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수산대 졸업후 원양어선 타다 1981년 오만에 정착
이슬람어로 '바다'를 뜻하는 '알 카우스(AL KAUS)' 설립
원양어선 5척 운영하며 유럽, 일본, 중국 등지로 연 3000만달러 수출
여수 세계한상대회 참석차 고국방문, 여수충무고교에서 특강

오만의 리딩CEO 김점배 '알 카우스(AL KAUS)' 트레이딩 회장이 지난 21일 오전 여수충무고교에서 특강을 마친뒤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만의 리딩CEO 김점배 '알 카우스(AL KAUS)' 트레이딩 회장(앞줄 왼쪽에서 네번째)이 지난 21일 오전 여수충무고교에서 특강을 마친뒤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아라비아 반도 남동쪽에 위치한 나라, 오만. 한낮엔 섭씨 50도까지 올라가는, 나무도 풀도 없는 열사(熱沙)의 땅에서 바다를 무대로 ‘뱃일’을 업(業)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고국땅, 그것도 고향에서 특강을 한다길래 아침 비행기표를 끊어 여수로 향했다.

지난 21일 오전 전남 여수충무고등학교 시청각실엔 똘망똘망한 눈망울의 고교 1,2학년생들이 이름도 생소한 나라인 멀리 오만에서 날아온 김점배(62) ‘알 카우스(AL KAUS) 트레이딩’ 회장의 강연을 듣고자 모여들었다.

이 날 강연은 재외동포재단 주최로 지난 22~24일 여수에서 열린 세계한상대회 부속 행사의 하나로 여수지역 고교생 및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마련된 ‘한상 CEO 특강’ 중 하나다.

김 회장은 바로 옆 장흥 출신으로 여수수산대학(현 전남대 여수캠퍼스)을 졸업하고 원양어선을 타다 1981년 오만에 눌러앉았다. 현재는 원양어선 5척을 운영하며 수산물을 조업해 아프리카, 유럽, 일본, 중국, 한국 등지로 연간 3000만달러 정도 수출하고 있다.

‘뱃사람’ 답지않은 온화한 이미지의 김 회장과 강연 시작전 인터뷰 겸 잠시 얘기를 나눴다.

오만은 이슬람 설화 ‘천일야화’에 나오는 신밧드의 고향이다. 신비스런 이미지의 그 땅에 한인들이 몇 명이나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궁금했다.

“순수 교민은 120명 정도이고, 주재원을 포함하면 200~300명 정도 됩니다. 개인사업을 하거나 게스트하우스, 화장품 판매업 등을 하며 살고있어요. 현지인에게 경비를 지불하고 보증을 받는 스폰서 제도가 있어 외국인이 뿌리를 내리기가 어려워요. 눈높이를 낮추어 다른 방향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로 가는게 더 낫습니다.”

김 회장은 실제로 ‘중동 아프리카 한상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어 아프리카 한인사회에 대해서도 잘 알고있다.

“수확량 하나만 보더라도 아프리카는 우리나라의 6분의1 수준밖에 안돼요. 경작능력, 기술수준이 그만큼 뒤떨어집니다. 아프리카 전역에 우리 교민은 1만2000명 정도되며, 그중 3000명 정도가 남아공에, 이집트에 1000명 정도가 살고있어요. 요즘엔 자동차정비업이나 자동차액세서리업, 컴퓨터 부품 사업 등을 하며 살고있고, 예전엔 남아공 사진관은 한인들이 장악하고 있었을 정도로 가발사업과 사진관을 많이들 했습니다.”

김 회장은 여수엑스포 이후 이 지역의 두 번째 큰 행사인 세계한상대회가 어떤 행사인지, 한상(韓商)은 누구인지, 고교생에게 생소한 오만이란 나라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이 날 특강의 문을 열었다.

이어 여수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 어떻게 오만까지 가게됐는지 설명을 이어갔다.

“세상을 품으려면 바다를 품으라는 고교 선생님의 말씀에 당시 수산대학에 진학을 했어요. 졸업후 항해사가 되어 원양어선을 타고 태평양, 인도양을 거쳐 오만까지 가게됐는데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부도난 회사의 배 2척을 인수해 오만에 정착했습니다.”

회사이름 '알 카우스(AL KAUS)'는 이슬람어로 '바다'라는 뜻이다. 

김 회장 회사의 주요 조업 장소는 다름아닌 소말리아 해역이다. 지난 2011년 해군 청해부대가 해적에게 피랍된 우리 해운선박을 해상에서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의 무대다.

“당시 여명 작전을 수행한 곳이 소말리아 해역이고, 작전에 필요한 지원작업을 오만 수도인 무스카트에서 했어요. 우리 구축함이 피랍선박을 구출해 무스카트로 들어왔을 때 국가가 주는 표창장도 받았습니다. 우리 원양어선만 해도 용병들을 싣고, 총을 준비해 경비를 서면서 작업을 합니다. 밖에서 세상사는게 쉽지않아요.”

김 회장은 1970년대 여수에서 고교와 대학을 다니면서 새벽에 동네 샘터에 나가 한시간씩 기다려 물을 길어다먹은 생생한 기억을 안고 있다. 당시 잠을 못자며 물과 씨름했던 기억이 성공한 한상 CEO가 된 지금, ‘아프리카 평화의 샘물’ 지원사업을 하는 실마리가 됐다.

척박한 대지에서 살고있는 아프리카인의 목을 축이게 하는 사업으로 김 회장은 개당 500만원씩의 지원을 해 지금까지 7개국에 20개의 우물을 팠다. “돈을 버는 것은 혼자만 쓰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로 그는 물 얘기를 꺼냈다.

김 회장은 이 날 강연료에 소정의 금액을 보태 학생들의 간식비용으로 내놓고 고교 급식실에서 점심식사를 한후 고국에서의 특강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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