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태환의 인문학 칼럼

하태환 논설위원
하태환 논설위원

3월이 시작되었다. 다른 나라들은 9월에 신학년이 시작되고 6월이면 한 학년도를 마치게 되지만 한국은 3월부터 신학년도가 시작된다. 사실 세계화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서는 우리의 학년제도 역시 다른 나라들과 맞추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지만, 고쳐야 한다고 거의 모든 교육자들과 학부모들이 동의하면서도 아직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9월 신학년제이다. 그만큼 개혁이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 험난함을 말해주고, 무엇이든 한번 자리를 잡으면 그걸 제거하거나 수정하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사문화되었거나 시급히 수정을 요하는 규제나 법, 제도 등이 산적해 있지만 손도 대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다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 한번 어떤 법이나, 제도가 탄생하면, 고인 시궁창처럼 거기에 붙어먹는 이끼나 곰팡이, 오물들이 강력한 적폐를 이뤄 그 정화에 반대해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그래서 진정한 개혁을 한다는 것은 새 나라를 세우기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적폐가 쌓인다 함은 나라나 사회가 그만큼 늙었음을, 과학 용어를 빌리자면 노폐물인 엔트로피가 축적되어 자연 정화의 수준을 이미 넘어서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다 엔트로피가 임계점을 넘으면 혁명 아니면 파멸, 혹은 공멸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함에 있어서 실수를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하고, 오히려 그 실수를 직시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새로이 학년을 시작하는 때가 왔으니 배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에게도 상상력과 이미지의 현상학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이자 시인이었던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하얀 수염을 한 신선같은 풍모의, 그저 어린 시절 꿈이나 몽상적 이미지만을 상상하는 그런 애매한 철학자나 시인이 아니었다. 그는 지식이란 단절에 의해 진보한다고 단언한다.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수세기에 걸친 물리학이나 화학 분야의 혁신들을 보면서, 바슐라르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교육 원칙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교육 원칙들을 이끌어 낸다.

특히 그는 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보다도 더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약간은 비비 꼬인 문장 때문에 얼른 해독이 안될 수도 있지만, 기실은 간단하다. 이런 교육적 몰이해의 근본 원인은, 과학 교수들이 사유란 학습에서 시작되고, 그냥 수업이나 하면 아무 교육이나 할 수 있고, 아무리 어려운 증명이라도 조목조목 반복하다보면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로부터 온다. 그러나 바슐라르의 눈에 이러한 교육적 실수는 바로 과학 활동 그 자체에 대한 그릇된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요즘 인구에 그렇게 회자되고 있는 비움의 철학을 만나게 된다. 바슐라르에게 과학 탐구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심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새로이 인식하는 방식에게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기존의 지식을 버린다는 사실로 이뤄진다. 이러한 연구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믿는 바를 내려놓는다는 사실로, 또한 평범한 상식이나 과거의 사유 방식과 연결되어 있는 사유 방식들을 뛰어넘는다는 사실로,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사고들을 부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이뤄진다. 달리 말해 과학은 단절을 통해 진보한다. “사람은 잘못된 지식들을 파괴하면서, 과거의 앎에 반대하여 알아 간다. ”이러한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정신이란 순결한 처녀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과 정면으로 부딪쳐야 한다. 학생들은 이미 그릇된 생각들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이 살아온 내내 형성한 편견들과 상상들로 가득 차 있다.

간단히 말해 과학적 지식의 형성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학생으로 하여금 과거와 단절하고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권고하는 근본적인 변화와 연결된다. 고정 관념과 편견을 부수고 발상의 전환을 이룰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학생에게서 실수와 실패는 편견으로부터 나온다. 결국 사람이란 실수를 거치지 않고는 앎에 이르지 못한다. 실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실수와 직면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장애와 실패는 앎을 향해 나아가는 필수적인 통로이다. 그래서 장애들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잘 알아야 한다는 필연성이 나온다.

실수와 그것의 인정, 그리고 편견의 타파와 기존 지식의 버리기, 또는 비움의 철학이나 발상의 전환 등등은 비단 교육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기업 경영이나 예술 창작에 더욱 필요한 정신 상태이다. 우리는 곧 인간보다 훨씬 더 머리 좋고 지식이 풍부한 AI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한 사회에서는 이미 존재한 수많은 지식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은 항상 다르게 생각하는 창조적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지식이고 혁신이며, AI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최후의 인간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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