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설 명절에 ‘꼭 해야 할 일’ 일곱 가지
前 서울신문 제작국장, 現 서강대학원 서강포럼회장
설 명절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특히 이번 설 명절 연휴는 최장 9일간으로 역대급으로 길다. 바쁜 일상에 쫓기다 맞이한 소중한 시간을 허망하게 허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절이 어수선하고 불안정할수록 꼭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못 하고 사는 ‘나’에게 해당되는 일이기도 하다.
우선 ‘기억하기’다. ‘설’은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는 날이다. 차례를 올리거나 위령미사에 참례하거나 성묘를 가는 것이 모두 돌아가신 분에 대한 기억의 다른 이름이다. 하늘의 별이 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공동체 앞에서 읽는 것도 뜻깊은 일이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동체가 우선 순위로 할 일이었다. 결국 산 자들도 따라가야 할 숙명이므로 더욱 그러했다. 죽은 이를 기억하는 것은 곧 살아 있는 나를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연락하기’도 중요하다. 살다 보면 삶의 구비구비마다 소중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게 친구거나 은사일 수도 있다. 직장 상사나 고향 사람일 수도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원해져서 사는 이들이 태반이다. 이번 설 명절엔 그 동안 소원해진 소중한 이들에게 전화를 하면 좋지않을까 생각해 본다. “늙어갈수록 사람이 곧 자산이다”란 오래된 경구를 되새기게 한다. 곁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빈곤’을 뜻한다. 그러므로 빈곤을 벗어나는 길은, ‘소중한 사람에게 먼저 전화 하거나 연락하기’에서 비롯된다.
다음으론 ‘들어주기’다. 가족공동체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OECD 중 최상위권이다. 가장 소통이 잘 돼야 할 가족이 역설적으로 가장 불통인 경우가 허다하다. 도시화는 가부장적 권위가 뒷받침되던 농경사회를 해체시켰다. 구성원 각자가 경제적 시간적으로 빠듯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경쟁 사회다. 게다가 세대 차와 이념 차가 존재한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갈등이 일어나기 일쑤다. 이번 명절에는 특별한 시간을 내서 ‘나의 가족 얘기 들어주기’를 실천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행가기’도 실천해볼 만하다. 올 설처럼 9일간 긴 연휴를 맞는 게 쉽지 않다. 매일 설 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니다. 마음먹고 1박2일 혹은 2박3일 간, 한번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를 선택해서 떠나는 건 어떨까. 집을 떠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여행을 떠나가 위해서 집을 나선다는 건 일종의 일탈이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꿔보자. 백석 시인은,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갯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조앉어 대굿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라며, 남쪽으로 시집간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번 설에는 어느 먼 바닷가의 나지막한 주막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선술 한잔 기울이며 갯벌을 거니는 것 어떨까.
‘책 읽기’는 필수다. 갈수록 책 읽기가 어렵다. 책을 안 읽다보니 점점 더 책 읽는 일이 어렵다. 이번 설에는 2-3일 혹은 하루 한두 시간 책을 가까이 해보는 건 어떨까. 나이 들수록,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알고리즘에 의해 접해지는 유튜브 등 보고싶은 것만 접하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와는 또 다른 타인과의 대화다. 타인과의 대화는 고립되지 않는 나, 소외되지 않는 나를 되찾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문화 자산은 과거에 비해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적일 만큼 성장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도 그간의 문화자산이 적층되어 이뤄낸 K-문화의 결과물이다. 이런 훌륭한 문화자산을 온 국민이 향유하고 누리는 길은 책 읽기부터 시작된다. 설 명절에 좋은 책 한 권을 골라 읽어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 생각한다.
‘성찰하기’야말로 중요하다. 반성문을 쓴지 오래되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고등학교 때 쓰고, 신혼 때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내에게 쓴 이후론 기억에 없다. 자신에 대한 성찰은 물론 반성문과는 다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바른 삶을 강구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다. ‘성찰의 시간’을 별도로 가진다는 게 어려운 현실이다. 매일매일 습관적으로 아무 생각없이 바쁘게 세월을 허비하다 보면 나이만 먹고, 허탈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AI기반 디지털 시대에 아무 생각없이 살다가는 AI에 지배받는 기계노예가 되지 않을까. 사람이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기성찰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번 명절엔 평생 없던 ‘자기 반성문’을 써보자.
이참에 ‘정신 점검’도 해보자. 건강은 그 무엇과도 바꾸지 못한다. 건강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소용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 건강과 관련된 질환은 상상을 초월한다. AI기반 디지털사회는 정신질환자를 양산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는 부적응자를 증가시킨다. 특히 디지털사회에서 소외는 폭력을 낳는다. 그럴싸한 기업이나 공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20%를 넘지 못한다. 잘 나가는 사람은 드물고 증산층에 들지 못한다는 사람은 늘어난다. 소외의 위험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세대 간의 갈등에 비롯되는 소외도 심각하다. 우리 사회가 이를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하지만 녹록한 일이 아니다. 나의 ‘소외지수’는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이것이 질환으로 옮겨지지나 않았는지 점검하고 스스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설에는 자신의 정신 건강이 양호한지 반드시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
‘설’의 어원은 ‘낯설다’의 ‘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새해 첫날은 낯설다는 뜻을 지닌다. 그렇다면 앞으로 맞이하는 날은 모두가 새날이다. 우리는 새것에 대한 설렘이 있다. 그래서 일부 식자들은 ‘낯설게하기’란 독특한 용어를 개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다. 이번 설 명절엔 미루지말고 꼭 해야 할 일을 실천하고, 앞으로 다가올 낯선 날들을 감사하게 향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