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국가나 집단이 자기의 방침, 의견, 주장 따위를 외부에 정식으로 표명함.‘선언’(宣言·declaration)의 사전적 의미다. '외부'와 '정식표명'이라는 단어는 일단 '선언'을 한 순간 어떤 식으로든 더 크고 무거운 책임이 선언 주체에게 발생한다는 걸 함의한다.지난 5월14일  ‘중소기업 선언문'을 채택 발표한 바 있다.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중소기업유공자를 포상하고격려하는 '2019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다.이날 중소기업중앙회, 여성경제인협회, 벤처기업협회,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16개 중소기업 단체들이 이름을 올린 이 선언문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중소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인 8개 부문의 실천 강령을 담았다”고 밝혔다. 8개 실천 강령의 키워드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 성과공유와 일자리 창출,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해외시장 개척, 차별 없는 직장문화와 신뢰 기반 노사문화, 환경친화적 경영, 준법경영과 윤리경영 실천이다. 선언문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다.

우선, 중소기업인대회에서 관련단체들이 공동으로 시대적 흐름에 부합하는 선언문과 실천강령을 채택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중소기업이 약자로서가 아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중소기업은 늘 ‘보호’와 ‘지원’의 대상이었다. 대기업에 의한 갑질과 기술탈취 등이 수시로 자행되고 공정거래가 무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당연히 취해야 할 관점이다.

그러나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인 혹은 절대적인 약자라는 이유로 중소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늘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중소기업의 지배구조는 건전한가, 인권과 노동 등은 제대로 보장되는가, 공정한 룰을 지키고 있는가, 제품안전을 보장하고 소비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고 있는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오염물질 배출 최소화에 노력하고 있는가, 기업의 사업 기반인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있는가. 중소기업은 이런 이슈들을 조직에 적용하려고 진정 노력한 바 있는가. 과문(寡聞)일수도 있지만 필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중소기업이 이러한 중대한 책임들을 회피하고 미루거나 방기하는, 그리고 이를 정당화 하는 만능 방패는 ‘당장의 생존’이다. ‘열악한 예산과 절대적인 인력 부족’도 세트로 따라 붙는다. 이는 중소기업이 처한 분명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 현실에만 기댄다면, 즉 약자 프레임만을 강조한다면 중소기업은 사회적 책임의 주체가 아니라 방관자로만 머물게 된다. 대기업에 비해 약자라는 지위가 사회적 책임의 면제 이유가 될 수는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중소기업도 기업인 이상 고용된 노동자보다는 강자이고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 정보에 대해서도 소비자보다는 독점적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여건 안에서 가능한 사회적 책임부터 수행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일 뿐만 아니라 재무적으로도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다시 선언문으로 돌아와 보자. 중소기업중앙회를 필두로 선언에 참여한 단체들은 선언 이후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실천 강령을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중에 있는가. 그러한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선언은 영혼 없는 의지 표현이었을 뿐인가. 11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라서 그저 쇼를 했을 뿐인가. 현실에서 유통되는 ‘선언’이 아무리 말의 성찬(盛饌)에 불과한 경우가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지만 16개 단체가 그래서는 매우 곤란하다.

‘선언’이 지닌 사회적 책임의 무게를 새털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16개 단체는 하루속히 태스크 포스를 조직해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도출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정부와도 소통해야 한다. 중소기업진흥법에는 ‘사회적책임경영’이 명시되어 있고 예산은 적지만 지원근거도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명심하자. 선언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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