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  북경화쟈대학교 겸임교수
박춘태 북경화쟈대학교 겸임교수

15년 전 필자는 뉴질랜드에서 한국음식 때문에 수모를 겪은 적이 있다.

어느 날 '키위'(뉴질랜드 사람을 지칭) 친구들과 파티를 하게 되었다. 파티에 각자 준비해 갈 음식을 만들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키위 친구 한 명이 자기 집에서 같이 요리를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 왔다.

그래서 친구 집에서 같이 요리를 하게 되었는데, 한국 음식을 전혀 먹어 본 적이 없던 키위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선보일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마치 거대한 환상에 사로잡힌 듯.

필자는 김치볶음밥을 만들기로 하고 한국 마트에서 김치 등 여러 가지 식재료를 사 가지고 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김치를 썰고 있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필자 옆에서 다른 음식을 준비하던 키위 친구가 상당히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얼굴을 찡그리는 것은 물론, 때로는 코를 막기도 했다. 그야말로 고투였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점은 그러한 행동이 요리하는 내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척 염려되었다. 할 수 없이 무슨 이유인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친구의 대답은 놀라웠다. 김치 냄새가 역겨울 정도로 정말 고약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참으로 눈물이 났다. 그 친구만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요리했음에도 파티장에서 키위들은 김치볶음밥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한국의 대표적 음식인 김치가 철저히 외면당하는 느낌이었다.

60년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지만, 키위들에게 김치가 혐오 식품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경제적 발전 못지 않게 그동안 김치 맛도·문화도 발전해 오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세계 어딜 가더라도 한국 사람에겐 김치 없이는 며칠을 견뎌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키위 친구들 앞에서 김치를 먹다가는 관계도 단절될 것 같았다. 문화 이해의 한계와 그 충격이 이렇게 클 줄이야 미처 몰랐다. 한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시퍼렇게 멍든 기분으로 의기소침하게 지냈다. 그러면서 안전지대에 대피만 하고 있을 것인가. 또 계속 키위들의 분위기에만 맞춰줘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일부 키위들 사이에서는 증발 위기로 느껴질 김치였기에 심정이 참으로 암울했다. ‘버려진 자식’으로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김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통성과 얼을 사라지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방법이 필요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관심도를 불러일으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김치의 효능과 건강에 미치는 유익한 점을 알려주기로 했다. 각종 인터넷 자료와 한국 방문시 추천하는 김치 박물관 방문 등으로 인식이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 뉴질랜드에서는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혐오 식품으로 간주되던 김치가 가장 선호하는 건강 식품 중의 하나로 군림하고 있다. 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러한 면에는 김치맛과 종류의 진화도 한몫을 담당한다. 시대에 부응하는 ‘한국 김치’를 만들어냄으로써 김치열풍을 몰고 오고 있다.

며칠 전 필자는 뉴질랜드 대형마트인 파컨세이브에 갔다. 식품 코너에 오랜만에 무언가를 시식하는 코너가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놀랍게도 한국 김치가 아닌가. 직원은 뉴질랜드 현지에서 생산한 유기농 김치라고 소개했다. 건강에 특효가 있다고 하면서 시식을 권유했다.

이렇듯 한국 김치가 뉴질랜드인들의 삶의 양식을 바꾸며 건강을 견인하고 있다. 한국 음식 뿐만 아니라, 한복, 한옥 등 다양한 우리 문화는 세계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문화 영토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경제의 활성화, 국력 증대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제 성장과정에서 진행된 ‘빨리 빨리’의 문화와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숨에 우위를 점하는 것에만 매달려서는 안되며 점진적으로 이뤄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총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컨터롤타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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