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컴포트 슈즈의 대명사, 바이네르 1994년 설립
"신체의 주춧돌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신발이 좋은 신발"
2012년 '자랑스러운 中企人'상 받은 '자중회' 멤버
"나, 자중회 멤버야! 그 소리를 할 수 있는게 가장 좋았다"

국내 컴포트 슈즈의 대명사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가 경기도 일산동구 식사동 매장에서 인터뷰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복희 기자]
국내 컴포트 슈즈의 대명사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가 경기도 일산동구 식사동 매장에서 인터뷰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복희 기자]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많이 하고 또 강조한 말은 ‘고객’과 ‘봉사’, 이 두가지 단어였다.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바이네르 매장에서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58)를 만났다.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와 기다리고있던 김 대표와의 인터뷰는 매장 2층 한켠에서 이뤄졌다. 제화업계 상황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렵다. 구두 뿐이 아니고, 기업인들 100명 만나면 잘된다는 사람 1명 만나기 힘들다. 올해 들어서 더 심하다.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있다. 오늘도 광명을 다녀왔는데 오는 길에 보니까 빈 가게가 무지 많더라.”

이유가 무엇 때문인거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없이 최저임금 인상을 꼽았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좋아져야하는데 사람들이 더 영악해진 느낌이다. 사람 쓰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이럴바에야 사장을 안해도 되는데...’ 그런 마음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 사업하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어떻게 빨리 문을 닫을까’ 고민한다. 심각하다.”

사업주들이 문을 닫고 싶어할 정도로 경기상황이 어려움에도, 김 대표는 평소 ‘월급을 받고 사는 인생’ 보다 ‘월급을 주는 인생’이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뼈속까지 사업가다. 주변에도 ‘사업가가 되라’고 자신있게 권한다.

“전국에 70개 매장이 있는데 이 중 40개는 우리 회사에서 오래 일한 직원들이 독립해서 차린거다. 30개 정도만 직영이다. 직원들에게 ‘여기서 말뚝박고 일할 생각 말고 사업해라. 내가 해보니까 되더라. 월급쟁이로 일하는거 보다 사장이 훨씬 낫더라’라고 얘기한다.”

그가 직원들을 그처럼 독려하는 배경에는 자신의 인생경험이 녹아있다.

충남 당진이 고향으로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중졸 학력이 전부인 김 대표는 어린 나이에 상경해 작은 공장 몇군데서 '구두 만드는 일'을 배우면서 ‘구두’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 1984년 국제기능올림픽 제화부문에서 동메달을 딴 제화공 출신이다. 1991년 자신의 사업을 시작해 1994년 바이네르를 설립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구두로 그냥 쭈욱~’, 반백(半百)이 가까운 43년을 구두 만드는 외길을 걸었다.

그처럼 ‘한번 마음 먹으면 끝을 보는 것’이 타고난 환경을 극복하고 오늘의 성공을 이루게 한 비결이라고 그는 말했다.

강산이 네 번도 더 바뀔 동안 구두를 만들어온 사람은 ‘구두’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있을지 궁금했다.

“구두는 신체의 일부다. 내 몸의 주춧돌이다. 주춧돌이 약하면 내가 무너진다. 좋은 신발을 신어야하고 만들어야하는 이유다. 주춧돌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 있어야 좋은 신발이다.”

질문이 다소 추상적이었으나, 구두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실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그가 어떤 구두를 만들고자 했는지 또 그가 만든 구두는 어떠한지, 신어보지않아도 짐작이 가능했다. 바이네르가 국내 컴포트 슈즈의 대명사가 된 비결이 거기 있었다.

특정 사물과 친하면 본성(本性)이 닮는 것인지, 그가 들려주는 삶의 철학은 신체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이타적(利他的) 사물인 구두와 여러모로 비슷했다.

“돈을 벌어서, 일을 해서 무엇을 할거냐. 첫째 ‘세상을 아름답게 하자’, 둘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자’. 셋째 ‘그 속에서 나도 행복하자’. 내 행복을 먼저 챙기면 이기적이 될 수 있으니, 내 행복이 제일 늦게 따라가야 한다. 내가 사는 곳이 이 세상인데 좋은 세상에서 살아야 나도 좋은거 아닌가. 이웃의 소중함을 중요시한다.”

김 대표는 "사업하면서 직원들 다 보내고 정작 본인은 돈이 없어 고향에 못 간적이 세 번 정도 있었다"며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 시기를 지나 주머니에 돈이 생기고, 먹고 살만하고, 고향 가서 한턱 낼 수 있을 정도가 되면서 그는 ‘성공이 뭘까’ 궁금해지기 시작해 그 답을 찾고자 많이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내가 행복하게 살면서 존경받는 인생’, 그가 찾은 성공의 정의다. ‘어떻게하면 존경받으며 행복하게 살까’, 그게 본인의 인생과제라고 했다.

활발한 사회 기부 및 봉사활동, 효도잔치, 군부대 강연 및 국군장병 해외여행 지원, 청년 창업멘토 등 모든 게 인생과제를 해나가는 과정인 셈이다. 스키, 서핑, 골프, 요리 등 다양한 취미생활이 에너지원이라는 그는 군인들 대상으로 스노보드 강습도 한다. 프로골퍼 김우현 선수가 김 대표의 차남으로 김 대표가 자선 골프대회를 자주 여는 이유다.

김 대표는 자신의 인생스토리를 책으로, 노래로 세상에 발표했다. 지난해 발간한 에세이 ‘힘들어도 괜찮아’(도서출판 행복에너지)는 영문판으로도 출간했으며, 동명(同名)의 노래는 그가 가사를 붙이고 직접 불렀다. “내 노래를 들으면 '김원길 인생이네'라고 사람들이 말해준다”며 환히 웃었다. (인터뷰 중간에 직원이 차와 사과를 내왔다. 김 대표는 고객이 보내온 사과라며 권했다.)

이날 인터뷰가 진행된 일산 식사동 바이네르 매장 입구엔 이곳에서 1일 명예지점장을 한 바이네르 충성고객의 사진액자 18점이 걸려있었다. 김 대표의 고객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우리 고객은 굉장히 위대한 분들이 많다. 어떤 날은 하루 영업해보겠다며 1일 지점장을 시켜달라고 한다. 그렇게해서 많게는 하루 3300만원어치를 판 고객도 있다. 오랜기간 우리 신발을 신어온 그런 충성고객이 100명이 넘는다. 그 분들에겐 이태리에서 명품 가방을 만들어 보내고, 요트에서 선상파티도 해드리는 등 특별 대우를 한다.”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한편으론 자신이 원하는 삶을 거침없이 살아가는 듯한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 있다면 ‘더 예쁘고 더 편한 구두를 만들어서 세계 무대에 한번 우뚝 서보는 거’라고 했다.

“이태리에 매장을 하나 내려고 하는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 (식사동 매장 같은)이런 매장 하나 내려면 월 5000만원이 든다. 그거 빼곤 바이네르 브랜드로 진출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다. 이태리에 구두 만드는 명장들을 잘 안다. 10군데 하청을 주고 있는데 오더 달라고 서로 줄서 있다.”

김 대표는 중소기업인들이 영예롭게 여기는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 상을 2012년 4월 수상했다. 그는 ‘자중회’(사단법인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 협의회’) 회원이 되고나니 뭐가 가장 좋으냐는 질문에 “나, 자중회 멤버야! 그 소리를 할 수 있는거”라고 답했다. 그만큼 자부심을 느낀다는 얘기였다.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일산 식사동 바이네르 매장 한켠에서 이뤄진 인터뷰 도중,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가 자신이 노랫말을 짓고 직접 부른 '힘들어도 괜찮아' 노래 얘기를 하며 환한 미소를 짓고있다.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일산 식사동 바이네르 매장 한켠에서 이뤄진 인터뷰 도중,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가 43년간 구두 만드는 외길을 걸어온 뚝심인생을 풀어놓으며 환한 미소를 짓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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