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지식인 '나가노 신이치로' 전 다이토분카대학(大東文化大學) 교수
일본정계에 인맥 보유, 한일관계 회복 위해 동분서주
'한국의 경제발전과 재일 한국 기업인의 역할' 등 저서 여러권 펴내
"경제개발 초기, 재일동포 기업인들이 지대한 역할 해"

국제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한 재일동포 나가노 신이치로 전 다이토분카대학 교수는 최근 한일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양국 정부간 '불신(不信)'을 지목했다.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한국이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루기까지 재일동포들의 역할을 조명한 지식인이 있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일본 도쿄 소재 다이토분카대학(大東文化大學) 교수를 지낸 나가노 신이치로(80·한국명 안몽필)씨가 그 주인공으로, 헌정회 관련해 잠시 서울을 방문한 그를 지난 13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한일관계가 이상하게 되니까 헌정회측에서 도와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지난 8월에 이어 이달 1일 헌정회 원로들이 도쿄 자민당 본부에 가서 의원들을 1시간 가량 만났고 오후에는 참의원협회를 방문했다. 우리쪽에선 헌정회 ‘OB’들이, 일본쪽에선 현역 의원들이 만나 ‘우선 교류는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나가노씨는 1961년 일본에 건너간 재일 한국인으로 도쿄 다이토분카대학과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하고, 1978년 유학 목적으로 영국 장기체류를 위해 귀화를 택했다. 현 정부 들어 한일관계가 꼬이면서 일본 정계에 인맥을 보유한 나가노씨도 양국을 오가며 할 일이 많아졌다.

“상대방 입장도 생각하며 줄건 주고 또 받고 해야되는데 현 정부는 주장이 딱 정해져 그걸 지키려한다.그래선 저쪽에서 받아내지 못한다. 상대방이 뭘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상대방의 모든걸 분석하고 평가해서 전략을 세워야한다. 덮어놓고 시작해선 안된다.”

나가노씨는 문재인정부의 대일(對日)외교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최근의 일본 수출규제와 관련한 무역분쟁도 양국 정부간 불신(不信)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오랜 세월 국제관계를 파고든 그에게 강대국의 각축장인 현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하는지 물었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나가려면 무엇보다 뚜렷한 원칙을 갖고있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한미일 동맹을 유지하고, 경제적으로는 한중일 3국이 같이 할 수 있도록 정치와 경제를 나눠서 가야한다. 여기서 양 그룹에 다 속해있는게 한국과 일본이다. 두 나라가 상호 협력하면 정치, 경제적으로 미중에 할말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는 상처로 얼룩진 근대사를 보유한 한중일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형성해나가기 위해 ‘동아시아 문화공동체를 만들자’는 일부 제안에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한중일 공동체는 하루아침에 되는게 아니지않나. 우선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한다. 과거는, 역사는 있는 사실 그대로 배우고. EU가 형성된거도 그 근원은 독일과 프랑스 국경지대 석탄·철강 공동체였다. 그런 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화제를 당초 그로부터 가장 듣고싶었던 얘기인 ‘재일동포 기업가’ 쪽으로 돌렸다. 나가노씨는 ‘일본의 전후배상’, ‘상호의존의 한일경제관계’, ‘한국의 경제발전과 재일 한국 기업인의 역할’ 등 한일 경제관계를 조명한 저서를 여러권 펴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가 되면서 교포들이 일본에서 번 돈을 갖고 고향을 찾아와 회사도 만들도 공장도 짓고 했다. 일본에선 중소기업이지만 한국에선 최첨단 기술이었다. 당시 일본은 해외송금액이 500달러로 제한돼 있었으나 재일 한국인에게는 예외적으로 3000달러까지 또 영구 귀국자에게는 1만달러까지 허용했다. 재산을 갖고 일본에서 아예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에 외화가 없을 때 큰 역할을 해준게 동포들이다.”

그는 이원만 코오롱그룹 창업주를 대표적으로 거론했다.

“이원만 형제와 아들인 이동찬이 오사카에서 모자에 광고를 새겨 파는 사업을 했었다. 한국에 들어와 일본과 합작해 나일론 등을 만드는 섬유회사를 차린거다. 수출공단을 만들어야된다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안한 사람이 바로 그다. 한국 최초의 공업단지인 구로공단의 경우 초창기 입주기업의 70~80%가 전기, 전자, 화학 등 업종의 재일교포 기업이었다. ‘한국에 자원이 없다고 하는데 얼마든지 있다’며 여성들의 긴 머리를 잘라 가발을 만들어 내다팔 것과 당시 나무를 베어 만들던 전봇대를 시멘트로 하면 된다고 제안한 사람도 이원만 전 회장이었다.”

김철호 기아자동차 창업주는 일본 자전거 회사에 근무하면서 배운 기술을 갖고 삼천리자전거를 만들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 재일동포 기업인들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며 “부품 소재 산업이 뒤떨어져 있던 한국에 정교한 기술과 노하우를 무료로 이전한 공적은 높이 평가해야한다”고 말했다.

전남 목포 출인인 그는 전윤철 전 경제부총리와 막역한 친구사이로 지난해 봄 12일 동안 신칸센을 이용해 함께 일본 열도를 종단했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그는 이날 오후 4시 비행기로 순천 출신의 아내와 3명의 자녀가 있는 도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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