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LA올림픽 직전 문을 연, 한인타운 첫 호텔
호텔 구석구석 그림으로 장식한 소문난 '컬렉터'
···한때는 갤러리가 '꿈'
70년대 선경·대우·삼성 등과 의류·원단 무역
월드옥타 멤버

1984년 LA 한인타운 첫 호텔로 문을 연 '뉴 서울 호텔' 김용임 대표를 여의도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황무선기자]
1984년 LA 한인타운 첫 호텔로 문을 연 '뉴 서울 호텔' 김용임 대표를 여의도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사진=황무선기자]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LA 한인타운 올림픽가 중심에 위치한 'NEW SEOUL HOTEL'은 현지는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LA를 자주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진 곳이다. 1984년 LA올림픽 개막 직전 한인타운에 문을 연 첫 번째 호텔이다. 이 호텔 김용임 대표는 ‘호텔 파이오니어(Pioneer)’란 표현을 썼다.

처음 호텔을 연다고 했을 때 ‘친척집 놔두고 누가 호텔서 자느냐’며 주변에서 다 말렸다고 했다. 당시 한국에 오면 포장도로 조차 드문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호텔을 하면 좋겠다'는 직감을 쫓아 한인타운 제1호 호텔로 문을 열었으니 ‘개척자’라는 표현이 틀린 말이 아니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김용임(68) LA ‘뉴 서울 호텔’ 대표를 지난 29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한국서 무역을 하다 1971년에 미국 이민을 갔다. 미국 가서 처음 6,7년 가량은 무역을 했다. 옷도매에서 시작해 원단까지. 당시 한국은 ‘섬유수출 1억불 달성’,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떠들썩할 때였다. 그러다 브라질 등이 끼어들면서 경쟁이 심해져 힘들어지니까 ‘뭘할까’ 찾다가 호텔에 생각이 꽂히게 된 것이다.”

당시만해도 미국 교포들이 고국을 방문하면 다들 친척집 내지는 친구집에서 머물던 시절이었다. 김 대표는 “친척집에서 자보니까 비즈니스를 할 수가 없었다. 집집마다 전화조차 없을 때였지 않나. 호텔을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인타운 한복판 6대째 이어오던 가구점 자리에 새로 짓다시피해서 호텔을 세웠다.

요행히 타이밍도 딱 들어맞았다. 계획한 것도 아닌데 어찌하다보니 LA올림픽 직전에 오픈을 해 첫 달부터 객실이 꽉꽉 들어찼다. 김 대표는 “당시 손님이 밀려들어 팁을 줘야 방을 내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LA ‘뉴 서울 호텔’은 3층 건물에 50개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지하엔 쇼핑센터와 한식당을 두고 있다. 80명 정도 수용 가능한 한식당은 메뉴가 서울의 웬만한 식당 보다 더 다양하고 맛도 훌륭해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이 호텔엔 눈에 띄는 것이 또 한가지 있다. 바로 로비와 복도, 식당 등지를 장식하고 있는 한국작가들의 오리지널 그림들이다. 컬렉터의 그림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음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수준높은 작품들이 바꿔가면서 걸리고 있다. 김 대표가 바로 그 컬렉터다.

“LA컨벤션센터서 매년 아트페어가 열린다. 이곳 첫 호텔이고 하니 오래전부터 화상과 작가들이 우리 호텔에서 다 묵었다. 화상들이 거의 여성들이다보니 같이 얘기하다가 눈이 트여서 그림을 모으게됐다. 몇십년간 모았다.”

소장하고있는 작품들에 대해 물었더니 운보(김기창), 박서보, 김창렬 등 화려한 화백들의 이름이 답으로 돌아왔다. 거의 한국작가들 작품인데 작가 수로 따지면 30명 정도 된단다. 그 중 개인적으론 서양화가 김선혜씨의 추상적이면서 4차원적인 그림을 좋아한다고 했다.

“여기서 전시회할 때 샀다. 찬스가 많았다. 예를들면 200호, 300호 같은 대작은 전시회가 끝나고 못가져가니까 맡아만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 사는 기회가 됐다. 한국에 와도 거의 화랑 친구들을 만난다. 비디오작가인 이남희씨와 친해 광주까지 일부러 다녀오기도 하고.”

그 많은 그림들을 어디에 소장하고있는지 궁금했다.

“작품소장을 위한 창고가 따로 있다. 한때는 갤러리가 꿈이었으나 남편이 말려 못했다. 다행히 호텔이 있어 많이 바꿔 단다. 호텔에 꽤 많이 걸려있다.”

오랜기간 작가들과 교분을 나눈 만큼 잊지못할 기억도 많다.

“한번은 박서보 선생님이 전시회를 하면서 한달가량 묵었는데 ‘호텔이 집같다’며 드로잉 두 점을 선물로 주셨다. 너무 고마워 간직하고 있다. 5,6년전엔 이곳 유명 화랑에서 꽤 오랜기간 전시회를 했는데 매일 우리 호텔로 식사하러 오셨다. 손자까지 데리고.”

“그림살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그는 “어떤때는 사놓고 마음에 들어 자다가도 보고온다”고 했다.

“이민간지 13년만에 호텔을 세웠으니 굉장히 빨리 자리잡은 편이다. 1남1녀를 뒀는데 사위와 며느리 둘 다 의사다. 아이 한 명일 때 안고 미국 갔는데 아이들이 공부도 열심히 했고 착하다. 그게 자랑거리다.”

김 대표는 “교민들이 2,3세들을 잘 교육시켜 전문직에 많이 진출해있다”며 고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현지 교민들의 경제적인 토대가 단단하고 위상 또한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2년전부터 월드옥타(세계한인무역협회) 멤버로 가입해 네트워크를 넓히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최근엔 한국국적을 회복하고 고국을 자주 오갈 생각에 청담동에 작은 거처도 마련했다. 그는 “나이들면 결국은 고향”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얼마전 싱가포르 방문시 마리나베이샌즈 전망대에서 지인들과 함께 한 김용임 대표.
얼마전 싱가포르 방문시 마리나베이샌즈 전망대에서 지인들과 함께 한 김용임 대표(왼쪽에서 두번째).
정영수 CJ그룹글로벌 고문이 최근 싱가포르에서 연 '음악과 시가 있는 밤' 행사장에서 지인들과 포즈를 취한 김용임 대표.
정영수 CJ그룹글로벌 고문이 최근 싱가포르에서 연 '음악과 시가 있는 밤' 행사장에서 지인들과 포즈를 취한 김용임 대표(맨 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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