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 칼럼] 느림의 가치와 필요성
[박춘태 칼럼] 느림의 가치와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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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태 북경화쟈대학교 겸임교수
박춘태  북경화쟈대학교 겸임교수
박춘태 북경화쟈대학교 겸임교수

현 시대를 초광속 통신시대라 부른다. 실시간 쌍방향 정보교환이 거의 동시에 이뤄질 정도이다. 이와 더불어 인간은 감당하기가 벅찰 정도로 첨단 문명의 이기에 이끌리고 있다. 빠른 속도, 빠른 생산성을 추구하는, 그야말로 빠름으로 연결하는 세상이 되었다. 특히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사용은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마저 앗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만남도, 업무상의 회의도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비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인스턴트 대화·만남이 대세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제대로 연결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질적 만남이 이뤄지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만남의 가치가 빛바랜 듯하다. 이렇다보니 타인에 대한 진지한 배려와 이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뿐만 아니다. 빠름을 추구하기에 음식도 인스턴트 음식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 요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부 음식은 빠름을 추구하는 현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됐다. 음식을 먹을 때 즐거움과 여유로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음식을 먹는 속도가 빠르다보니 건강을 해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빠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현시대에 느림을 미학으로 간주하는 나라가 있다. 뉴질랜드를 꼽을 수 있다. 그 단적인 예로 지진 복구 기간만 봐도 알 수 있다.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에서는 2010년 9월과 2011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지진이 발생했다. 각각 진도 7.4와 6.2의 강진이었는데, 일부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끊어지고 통신이 두절됐다. 혼란과 고통이 동반됐다. 늘 평온하기만 하던 도시에 이런 큰 규모의 지진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시민들은 불안감, 무서움,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생필품이 부족했지만 침착성을 잃지 않았으며 사재기 또한 하지 않았다. 각지에서 공급된 식음료, 물자 등 구호물품을 받을 때는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양보와 배려의 릴레이’를 하기도 했다. 참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점은 지진 복구 기간을 15년에서 20년 정도로 정했다는 점이다. 지진 복구 작업이 늦어도 대부분 5년 전후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그들은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빠름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왜 그런가. 지진방지를 위한 최신식의 공법을 적용함은 물론, 서두르지 않고 더욱 철저히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의도이다. 국민들은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는다. 빠르게 진행하면 구석구석 확인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하기에 구석구석 확인하고 느끼기 위해서는 느림을 선택해야 한다. 느린 거북이가 장수를 하고 느린 달팽이가 넓은 풍경을 보지 않은가.

1999년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nti)에서 슬로시티(Slow City)가 시작되었다. 느림의 철학을 근간으로 조화로움과 상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도시를 뜻한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16년에 슬로시티는 30개국 225개 도시로 크게 확대됐다. 슬로시티의 가치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음을 역력히 알 수 있다. 천천히 걸어야 더 많은 곳을 보듯 느림이 있어야 삶이 여유롭다. 또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도 넉넉해진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환경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한다. 시간의 재촉은 기다림과 여유를 주지 않지만, 느림은 여유로움을 주며 마음을 풍족하게 한다. 슬로푸드와 더불어 슬로라이프가 세계적 화두이다. 근래 들어서는 한식이 해외에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현지화에 성공한 면도 있지만 슬로푸드가 갖는 여유와 느림을 함께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빨리, 빨리” 문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무한 경쟁으로 세상을 각박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하루빨리 삭막한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의미한 삶과 세상을 더욱 넓게 보려면 느림의 철학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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