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칼럼/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역사에서 소니, 나이키, 엔론은 고전적인 기업들이다. 세 기업은 각각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 지겨울 정도로 언급되기 때문이다. 이중 살인적인 저임금을 받고 축구공을 깁는 아동의 사진이 잡지를 통해 세상에 공개되면서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바 있는 나이키 사례는 특히 유명하다. 이 사건 이후 나이키는 인권경영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반부패(anti-corruption)과 관련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기업은 바로 독일의 지멘스다. 리비아, 아르헨티나 등에서 계약 수주를 위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기업과 공무원, 정치인들에게 제공한 사실이 2006년 적발되어, 16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 받았다. 기업의 이미지는 땅에 떨어지고 다른 기업과의 제휴나 계약도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 사건 이후 지멘스는 뼈아픈 반성을 시작했고 지금은 준법경영의 모델이 되었다.

지멘스가 부패 스캔들로 받은 16억 달러 벌금은 기업 역사상 최고 액수였다. 그런데, 지난해 이 벌금 액수를 능가하는 기업이 나타났다. 바로 브라질 대형 건설 기업인 오데브레시(Odebrecht)로, 브라질 국영 에너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Petrobras)에 장비를 납품하거나 정유소 건설 사업 수주 등의 과정에서 수십 년 동안 막대한 뇌물을 제공한 죄로, 미국 법원으로부터 무려 26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오데브레시 부패 스캔들은 지금 중남미 전역에서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는데, 뇌물의 일부가 정치인에게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16년 5월 발간한 ‘부패 : 비용과 경감 전략’(Corruption : Costs and Mitigating Strategies) 보고서에 따르면 뇌물 규모는 세계적으로 연간 약 1.5조~2조 달러로 추산되며, 이는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대략 2%에 해당된다. IMF보다 적지만 세계은행은 매년 약 1,100조원 이상의 돈이 뇌물로 사용된다고 추산했다. 뇌물은 부패의 유형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부패의 전체적인 경제적·사회적 비용은 훨씬 더 클 가능성이 높다.

IMF 보고서는 부패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며, 경제성장을 위해 뇌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EU 반부패보고서’(2014.2월)에서 부패로 EU 경제가 매년 약 1,200억 유로의 금전적 손실을 입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부패의 핵심에는 대부분 기업(조직)이 연루되어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50%에 달하는 기업(조직)들이 사업 수주 또는 유지를 위해 뇌물을 제공하고 있다.

유엔, OECD, 유럽평의회는 부패(corruption)에 대한 별도의 정의(definition)를 내리지 않고 다양한 유형의 부정행위를 명시한다. 부패는 뇌물, 담합, 탈세, 돈세탁, 이해상충, 내부자 거래, 불법적 정보 중개, 영향력 행사에 의한 거래 등 다양한 유형과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하나의 정의로 인한 부패의 범위 축소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서다. 부패는 경제적 손실을 넘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신뢰를 갉아먹어 사회 전반의 윤리기준을 타락시킨다. 이는 유엔과 투명성기구 등 국제기구와 단체들이 부패와의 싸워 온 이유이며, 전세계적으로 반부패 관련법이 점차 강화되어 온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FCPA(해외부패방지법), 영국의 Bribery Act(뇌물방지법)은 반부패 및 뇌물방지를 위한 해외의 대표적인 법이다. 우리나라에는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있다. 이중 영국의 ‘Bribery Act’은 영국 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정부 관료에 대한 뇌물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표자에게는 10년 이하의 징역을, 법인에게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하도록 한 양벌 규정을 명시한, 가장 강력한 뇌물방지 법이다. 이 양벌 규정에서 면책될 수 있는 조항도 있는데, 해당 조직이 뇌물방지를 위해 적절한 절차를 시행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경우다. 면죄부는 아니지만 ISO 37001은 기업들이 이 양벌 규정에 대응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로 나왔다.

전세계적인 반부패 관련법의 강화로 기업들의 부패 리스크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부패 관련법은 여전히 약하고 부패기업에 관대하다. 최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점은 이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삼성전자를 위해서도, 우리나라 기업들을 위해서도 좋은 처방이 아니다. 향후 부패와 단호하게 절연할 기회를 차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반인권경영 나이키가 인권경영의 대표기업이, 부패기업 지멘스가 준법경영 대표기업이 될 수 있었던 건 그에 상응하는 단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전자에게 지멘스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서 아쉬울 뿐이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