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없는 43년사 발간에 손도장 기념비(?)까지
구속된 가스안전공사 전임 박기동 사장 ‘奇行’

한국가스안전공사 본사 전경
한국가스안전공사 본사 전경

[중소기업투데이 황무선 기자] 강원도 영월 주천면에 위치한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이하 에안센터) 앞에는 센터 준공을 기념한 커다란 기념비가 있다. 올초 김형근 사장이 새로 취임 하면서 지금은 내용들이 지워졌지만 기념비에는 전임 박기동 사장의 이름과 함께 마치 헐리웃 스타처럼 그의 손도장이 새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다. 현재는 모두 치워졌지만 서울지역본부 건물 앞과 본사 잔디구장을 비롯해 공사 5곳에 세워졌던 크고 작은 기념비(?)에는 어김없이 전임 사장의 이름이 새겨졌다. 특히 서울지역본부에 서있었던 기념비는 본부 리모델링 후 세워진 일명 ‘리모델링 머릿돌’이었다. 역대 어떤 사장들도 하지 않던 기행이란 평이다.

 

영월에 위치한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본관동 앞 기념비의 모습. 현재 기념비는 김형근 신임 사장의 취임과 함께 전임 사장의 손도장이 지워진 상태다.
영월에 위치한 한국가스안전공사 에너지안전실증연구센터 본관동 앞 기념비의 모습. 현재 기념비는 김형근 신임 사장의 취임과 함께 전임 사장의 손도장이 지워진 상태다.

웃음거리 기념비와 현직 사장 구속사태

한국가스안전공사 서울지역본부 리모델링 공사후 세워졌던 리모델링 머릿돌.
서울지역본부에 세워졌던 리모델링 머릿돌.

“건물 준공을 기념해 머릿돌을 놓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지만, 리모델링을 했다고 머릿돌을 세운 것은 여태껏 듣도보도 못했던 일인데요.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공기업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은 한 마디로 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서울지역본부를 자주 드나드는 한 사업자는 “개인 회사라면 모를까, 공기업에서 재임중인 사장이 자신의 서명이 크게 들어간 머릿돌을 세운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건물을 새로 완공한 후에는 건물준공을 기념한 머릿돌을 놓고, 그 머릿돌에는 시공자 이름이나 건물을 준공한 날 등을 기록한다. 하지만 박기동 사장은 자신의 재임기간중 가스안전공사 여러 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여러개의 기념비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 상징물이 바로 영월 에안센터 준공 후 세워진 손도장을 새겨넣은 기념비였다.

공사 최초 검사원 출신 사장이란 타이틀을 자랑스레 여겼던 가스안전공사 박기동 사장의 마지막은 시작과 달리 초라했다. 내부 감사원 제보로 촉발된 신입사원 채용비리 사건을 계기로 공사 44년 역사 초유의 사장 구속 사태로 막을 내렸다.

대통령 탄핵과 함께 정권이 교체된 후 시작된 채용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또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전국보일러설비협회의 압수수색 이후 박 사장은 가스안전대상 수상 관련 금품수수를 비롯해 가스기술기준 개정 청탁, 여행사 계약, 공사 내부용역, 승진 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가로 금품을 수수해온 사실이 확인됐다. 더욱이 수사 과정에서 박 사장의 차명계좌까지 발견됐고, 감사원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전직 감사원 간부와 현직 대검수사관까지 매수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따라 그는 1심 채용비리 및 뇌물수수사건 재판에서 징역 4년과 벌금 3억 원, 추징금 1억 3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채용비리로 촉발된 박 사장의 비위 사건은 결국 창립 44년을 맞은 가스안전공사 역사의 어둠으로 남았다. 사장의 지시를 따랐던 인사처 간부와 직원들도 해당 사건으로 인해 벌금형을 선고 받았고, 회사에서도 무보직 발령을 받은채 수 개월을 보내고 있다. 다시 업무에 복귀할 수 있을지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7년 2월 가스안전공사 창립 43주년 행사에서 박기동 사장이 타임캡슐 봉인식을 갖고 있다.
2017년 2월 가스안전공사 창립 43주년 행사에서 박기동 사장이 타임캡슐 봉인식을 갖고 있다.

여전히 남은 전임 사장의 의혹들

기획실장에서 기술이사, 다시 안전관리이사를 거쳐 부사장과 공사의 최고경영자인 사장에 이르기까지 박기동 사장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이어가며 승승장구를 계속했다.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임기응변과 추진력, 주변 사람들의 인맥들까지도 활용한 탁월한 승부수를 통해 사장의 직위까지 올라섰다.

더욱이 내부 출신으로 그 누구보다 공사 속사정을 아는 인사인지라 임원 시절부터 사장으로 재임하는 약 5년여간 공사에는 수많은 의혹과 문제들이 될만한 사건이 있었지만 검찰수사를 통해 사실이 확인되기까지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도 가스안전공사에는 박 사장 재임기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사건들이 미제로 남아있다는 게 구성원들의 이야기다.

갑작스런 공사 CI 교체를 비롯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43년사 사사집 발간, 노동조합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됐던 본사 정문 이전 공사, 사장 재임중 가스안전연구원으로 부터 수령해온 연구비 등은 대표적 문제들이다. 더욱이 43년사 발간과 CI교체, 정문 이전에는 적지 않은 예산이 사용됐다. 의사결정 과정에 반대 의견을 내기도 어려웠지만, 일부 반대 의견에도 사업들이 강행됐던 것은 사장 의지가 강했던 사업들이란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회사의 CI를 바꾸는 작업은 매우 신중히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본사를 이전했다는 이유로 CI를 다시 변경하겠다는 것은 사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CI는 만드는 작업도 일이지만, 사실 교체 후 들어가는 비용이 많아 '배보다 배꼽'이 큰 일입니다” 당시 반대 의견을 개진했던 한 간부는 반대를 계속하다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주변 만류에 결국 의견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법적 문제는 없다지만 CI를 보면 선산휴게소 마크나, 신용보증기금 CI 등과 흡사하다”며 해외 인증업무를 비롯해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불만은 여전한 상황이다.

가스안전공사에서 기존 사용해왔던 CI는 1997년 만들어 졌다. 당시 민간기업 뿐만 아니라 가스공사를 비롯해 주변 많은 공기업들이 CI를 변경했고, 가스안전공사도 시대적인 조류와 변화 요구를 수렴해 CI를 변경했다. 하지만 박 사장은 자신의 취임 직후 본사 이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CI를 바궜다. 일부 반대가 있었지만 곧 진압됐다.

가스안전공사는 전대천 사장 재임기간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당시 전 사장은 예산절감 등을 이유로 사사집 발간을 뒤로 미뤘다. 그러나 박 사장은 취임후 곧 43년사 발간작업에 착수했다. 발간 비용도 문제였지만 수록된 내용들은 온통 박 사장 치적과 사진으로 도배됐다는 게 구성원들의 이야기였다.

정문 이전 공사도 추진됐다. 노동조합 반대도 있었지만 정문을 고작 수 십 미터 옮기는데 다시 수 억 원의 공사비가 들어갔다. 명분은 버스로 출근하는 직원들의 편의를 위한 조치였지만 직원들의 통근버스는 여전히 후문에 정차한다. 또 가스안전연구원 연구 보고서에 자신 이름을 올리는 것은 물론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연구수당까지 지급받아 온 것이 내부 감사를 통해 확인됐다. 이는 원칙을 떠나 상식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는 지적이다.

이밖에 자신도 모르게 당일 아침 임원의 보직이 변경되거나, 승진 및 전보와 관련한 인사 의혹,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 대거 인력을 동원하려 했던 일화, 학위 논문을 부하 직원에게 시켜 작성했다는 의혹, 비서실에 회계업무를 잘 아는 비서를 두고 개인 회계관리를 시켜왔다는 소문에 이르기까지 전임 박기동 사장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의문과 궁금증들은 여전한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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