정책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따른다.

이번 법안은 이런 부정적 요소 등을 감안한 대응책과 함께 종합적인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일단 원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은 일정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한 민간 기업이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아 발행할 수 있게 했다. 발행 주체가 파산하더라도 이용자가 환불받을 수 있도록 도산 절연 조항도 포함됐다.

본래 스테이블코인은 특정 자산에 가치를 연동시켜 가격 변동성을 줄인 디지털 자산이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달러, 유로, 원화 같은 법정화폐에 1:1로 고정되는 방식이다.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자산 이동과 거래를 쉽게 하기 위해 활용돼 왔지만, 최근에는 실물 경제에서의 결제 수단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방식은 ▲준비금을 기반으로 발행하는 방식과 ▲알고리즘을 이용해 공급량을 조정하는 방식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민간 기업이 실물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며 USDC, PYUSD 등이 대표적이고, 후자는 알고리즘을 통해 토큰 수량을 자동 조절해 가치를 유지하는 구조다. 하지만 2022년 테라USD 사태 이후 알고리즘 방식은 시장 신뢰를 잃으면서, 지금은 준비금 방식이 주류가 됐다.

스테이블코인 이미지. (출처=셔터스톡)

금융위 ‘인가권’, 민간 자율 규제 체계

우리나라가 선택한 구조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보다는 민간이 발행하고 정부가 감독하는 스테이블코인 모델에 더 가깝다.

동 법안에는 한국은행이 직접 참여하는 조항이 없다. 대신 금융위원회가 인가권을 가지며, 민간 기업이 발행 주체가 된다. 일정 자본금 이상을 갖춘 법인은 사전 인가를 통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고, 준비금 보유와 전산 시스템 안정성도 입증해야 한다.

자율 규제 체계도 민간 중심이다. 한국디지털자산업협회를 중심으로 거래소 상장 심사, 시장 감시, 불공정 거래 대응 등을 맡는다. 이는 공공기관이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민간의 자율성과 속도를 살리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민간 주도의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발행된다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분야는 지급결제 시장이다. 기존 간편결제 수단보다 낮은 수수료와 빠른 정산이 가능해지고, 해외 송금이나 디지털 콘텐츠 결제 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이 확대될 수 있다.

또 하나의 변화는 '디지털 예금'에 대한 인식이다. 준비금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예금자 보호 대상은 아니지만, 디지털 화폐처럼 쓰이며 기존 은행 예금과 경쟁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이자 지급 가능성을 두고 은행권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어, 국내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