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中企정책 유감(遺憾)

나도성 중기정책개발원 이사장, 경제학박사 전 중소기업청 차장

2024-05-13     중소기업투데이
나도성 중기정책개발원 이사장(전 중소기업청 차장). 

‘우문현답’으로 지난 4월29일 중기부장관의 기자간담회 자료가 배포되었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의 약어다. 또 다른 의미 ‘우둔한 질문에 현명한 답’이기도 하다. 현장의 눈높이에 맞춰야 하지만 정책 철학과 가치에 맞춰 취사 선택해야 한다. 그동안 외교부 출신 장관의 전문성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이번 기자간담회로 어느정도 불식시킨 듯하다.

오랜만에 눈에 번쩍 뜨이는 내용이 보였다. 화려한 포장은 걷어내고 속살 5가지만 요약한다. 첫째는 (가칭) ‘중소기업 가업승계 특별법’ 제정이다. 100년 넘는 기업이 한국은 2023년 15개인데 비해 2018년 기준 일본은 3만3079개, 미국 1만2780개, 독일 1만73개 네덜란드 3357개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60세이상 고령CEO가 31.6%에 달한다. 가업승계를 막는 세계 최고의 상속세, 그리고 부의 대물림이라는 국민정서가 걸림돌이다. 칼을 빼들었으니 제대로 휘두르기 바란다.

둘째는, 글로벌 녹색전환 체제에 능동적인 대응이다. EU 탄소국경조정제(CBAM)가 2023년 10월1일 시범시행되고 2026년 1월부터 전면 시행된다. 수출한국을 강타할 태풍이 서서히 발원하였다. 글로벌 ESG공시는 탄소감축만이 아닌 환경, 사회, 거버넌스 전반에서 대전환을 요구한다.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데 무슨 ESG인가?’라는 푸념은 통하지 않는다.‘ESG대응 민관합동지원단’의 실천적 역할과 대·중소기업간 공급망 협력 등 대책의 차질없는 실천이 관건이다.

셋째는 디지털 대전환에 부응한 중소기업의 구조혁신 촉진이다. 산업화시대의 유물인 동종간의 사업전환제도를 신산업 촉진 방향으로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기업회생(turnaround)도 함께 손보면서 시장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 AI 스타트업 촉진과 제조현장의 AI 보급확산 방안도 인공지능시대로의 전환에 능동적인 대응이다. R&D 지원체제 전략화, KOSBIR(중소기업 기술혁신 지원사업) 개편을 통한 공공구매 활성화, 아울러 지역특화 중소기업 육성까지 유기적 정책연계가 돋보인다.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넷째는 세계시장 공략과 글로벌인재 활용이다. 그동안 중소기업 해외진출은 수출과 대기업 동반의 현지투자 중심이었다. 글로벌 자본유치, 기술교류, ODA 연계, 대기업 동반 등 다양화가 미흡했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우수 글로벌인재들의 활용에도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다. 특히 학·석사 유학생들을 산업현장의 전문인력으로 흡수하지 못했다. 내국인 고용만 강조하는 국수주의적 여론에 휘둘려 왔다. 오랜만에 중소기업 글로벌정책이 제대로 만들어졌다. 문제는 정책의 실행과 전달체계 구축이다. 재외공관, 공공기관, 해외지사, 재외국민단체 등의 시스템적 참여와 협력이 절실하다. 외교부 출신 장관의 의욕만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다섯째는 정책지원 체계의 빅데이터 기반 혁신이다. AI 기반 선정·평가모델 도입,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사업구조개선 및 지원 형평성 제고를 추진한다. 그동안 중기정책은 팽창만을 거듭하면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 방식으로 기업가정신을 훼손해 왔다. 현장 목소리는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요, 정책 브로커들이 활개친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퍼주기 방식의 정책과 누수현상은 더욱 확산되었다. 오랜만에 ‘메스를 대겠다’하니 기대는 된다. 다만 실천과 성과가 제대로 나타날 것이냐는 의문이다.

중기부의 정책이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획득하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언론도 그렇고, 학계나 이해당사자도 그렇고, 정치권도 그렇고. 국가 리더십까지 중기정책에 대한 반응과 기대는 별로이다. 왜 그럴까? 보수정권의 한계일까. 한때 보수정권도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며 진보정권보다도 더 앞장서 중소기업에 관심과 열정을 쏟았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2년을 과거 보수정권을 이어받아 따뜻한 보수로 나아갔더라면 4.10 총선의 참패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남은 3년 정책 철학과 가치의 전환이 없다면 이번 발표도 용두사미로 끝날까하는 우려도 된다.

중기정책 어젠다, 왜 필요한가

중기정책이 한국 정치지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자. 한국사회는 작금 ‘진보 상수’, ‘보수 추격’의 상황으로 바뀌었다. 왜 진보가 상수가 되었을까. 글로벌 거대흐름에서 보면 ‘글로벌화, 디지털화, 수축사회화’의 삼각축이 작동하였다. 3가지 흐름은 인류사회의 양극화를 확산하고 줄어드는 파이를 차지하려는 진영간 싸움을 극단화하고 있다. ‘글로벌화’는 신자유주의 흐름을 타고 1%의 거대자본의 글로벌 장악력을 강화했다. ‘디지털 네트워크화와 AI혁명’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시민의 힘은 갈수록 약화되고 이들간에도 역량의 차이에 따른 간극이 커지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수축사회도 본격화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끓임없이 팽창하면서 경기변동을 해오던 자본주의 체제가 한계에 봉착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과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여 수축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는 양극화의 반대편에 몰린 수많은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든 개선시켜야 한다는 진보적 사고가 상수가 된 것이다. 중소기업은 ‘9988’이다. 전체기업의 99%, 고용인력의 88%를 차지한다. 통계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그 의미는 중요하다. 소시민의 주력이 9988 중소기업에 속해 있다. 상수가 된 진보를 보수가 따라잡기 위해서 앞장서서 보듬고 실천해야 할 최적의 어젠다가 바로 중기정책이다. 보수의 리더인 대통령부터 앞장서서 중기정책의 어젠다를 내세우고 대국민 소통에 나서야 한다. 아쉬운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공화국’을 국시로 정하고 있다. ‘자유’의 핵심가치는 ‘보수’가 주도한다. 반면 ‘민주’의 가치는 ‘진보’가 앞장선다. 자유는 재산권을 포함한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중시한다. 민주는 모든 개인의 참여와 평등을 강조한다. 현실 정치에서 1인 1표가 정치권력을 결정하게 되므로 민주를 표방한 포퓰리즘이 가세한다. 글로벌 삼각축의 거대흐름이 작동하다 보니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진보적 민주의 가치가 대중적 지지를 늘린다. 더 나아가 대중적 포퓰리즘까지 가세하면서 권위주의 체제가 득세한다. 너무 나간 진보의 민주가치 과잉은 합리적 보수의 자유를 억압하고 그 반작용으로 나타난 우클릭 보수의 지나친 자유는 시민의 분노를 야기하고 있다. 한국적 불편한 진실이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지름길은 보수든 진보든 공화주의 가치에 공감하고 타협하는 것이다. 각자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이전투구는 공멸을 초래할 것이다. 중기정책은 바로 공화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핵심적 국가 어젠다의 하나이다.

중소기업 정책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소통

오랜만에 ‘우문현답’ 방법론을 통해 뜻깊게 제시된 중기부 장관의 ‘현문중답’에서 아쉬운 점(遺憾) 몇가지를 제시한다. 현문중답은 ‘현장의 문제에 중기부가 답합니다’이다. 대중에게 익숙한 사자성어로 소통코자 하는 의지도 평가할 만하다.

첫째는, 중소기업 정책철학과 가치를 공론화하고 내재화하는 것이다. 우문현답이라고 현장만 간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인 자원 기반 관점에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자유시장의 핵심적 플레이어이지만 소상공인처럼 생계형 복지의 대상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백화점식 정책을 남발하여 기업가정신을 훼손하고 국가 자원을 낭비하는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디지털 기반 정책혁신에서 더 나아가 정책 전반의 가치기반 점검과 혁신이 필요하다. 중기정책의 핵심적 가치는 공화주의를 지향한 자유와 민주의 균형점을 잡는 것이다.

둘째는, 중소기업 정책전달 체계의 대대적 혁신이다. 중소기업 관련 법과 제도, 지원기관들이 계속 늘고 있다. 중기 현장에서는 정책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하고 정책지원은 ‘먼저 본자가 임자’라는 애기도 들린다. 중기정책 전달체계가 과거 산업화 시대의 몇몇 지원기관과 협회 중심으로 독과점 체제로 구축되고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중기정책 전달체계의 경쟁기반 개편을 통한 독과점 체제의 혁파와 다양화 그리고 경쟁 촉진이 시급하다.

셋째는, 정부의 중기정책 소통방식의 활성화와 혁신이다. 기존의 현장방문, 위원회 운용, 언론 홍보, SNS 활동 등 공급자 중심의 소통도 중요하다. 장관의 기자 간담회도 그 일환이다. 그러나 중기정책 어젠다는 중기부의 노력과 역량만으로 한계가 있다. 한국적 정치 지형을 고려한 국가 리더십의 주도적 역할과 정치권의 참여와 지지가 필요하다. 그 방법으로 한국 지성인 사회와의 교류와 협력 그리고 보이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중기부 장·차관과 간부들은 중소기업 정책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정책 어젠다를 학계나 지식인 단체, 협회 등과 유효하게 소통해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와 영향력 그리고 성원이 백만원군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불편하다는 말이나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