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전통 을지OB베어 ‘퇴거 위기’
임대차분쟁으로 ‘강제대집행’ 초읽기
노가리골목만의 상생전통 ‘의미퇴색’

을지OB베어는 지금의 자리에 1980년부터 39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현재는 건물주와 임대차소송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황무선 기자]
을지OB베어는 지금의 자리에 1980년부터 39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현재는 건물주와 임대차소송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황무선 기자]

[중소기업투데이 박진형 기자]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도, 서울시의 ‘미래유산’도 가게를 지켜주는 마법의 방패가 아니였다. 그냥 무용지물이다. 최근 표면적으로 임대차분쟁으로 퇴거 위기에 놓은 서울의 ‘을지OB베어’의 이야기다. 을지로 노가리골목이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 골목을 일궈온 일등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을지OB베어는 건물주의 퇴거 강제대집행이 언제 이뤄질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어쩌면 몇 년 뒤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 사례로 을지OB베어가 회자될지도 모를 일이다.

강호신 을지OB베어 사장이 생맥주를 따르고 있다. [황무선 기자]
강호신 을지OB베어 사장이 생맥주를 따르고 있다. [황무선 기자]

6평 그리고 39년

을지OB베어는 1980년 창업주인 강효근 사장이 현재의 위치에서 오픈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은 딸인 강호신 사장과 사위인 최수영 씨가 창업인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OB베어 영업신고증을 보면, 건물 준공공사를 받은 날과 동일하다. 그만큼 장사에 대한 애착을 갖고 철저히 준비를 했을 터. 지금이야 생맥주가 여름철 갈증을 풀어주는 대명사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대중화 되기도 전이었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젊은이들만 즐기는 술이 바로 생맥주였던 때였다. 

강호신 사장은 당시 어려웠던 창업 초기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스티로폼 하나로 2년 5개월을 이곳에서 식사하시고 쪽잠을 주무시면서 장사를 하면서 일궈온 가게입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이 골목에서 저 골목까지 청소를 하셨지요. 골목 구성원으로 함께 산다는 생각을 하셨기 때문에 365일 하루를 거르지 않고 그렇게 하신겁니다.”

이곳은 다른 노가리 가게와는 달리 오후 11시까지만 장사를 한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오후 10시면 문을 닫았다고 강호신 사장은 말했다.

“예전부터 이곳은 인쇄, 공구, 도일, 타일 등 조금은 힘든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새벽같이 일을 해야 하는 분들이지요. 이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장사를 밤늦게까지 하지 않으셨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술집이 그런다는 건 이해가 잘 안가지만 아버지는 그러셨어요.”

장사로 생업을 이어가시는 골목의 상인들이 피곤한 몸으로 일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속깊은 배려였다는 설명이었다.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가게를 일찍 닫으면, 최소한 우리집 손님들은 집으로 일찍 돌아가 가족들과 과일이라도 나눠먹고 얼굴이라도 보지 않겠냐”며 “그런 마음에서 36년간을 폐점시간을 지켜 오셨다”고 설명했다.  강호신 사장은 이것이 바로 아버지가 골목 한 구성원으로 실천해온 ‘상생’이었다고 전했다.

이러던 차에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등으로 인해 생맥주가 널리 알려졌다. 장사는 잘됐다. 하지만, 을지OB베어는 가게를 확장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창업주 강효근 사장이 철칙이었다.

창업주인 강효근 사장이 3년전 일선에서 물러간 후, 최수영 씨가 아내인 강호신 사장과 함께 가게를 이끌고 있다. [황무선 기자]
창업주인 강효근 사장이 3년전 일선에서 물러간 후, 최수영 씨가 아내인 강호신 사장과 함께 가게를 이끌고 있다. [황무선 기자]

냉장숙성맥주의 기막힌 ‘맛’

을지OB베어는 OB맥주가 프랜차이즈로 외부에 낸 1호점이기도 하다. 생맥주가 대중화 되면서 OB맥주 지점이 많이 늘었지만, 을지OB베어는 회사에서도 많은 애착을 가진 가게였다. 

 “단순이 매출이 많아서가 아니였어요. 아버지의 창업정신, 서비스정신 등 경영철학이 결국은 타 지점의 롤모델이 되었거든요” 강호근 사장의 말이었다. 물론 맥주 맛이 탁월하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을지OB베어는 OB맥주의 프랜차이즈 1호점으로 OB맥주 사보에서 가게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번 실렸다. [황무선 기자]
을지OB베어는 OB맥주의 프랜차이즈 1호점으로 OB맥주 사보에서 가게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번 실렸다. [황무선 기자]

“요즘 많은 호프집이 급속냉각 맥주를 내놓고 있지만, 저희는 지난 39년 냉장숙성 맥주를 제공합니다. 80년대 초기 국내 냉장고가 좋지 못하던 시절, 아버지께서는 미8군에서 GE 냉장고를 불허 받았습니다. 신선한 맥주 맛을 유지하기 위해 서였죠. 지금도 총 4대의 냉장고에 맥주를 보관하고 있다가 하루 물량이 소진되면 영업을 종료합니다. 다른 집이 급속 냉동기를 이용해 술을 팔고, 병맥주를 비롯해 다양한 맥주를 취급하고 있지만, 저희는 창업이후 지금까지 오직 생맥주 하나만 내놓고 있습니다.”

함께 제공하는 노가리도 가격에서 마진을 남기기보다 시원한 맥주를 파는 집에서 주는 서비스 차원의 안주로 보면 된다. 일반 호프집에 비해 간단한 안주들만 매뉴판에 있고, 가격 역시 보기 드물게 착하다.

매년 노가리를 대량으로 매입을 해두고 손님들에게 같은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젠 현재의 가격인 1000원을 넘어 노가리 안주 하나만 보면 적자라는 게 강호신 사장은 귀뜸이었다. 이곳을 찾는 오랜 단골들을 위한 배려였다. 더욱이 노가리를 찍어먹는 비법의 특제 고추장에는 39년의 매콤함이 묻어있다.

을지OB맥주 매장 앞에는 초창기 OB맥주의 캐릭터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황무선 기자]
을지OB맥주 매장 앞에는 초창기 OB맥주의 캐릭터가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황무선 기자]

임대인과 임차인의 다툼?

OB베어의 임대차계약과 관련해서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계약을 앞두고 보증금을 5000만원을 올려줬어요. 그런데 이를 보증금 아닌 일시금으로 처리를 하고 ‘건물이 폭파될 때까지 장사를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피 같은 돈이고 큰 돈이지만, 지난 30여년을 장사한 곳이니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닌 장사를 해도 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계약을 맺었지요. 이때 5년 계약을 해서 만료일이 지난해 10월 30일이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6월부터 주변 가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인근의 3개 가게가 건물주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계약만료 후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사비용을 줄 테니 나가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들 3개 가게 주인들은 어차피 명도소송이 들어오면 이사비용도 못 받으니 그것이라도 받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3곳을 저희 바로 옆 가게인 A호프가 오픈을 하는 거예요. 놀랐죠. 이 골목에서 가장 많은 매장을 갖고 있고, 저희 가게 좌우가 다 그 가게입니다. 그 가게 입장에서는 이곳이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주변에서 건물주가 을지OB베어를 내보내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을지OB베어는 건물 소유자 4명중 가장 연장자인 B씨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상황파악에 나선 이후 그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강호신 사장은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OB맥주의 시대를 알려주는 잔들이 선반을 채우고 있다. [황무선 기자]
OB맥주의 시대를 알려주는 잔들이 선반을 채우고 있다. [황무선 기자]

“지난해 8월 30일 출근을 하려고 나오는데, 그분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가게 근처에서 만났는데, A호프와 이미 6월 13일 가계약도 아닌 원계약을 했다는 거예요. 이를 파기하면, 건물주들이 소송을 당할 수 있어 우리한테 나가달라고 양해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하늘이 무너지더라구요. 아니면 우리가 A호프와 원만히 해결해서 오면 해오는 데로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현재 상황은 이렇다. 건물주는 계약만료 3달 전인 지난해 6월 임대차계약 해지를 통보해 가게를 비워줄 것을 요청했다. 을지OB베어는 1심에서 패소한 상황이다. 올해 2심이 진행 중이며, 지난 9월 6일경에 을지OB베어 측은 전자 명도소장을 받았다. 이후 10일 건물주가 집행문을 찾아가서 이제 집행인을 대동해 강제 철거가 가능해진 상황이다.

정부나 시에서도 재산권의 다툼으로 섣불리 나서기도 힘든 상황이다. 혹여나 지원책이 있는지 문의를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공감은 하지만, 도와줄 수 있는게 없다. 변호사 선임 등을 알아봐 주겠다”는게 다였고 한다.

건물주가 모든 법적 절차를 하자없이 진행을 하고 있지만, 강호신 사장은 아쉬울 수 밖에 없다.

“지난해 6월 A호프와 계약 이전에 저희에게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30여년을 한 장소에서 장사를 했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을지OB베어의 메뉴들은 착한가격을 보여준다. [황무선 기자]
을지OB베어의 메뉴들은 착한가격을 보여준다. [황무선 기자]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인가?

을지OB베어는 전통에 걸맞는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 서울시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황무선 기자]
을지OB베어는 전통에 걸맞는 중소벤처기업부 ‘백년가게’, 서울시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황무선 기자]

골목이 뜨면 결국 ‘돈’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 골목상권을 만들었던 가게 상인들은 높아지는 임대료로 골목을 떠나야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그러했고 부산 해운대의 해리단길에서 그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가리골목도 또한 그러한 길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가리 가게를 제외한 일반 가게 상인들도 울상이다. 겉으로만 보면 노가리 가게가 유명세를 타며 상권이 살아나고 사람들도 북적북적 거린다. 하지만 대부분 노가리 가게를 찾는 사람들로 이곳 공구상가를 비롯한 토박이 상인들의 영업과는 사실상 무관한 유동인구들 뿐이다. 게다가 오히려 노가리 가게의 임대료가 오르며 주변 상가로까지 불똥이 튀는 상황이라 난감할 뿐이다. 취객들도 문제다. 매일 아침 출근 후 청소가 큰 일이 돼버렸다고 하소연한다.

얼마 전부터 노가리골목 주변 부동산 가게에는 이런 말이 돌고 있다고 한다. A호프를 웃돈을 주고 인수한 현 소유자가 모든 가게를 몇 십억에 처분하고자 내놨다는 소문이다. 어쩌면 을지OB베어를 시작으로 도미노처럼 근처의 상인들이 높은 임대료에 하나둘씩 보따리를 싸서 나가야 할 판이다.

인터뷰 말미에 “여기를 지켜야 합니다. 도와주세요”라는 강호신 사장의 흔들리는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뒤섞여 묻어나왔다.

을지OB베어의 그간의 이야기가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황무선 기자]
을지OB베어의 그간의 이야기가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황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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