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거버넌스 갈라파고스’

박경만 객원 편집위원(한서대 교수)

2024-04-01     박경만 편집위원
박경만 본지 편집위원

‘ESG 경영’이 유행인가 했더니, 요즘에는 ‘기업밸류업’이 회자되고 있다. 애초 지속가능하도록 기업 경영을 잘해보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유한양행의 회장직 신설 논란도 계기가 된 듯하나, 그것 말고도 배경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그 본딧말을 액면 그대로 지키는 기업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설까.

시간이 지날수록 환경이니 사회니 하는 피곤한 담론보단, ‘우리 회사 ESG평가가 몇 등급이냐’며 잿밥에 더 신경쓰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약과다. 대기업 중엔 아예 세상의 눈치따윈 아랑곳 않는 곳도 많다. 변칙적 기업 상속으로 법정을 오가는 건 예사요, 등기이사도 아니면서 회장으로 승진해 책임지지않는 권력을 가로채다시피 하는 풍경도 일상적이다. 문어발, 비자금, 부실경영, 변칙승계 따위의 불순한 용어들이 늘 이들을 따라다닌다. ‘밸류업’은커녕, ‘밸류다운’의 연속이다.

이 즈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새삼 호출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선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두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남북분단 현실과 과도한 수출의존도, 경직된 노동시장, 회계의 불투명성 등도 거론될만 하다. 그러나 가장 많은 평자가 입을 모으는 건 역시 한국 기업 특유의 ‘오너 리스크’다. 소유와 경영을 독점한 기형적 지배구조는 다른 주요국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 탓에 자칫 극소수 비전문적인 오너 일가의 엉뚱한 결정으로 회사가 거덜날 수도 있다. 그야말로 기업의 운명이 항상 바람 앞의 등불같은 처지에 내몰린 격이다. 오죽하면 “오너가 감옥에 있을 때 영업실적이 오히려 좋았다”는 소리까지 나올까.

굳이 ‘기업윤리’에 빗대기에 앞서 이는 경제·사회 공동체에 대한 ‘염치’의 문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기업은 이제 소중한 국가·사회적 자산의 개념으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이를 개인의 쌈지 정도로 여기는 염치없는 행태가 여전히 일각에서 반복되고 있다. 이런 봉건적 기업을 뭘 믿고 과감한 투자를 할 것이며,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줄 것인가. 국제사회야말로 코리아를 디스카운트한게 아니라, 그 치부를 저격하고 있는 셈이다.

일일이 나열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이 대목에서 애플 CEO 팀 쿡이나, 구글 순다르 피차이, MS의 사티아 나델라, 아마존 조프 베이조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요즘 잘 나가는 유니콘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과 오픈AI 샘 앨트먼 등을 거명하지 않을 수 없다. 개중엔 창업주도 있고, 상당한 회사 지분 소유자도 있긴 하나, 대체로 전문경영에만 올인하는 월급쟁이가 본업이다. 그리곤 다들 세계 최고의 시장가치를 자랑하는 기업을 일궈냈다. 그들이야말로 디지털문명사가인 팀 던럽이 말한 21세기 ‘슈퍼스타’들이다.

디지털자본주의에선 이들 ‘슈퍼스타’가 항상 미래를 선점하는 주인공들이다.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공급하는 20세기의 전통적 자본은 쇠락할 수 밖에 없다. 대신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발하고, 창조적 겹사유, 즉 사유를 다시 사유하며 혁신을 주도하는 슈퍼스타들이 미래 자본의 주역이다. 필연성을 전제한 역사주의에 반기를 들며, 전위적인 역발상의 ‘자본의 길’에서 만나는 새로운 자본주의 미학, 그게 그들의 목표 지점이다.

앞서 미국의 ‘빅테크5’의 CEO나 젠슨 황, 샘 앨트먼 등은 그 길을 탐험하는 대표 주자들이다. 그들은 과학지식, 인간 이성, 정보, 아이디어 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선순환의 주역이다. 도중에 길을 잃지만 않는다면 마침내는 ‘선한 자본’을 작동하는 개척자들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은 모름지기 누적된 생산 자원을 재가공해서 공동체적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책무다. 곧 ‘선한 자본’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사유(私有)하며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였던 근대적 ‘소유’는 배척되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기업 이윤과 사회적 배분의 정의를 조화시킨 탈근대적 ‘거버넌스’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한국 기업, 특히 대기업들 상당수는 어떠한가. 여전히 그와는 다른 근대적 개념에 갇힌채 ‘악한 자본’을 고수하고 있는게 문제다.

그렇다면 ‘거버넌스’야말로 한국 기업 다수가 지닌 취약점이다. 그 결과는 결국 ‘ESG경영’ 자체를 영혼없는 구두선에 그치게 만들었다. 환경이나 사회와도 화해하지 못하고, ‘정도경영’도 말뿐이다보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래서 물었다. “한국은 진정 ‘거버넌스 갈라파고스’가 될 것인가?”라고. 글쎄, “NO!”라고 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