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내 유일 현미유 제조업체 ㈜세림현미의 '부전자전' 경영철학
[인터뷰] 국내 유일 현미유 제조업체 ㈜세림현미의 '부전자전' 경영철학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태경 ㈜세림현미 대표이사
창립자 고종환 회장의 뒤를 이은 2세 경영인
"이 나라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이 땅에서 나는 것을 최대한 섭취해야"
25년전 가격 그대로 유지, 원재료 값은 3배 뛰어
부친 고종환 회장을 뜻을 이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현미유 제조업체를 '30년전 그 가격'을 유지하며 운영하고 있는 고태경 ㈜세림현미 대표.
부친 고종환 회장의 뜻을 이어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현미유 제조업체를 '25년전 그 가격'을 유지하며 운영하고 있는 고태경 ㈜세림현미 대표를 충북 청주 사업장에서 만났다.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2년전인 2018년 8월 현미유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초과 검출됐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발표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기업이 있다. 국내 유일의 현미유 제조업체인 ㈜세림현미가 그곳으로 이 회사는 이후 식약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걸어 지난해 승소함으로써 당시 발표가 오류임을 입증했다. 식품기업이 ‘염라대왕’과도 같은 식약처를 상대로 소송을 건 첫 번째 사례로 ‘모험’과도 같은 법정투쟁 끝에 가까스로 불명예를 씻을 수 있었다.

지난 8일 충북 청주의 ㈜세림물산 사업장을 방문해 이 회사 고태경 대표를 만났다. 직원들 사이에서 한참 일에 몰두해있던 40세의 젊은 사장이 생기 넘치는 환한 표정으로 서울서 온 객(客)을 맞았다. 고 사장은 창립자인 부친 고종환 회장(87)의 뒤를 이은 2세 경영인이다.

“당시 식약처 발표로는 저희 회사 제품에서 벤조피렌이 기준치(2.0mcg/kg)를 초과한 2.5가 검출됐다고 했으나 회사 자체 검사결과, 기준치를 밑돌아 식약처에 재검사를 요청했으나 관련법상 조항이 없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법정소송을 통해 재검사를 한 결과, 기준치에 못미치는 1.78이 검출돼 식약처 검사결과가 잘못된 것임을 입증하고 어렵사리 명예회복을 할 수 있었다.”

고 사장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며 2년전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식약처 발표가 있은 다음날 회사 홈페이지에 '원인규명을 통해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리고 핸드폰 번호를 공개했다. 석달 동안 24시간 내내 전화벨이 울렸다. 어린 아이들이 많이 먹는 기름이다보니 새벽1시 이후엔 주로 주부들이 아이들을 재우고 전화를 걸어왔다. 뿐만 아니라 소송이 시작된 이후 식약처로부터 지속적인 공장검수가 나왔다. 방글라데시 등 해외거래선에도 한국에서 검수 직원이 파견돼 ‘블록’이 걸리는 바람에 거래를 다시 트는데 1년이 걸렸다.”

고 사장은 식약처를 상대로 주변에서 모두가 만류한 행정소송을 건 배경에 대해 “이유는 딱 한가지”라고 답했다.

“우리 직원들의 자녀가 ‘아빠가 만든 제품에서 발암물질이 나온게 맞냐’고 묻는데 직원들이 답을 못했다. 우리 공장 기술자 중엔 25년간 근무한 사람도 있다. 25년 세월을 똑같이 만들었는데 왜 그 같은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를 못했다. 국내 마지막 남은 현미유 공장의 기술자라는 건 그 분들의 자부심이자 인생이다. 인생이 부정당하게 생겼는데, 그건 못참겠더라.”

식약처로부터 ‘빡센’ 훈련(?)을 받은 덕분에 “1년간 고생은 했으나 직원들에게 ‘돈주고도 못사는’ 좋은 교육을 시키는 기회가 됐다”고 고 사장은 말했다.

“식품 검수에 관해 회사 자체적으로 매뉴얼화가 되고, 식품회사를 관리하는 스킬이 늘었다. 덩달아 생산현장도 변했다. 미국 등지에 현미유를 수출하고 가을쯤 친환경 종이팩 용기 제품을 출시하게 된 것도 그처럼 힘든 과정을 거친 덕분이다.”

이처럼 식약처를 상대로 ‘맞짱’을 뜰 정도의 ‘맷집’은 하루아침에 길러진 게 아니다. 고 사장은 부친 고종환 회장이 48세때 얻은 외아들로,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방학이면 공장에서 포장 등의 일을 해야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일찌감치 공장과 가까워지는 교육을 시킨게 아닌가”라고 그는 부친의 마음을 헤아렸다.

본격적으로 공장에서 일한 것은 제대후인 23살때부터다. 경상도와 전라도 공장에서 각 3년, 세종시 공장에서 1년 등 전부 7년을 공장 일을 한뒤 본사 사무실에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러다 고 회장의 건강이 안좋아지면서 지난 2009년부터 경영을 이어받았다.

경영에서 물러나 독서와 역사책 집필로 소일하고 있는 부친과는 매일 새벽 1,2시에 한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경기도내 모든 초등학교에 우리 제품이 납품되고 있다. 이처럼 아이들이 먹는 기름인데다 아토피나 당뇨 환자 등이 우리가 만든 현미유를 먹고 있는데 25년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1996년 5200원(500㎖)이었는데 25년이 지난 지금 5900원이다. 같은 기간, 원재료 값은 3배로 뛰었다. 국내에 마지막 남은 현미유 공장으로서 ‘이 나라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이 땅에서 나는 것을 최대한 섭취해야한다’는 부친의 철학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것이지 경제논리로 하는게 아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국가가 해야되는 일이다.”

부친인 고 회장은 “내가 했던걸 너가 기억하고, 너가 한 걸 네 자식이 기억하면 되지, 뭘 굳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냐”며 자신의 철학을 아들이 꿋꿋이 이어가길 바란다고 그는 전했다.

고 사장은 ㈜세림현미 외에 저수조 제조회사인 ㈜세림물산과 종합무역상사인 세림 대표도 맡고 있다. 이밖에도 ‘겨레의 얼을 지켜야한다’는 신념으로 부친이 세운 겨레얼연구원을 이어받아 현재 충북 충주의 한 폐교를 인수해 역사교육 학교를 세우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