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법업체 볼모로, 업계 잇속 감추는 ‘꼼수’ 지적

본보 제8호 1면에 게재된 ‘중앙회 핵심인사, 가스저장시설 탈법운영 물의’란 본지의 기사.
본보 제8호 1면에 게재된 ‘중앙회 핵심인사, 가스저장시설 탈법운영 물의’란 본지의 기사.

[중소기업투데이 황무선 기자] 지난 2월 5일 ‘중앙회 핵심인사, 가스저장시설 탈법운영 물의’란 본지의 기사(제8호 1면)가 보도된 직후인 8일 심승일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관련 내용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이날 해명은 오히려 업계의 일방적 주장으로, 정부와 관계기관이 파악하고 있는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승일 부회장은 문제가 된 가스저장시설 탈법 운영에 대해 “현행 ‘고압가스 저장능력 합산 산정 기준’이 중소기업들의 경영애로를 가중시키는 제도로 시급히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해당 법규는 개정 당시 정부가 아무런 계도나 홍보가 없다가 2016년부터 갑작스레 단속에 나서기 시작했다”면서 “당시 충분한 홍보가 이뤄졌다면 규칙에 맞춰 설비를 들였을 텐데 20년이 지나 갑자기 규제를 하니 황당하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뒤 정부와 관련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서울경제TV의 ‘범법자 내몰릴 판.. 고압가스 저장 산정기준 바꿔야’란 인터뷰 기사를 포함해 뉴스1의 ‘20년 잠자던 고압가스 규정' 단속에 업계 반발…우리도 정부도 몰랐다’ 등 약 16개 매체가 업계의 주장 다룬 기사를 내놨다. 대부분은 해당 규정이 정부가 홍보와 계도는 제대로 하지 않은 체 관련기준을 만든지 20년이 지나서 단속을 시작해 중소기업들이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고압가스협동조합측 주장은 크게 4가지다. ▲고압가스만 저장량 합산기준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형평성 문제 ▲20년전 개정된 기준에 대한 계도 부족 ▲단속으로 인한 중소기업체 부담 ▲질소는 불활성 가스로 안전하다 등이다.

심 회장측의 일방적인 설명만 들으면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 보면 업계의 주장은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 업계와 규제기관인 가스안전공사의 지적이다.

가연성 가스인 LPG는 산업용 가스로 불리는 일반 고압가스와는 용도부터가 다르다. 때문에 가연성 가스인 LPG는 관련법에 의해 압력과 관계없이 제조, 충전, 유통, 저장 등 전체 과정이 관련법에 의한 규제 대상이다.

반면 고압가스는 10kg/㎡이상의 압력 일 때만 정부의 관리대상에 포함되며 일정량 이상을 저장할 경우 관련법에 의한 규제를 받는다. 이번 문제는 법규정의 사각지대를 활용해 법을 잘 아는 사업자들이 저장량 5톤이란 기준을 회피하며, 최대한 거래처의 충전 횟수를 줄이기 위해 저장시설을 탈법적으로 운영한 것이 근원적인 문제였다.

또 단순히 건수만 비교하면 업계의 주장대로 LPG사고가 일반고압가스 사고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 연료와 자동차용,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LPG와 산업용으로 한정돼 사용되는 질소의 전체 사용량을 환산해 비교한다면 기준이 되는 사고 건수는 업계와의 주장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더욱이 질소 사고는 다른 어떤 사고보다 발생시 사망률이 높다는 점에서 역시 엄중한 안전관리가 필요한 가스이다.

법규를 잘 몰랐다는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다. 물론 가스를 사용하는 사업자는 가스를 취급하는 공급업체와 달리 해당 규정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 20~30년 이상 업종에 종사해온 심 회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고압가스업체가 해당 법규를 몰랐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제도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관련 업계의 의견 수렴과 조율과정이 전제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심 회장의 해명은 단지 현재 발생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조합측은 정부단속이 2016년부터 시작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업계는 그 이전부터 해당 법규의 규제완화를 가스안전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꾸준히 요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 최근 가스안전공사의 단속을 통해 적발된 업소도 주장과 달리 7개소에 불과했다. 이들 업체의 단속 역시 정부 차원의 능동적인 단속에 의해 적발된 것이 아니라 청와대 신문고, 산업부 등으로 제보한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적발됐으며 7건의 불법 사례 중 4건이 심 회장의 거래처인 것으로 확인됐다.

규제로 인해 중소기업들이 애로를 겪는다는 주장도 현실과 괴리가 있다. 물론 현재 사용하고 있는 시설을 기준에 맞춰 정부가 적극 단속에 나선다면 적발된 업체들은 관련법에 따른 처벌이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해당 가스공급자와 협의해 현행 시설을 합법화하는 노력을 진행하면 큰 문제가 없다. 기본적으로 저장량을 줄이거나, 적법한 규정을 따라 허가시설로 전환하면 손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과거 동일한 문제로 이미 국내 고압가스 저장시설 기준 역시 기존 3톤에서 5톤으로 한 차례 확대됐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또다시 80%(2000여개소)의 탈법적인 사용자들과 공급자들을 구명하기 위해 정부가 법을 준수해온 20%(500여개소)를 외면한다면 고압가스법은 더이상 권위를 지킬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가스안전공사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가스사업자들이 안전관리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자신의 이익에 관점에서 너무 안이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며 “질소는 색, 무취, 무미, 무독성 가스로 자체만으로 인체에 해가 되지는 않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누출되면 공기 중 산소농도를 급격히 저하시켜 단 몇 초 만에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가스”라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최근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포항제철 질소사고와 관련 미 화학조사위원회 리포트를 인용해 “미국에서 10년간 발생한 질소사고 80여건으로 인한 사망자 역시 80여명에 이른다”며 “이로 인해 미 화학조사위원회는 질소를 일명 ‘침묵의 살인자’라고 부른다”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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