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화된 안전규정 부른 가스보일러 CO중독 사고
노후한 보일러, 배기통은 시공불량, 점검은 형식적

CO중독 사고가 발생한 관악구 원룸
CO중독 사고가 발생한 관악구 원룸

러시아에서 부푼 꿈을 가지고 찾아온 대한민국. 이역만리(異域萬里) 타국에서 외로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가게 된 한 러시아 여학생 필리나바바라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으로 유학 온 그녀는 지난 12월 2일 오후 4시 15분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자신의 원룸 505호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그녀의 나이는 꽃다운 19세, 사인은 가스보일러에 의한 CO중독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죽음이 안타까이 회자되고 있는 것은 마땅히 지켜졌어야 할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모두 무시됐고, 그로 인해 결국 그녀는 원치 않았던 죽음 맞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녀의 죽음이 발견된 것도 집주인이 연락이 닿지 않자 동일 건물에 입주한 학생에게 확인을 요청하면서 뒤늦게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설치된 가스보일러는 A사가 1995년 7월에 생산한 FF/FE겸용 제품이었다. 또 보일러 배기가스(CO)의 원활한 배출을 위해 외부로 30cm이상 빠져나와야 할 배기통은 벽 관통부 중간에서 걸쳐져 있었고, 시공자 확인을 위해 부착돼 있어야 할 시공표지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해당지역에 가스를 공급하는 B 도시가스사의 안전점검이 사고발생 2달여 전인 9월 19일 이뤄졌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여러 문제점들은 지적되지 않았고 ‘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사고를 조사한 가스안전공사는 이번 사고의 결정적 원인을 가스보일러 시공불량이 문제라 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권장사용기간이 7~8년에 불과한 가스보일러는 적정한 수명을 넘겨 매우 노후된 상태였고, 그나마 배기구 역시 벽 관통부 중간 정도에 걸쳐 있다 보니 연소된 배기가스가 외부로 제대로 배출되지 않는 상태였다.

환기를 위해 설치된 개구부.
환기를 위해 설치된 개구부.

가스안전공사 한 관계자는 “이러한 이유로 가스보일러에서 배출된 배기가스(CO) 일부가 벽 관통부와 배기통 사이 틈새를 통해 실내로 유입됐고, 일부는 벽과 단열재(스티로폼) 사이 공간을 거쳐 벽체의 개구부를 통해 다시 실내로 유입됐다.”며 “실내로 유입된 CO에 중독돼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고현장에서 CO농도를 측정한 결과, 가스보일러 가동즉시 배기구에서는 8000ppm, 가스보일러 인근에서는 20분이 경과하자 1200ppm 이상의 CO가 검출됐다. 피해자가 생활하는 침대에서도 21분이 경과하자 850ppm의 CO가 측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일러 배기가스의 주성분인 CO는 무색, 무취의 특징을 띄고 있다. 일반적으로 800ppm에서 45분이 경과하면 가스에 노출된 사람은 두통 매스꺼움 구토를 느끼게 되며, 2시간 이상이 지나면 실신 상태에 이른다. 6400ppm에서는 10~15분이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결국 이번 사고에 대한 가스안전공사의 판단은 수명이 다한 가스보일러를 적절한 시기에 교체했거나, 보일러 설치 시 배기통을 제대로 시공만 했어도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판단이다. 더욱이 법령에 따라 주기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도시가스사의 안전점검이라도 제대로 이뤄졌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판단이었다.

사고 장소 배기통 모습.
사고 장소 배기통 모습.

 

현행 도시가스사업법 제26조 안전관리규정에는 도시가스사는 가스사용시설의 안전점검시 보일러의 현황, 시공자 현황, 보일러 설치상태 등 현황을 관리토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가스를 처음 공급할 경우에는 가스보일러 시공표지판 및 시공내역서류 등을 확인하고 현황을 관리해야 하는 것도 공급자의 의무사항이며 전용보일러실 설치여부와 배기통 상태, 개구부와 이격거리 등 설치 상태의 적정성도 확인토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는 경찰은 사고가 발생한 건물 동일층에는 보일러의 설치환경은 다르지만 동일한 규모의 7개 원룸이 더 있다며 동일 사고 예방을 위해 보일러사 및 공급자에게 점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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