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최근 모 기자가 5대 경제단체장 중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늦은 시각, 술 기운이 오른 상태에서.

기자에겐 성역이 없다? 물론 나름 체계를 갖춘 언론사는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을 상대로 일명 ‘사스마와리’(경찰출입)를 내보면서 취재원의 직위에 주눅들지 않고 서슴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일종의 ‘배짱 교육’을 함께 시켰다.

요즘은 달라졌겠으나 90년대초 필자가 언론사에 입사했을 무렵만 해도,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을 지휘하는 시경 ‘캡’이 수습기자들을 각 경찰서에 내보면서 오죽하면 “경찰서장실 문은 발로 차고 들어갈 것이며, 들어가서도 소파에 앉지말고 서장책상에 걸터앉으라”고 농담반 진담반 가르쳤을 정도였다. ‘캡’이 병아리 기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의도는 그대로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성역’ 없이 다가가 취재를 하려면 그 정도 배짱은 지녀야한다는 의미였을게다.

이와 더불어 기자라는 직업은 대통령이나 정치인, 고위 공직자부터 평범한 시민, 피의자,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계층의 벽을 치지않고 누구든 ‘열린 자세’로 다가가야하기에 그때그때 취재상대와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매너’나 ‘태도’도 경력이 쌓이는 것과 함께 배우고 갖춰나간다.

그렇다면 해당 기자는 당연 예의를 갖추고 대해야할 사회적 지위의 경제단체장에게 늦은 시각, 술기운을 풍기면서 전화를 걸 정도로 다급한 사안이 있었던걸까. 뜬금없이 전화를 받은 해당 경제단체장은 수백만 기업인의 '얼굴'이자 대표자인데 말이다.

대한민국 대표 경제단체장 중의 한명인 ‘그’의 핸드폰 번호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게 아니다. 더욱이 적절치않은 시각에 걸려왔음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에 찍힌 번호의 출처를 보고 해당 단체장이 전화를 받았다는건, 그 기자가 속한 매체든, 기자 개인이든 지니고 있는 영향력이 적어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만한 직위의 개인폰 번호가 주어지는 과정엔 취재원과 기자간에 상호 선(線)을 지켜줄 것이란 암묵적인 ‘신뢰’ 또한 기본으로 깔려있다. 그 정도로 심하게 ‘격’(格)을 허물 만큼 해당 기자는 뭐가 그렇게 다급했던 것일까.

필자가 전해듣기론, 기자 본연의 임무나 역할과 전혀 관계없는 사안을 술기운을 빌어 해당 경제단체장에게 쏟아부었다고 한다. 게다가 문제의 기자는 그 경제단체에 출입한지가 무려 15년이나된, 수십개 언론매체가 출입처로 등록하고 있는 해당 경제단체 기자단에서도 모범이 돼야할 위치와 연조(年條)에 있다. 그같은 처신을 통해 후배기자들은 뭘 보고 배우겠으며, 더욱이 기업인들은 본인들의 수장(首長)이 받은 ‘무례’(無禮)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언론매체가 통상 소속기자들을 한 출입처에 오랜기간 붙박아두지않고 출입처를 돌리는데는 언론특성상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한가지는 매너리즘에 빠지다 못해 출입처에 동화(同化)되어 은연중에 ‘한솥밥’을 먹는 ‘식구’ 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또 기사를 생산하는 부작용 내지는 우려 때문이다. 취재원을 대하는데 있어 적정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않고, 기사 또한 객관성을 잃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기자와 취재원 사이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말라’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철칙이 있다.

필자가 언론사에 첫 발을 디딘 90년대초와 비교할 때, 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거의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겪었다. 작금에 언론의 위상은 ‘이빨 빠진 호랑이’ 수준이 되었으며, 디지털세상의 도래에서 존재근본인 ‘정체성’을 고민하는 상황이다. 상당수 언론매체는 어떻게 연명할지,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해야할 정도로 난감한 형편에 처해있다. 매체가 크든 작든 언론에 몸담고 있는 기자들은 현 언론상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기레기’ 소리를 듣는 현실에서도 누군가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와 같은 류의 퇴색한 깃발을 가슴에 세우고, ‘3D직종’이 돼버린 기자라는 직업을 힘겹게 버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서로간에 매너는 지키자.”  또 한가지 더, “적어도 기자라면 힘없는 위치의 상대일수록 더더욱 헤아리고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봐줄줄도 알자.” 특히나 자기가 서있는 위치보다 그 아래를 바라볼 때 지녀야하는 ‘따뜻한 시선’, 기자의 중요 덕목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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