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진 8퍼센트 대표
중금리 전문 P2P 금융플랫폼

이효진 8퍼센트 대표
이효진 8퍼센트 대표

[중소기업투데이 박진형 기자] 국내 최초 P2P(Peer to Peer: 개인 간 거래) 금융업체 CEO인 이효진 대표에게는 ‘여성CEO’, ‘엄마CEO’, ‘은행원 출신 CEO’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특히 안정적인 직장인 ‘은행’을 그만두고 임신 3개월의 몸으로 단돈 100만원으로 미개척지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왜?”

이효진 대표는 은행에서 대출 상담 업무를 주로 보았다. 서미들은 금리가 낮은 은행 대출 상품을 이용하고자 하지만, 승인받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20%가 넘는 고금리 대출인 제2 금융권의 저축은행 상품이나 사채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 대표는 ‘왜 저금리 아니면 고금리 대출밖에 없지? 그 중간은 없는 건가?’라는 국내 금융 시스템에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시할아버지의 부고는 이효진 대표의 인생을 바꾸게 됐다.

“이때 제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어요. 은행을 다니다, 은퇴 후 노후를 보내다 죽음을 맞이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살면 너무 후회될 것 같더라구요.” 곧바로 이효진 대표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렇게 퇴사한 지 2개월째 접어들 무렵이었다. 해외에서 개인 투자자와 대출자를 연결해 주는 P2P 금융시장이 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 대표는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갔다. 미국을 대표하는 P2P 금융업체 ‘렌딩클럽(Lending Club)’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렌딩클럽에서 P2P 금융의 가능성을 확인한 이효진 대표의 가슴은 사명감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P2P 금융이야말로 지금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이 바로 미래의 은행이구나 싶었죠.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국내 금융 시장에 P2P 금융이 도입되면 높은 이자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귀국하자마자 사무실도 없이 노트북 하나 들고 카페로 달려갔어요. 그때 저는 임신 3개월에 접어들었고, 창업 자금은 단돈 100만 원에 불과했지요. 그렇게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려가며 8퍼센트의 문을 열었어요. 8%의 수익과 이자를 목표로 한다는 뜻을 담아 회사 이름을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이효진 대표의 지인들이 창업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소액을 투자했다. SNS 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고객을 유도했다. 일주일에 한 건 들어오던 투자가 하루에 네댓 건으로 늘어났다.

기쁨도 잠시였다. 문을 연 지 2개월 만에 금융감독원과 방송통신위원회가 8퍼센트를 유해 사이트로 지정하는 바람에 접속이 차단된 것. 이유는 정식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고 불법으로 대출을 중개했다는 것이다. 막 대부업 등록 절차를 밟고 있던 이효진 대표는 눈앞이 캄캄했다.

“대부업은 사업자의 자산으로 돈을 빌려주지만, P2P 금융은 플랫폼을 통한 직거래 장소를 제공하는 개념이에요. 실제로 제2 금융권 대출자가 P2P 금융으로 높은 이자의 빚을 청산하고 저금리의 제1 금융권으로 갈아타거나, P2P 금융 투자자가 되는 선순환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부업과 성격이 다름에도 같은 법을 적용하는 불합리한 점이 있죠.”

이효진 대표는 금융감독원에 질의를 넣고 답변을 기다렸다. 그리고 매체와 각종 포럼을 통해 P2P 금융산업에 대한 소신 있는 의견을 밝혔다. 마침내 8퍼센트는 1개월 뒤 다시 문을 열 수 있었고, P2P 금융이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한 달 만에 다시 문을 연 8퍼센트는 그야말로 날개를 단 듯했다. 언론에 많이 노출되며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본 덕에 8퍼센트를 찾는 고객이 더욱 많아졌다. 개인 대출뿐만 아니라 기업과의 투자와 협업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주류, 숙박, 렌터카 등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스타트업과 손잡으며 8퍼센트는 더욱 유명해졌다. 대표적인 자동차 렌트 스타트업 ‘쏘카’에는 23억원을 조달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대기업과 달리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스타트업과 발 맞춰 함께 성장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효진 8퍼센트 대표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효진 8퍼센트 대표

이효진 대표가 개인 대출 부문 주 고객으로 정한 연령층은 30~40대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30대는 투자, 창업 등 도전을 많이 하는 열정적인 세대인 동시에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30~40대가 돈이 가장 필요하지만 대출받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판단 아래 해당 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모바일 메신저와 SNS 등을 통

해 활발하게 홍보를 펼쳤다. 이효진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창업을 꿈꾸거나 고금리 대출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이 8퍼센트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8퍼센트를 찾는 고객 중 30대 남성의 비중이 가장 높다.

“저를 창업에 뛰어들게 만든 가장 큰 힘은 사명감이에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출 시장의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고 싶었고, 높은 금리를 낮춰 대출자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어요. 대출자와 투자자가 상생하고, 가계 부채를 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8퍼센트의 설립 목적입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 거창하지만 제가 진심으로 꿈꾸는 바예요. 이런 뜨거운 사명감이 창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윤보다 사명감으로 움직일 때, 창업자는 더 올바르고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8퍼센터 사무실에는 “오고 가는 언쟁 속에 싹트는 아이디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그만큼 8퍼센트는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를 지향하고, 또 실현한다. P2P 시장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미국 렌딩클럽을 방문한 이효진 대표는 그곳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직원과 CEO가 격의 없이 서로를 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자유롭고 평등한 금융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효진 대표가 이상적인 모델로 삼은 회사는 IT 업계다. 복장과 소통이 자유로운 IT 회사의 특징을 참고해 8퍼센트의 분위기를 형성하고자 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일이 제대로 되는 법. 사무실에 붙어 있는 문구처럼 8퍼센트의 회의는 언제나 활기를 띤다. 대표의 의견이라고 해서 직원들이 고분고분 따르는 일은 결코 없다. 오히려 직

원들이 대표의 의견을 지적하는 경우가 더 많아 이효진 대표가 낸 의견 중 90%가 퇴짜 맞을 정도다. 분위기뿐만 아니라 근무 형태도 확실히 자유롭다. 반바지와 슬리퍼는 물론 모자를 쓰고 출근해도 무방하다. 외부 미팅이 있을 때만 단정하게 입기를 권고하는 정도다.

또 과감하게 직함도 없앴다. 8퍼센트에서 모든 직원은 서로에게 ‘님’이라는 동일한 호칭을 사용한다. 이효진 대표 또한 ‘대표님’이 아닌 ‘효진 님’으로 불린다. IT업계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대범하고 자유로운 모습이다. 직원 채용 면접 방식 또한 파격적이다. 화상 통화를 이용한 면접과 면접관이 직접 찾아가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그중 직접 찾아가는 면접은 조금 독특하다. 우선 일반 회사의 팀장 격인 리더 또는 이효진 대표가 직접 지원자의 집이나 집 근처로 찾아간다. 그리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서로를 파악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식사와 티타임을 가지며 면접을 진행한다. 긴장한 채 본사에 방문해 면접을 보는 기존 관행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직원 복지에도 신경을 쓰는 이효진 대표는 타지 출신의 직원을 위해 오피스텔을 빌려 기숙사도 마련했다. 엄마의 리더십, 일명 ‘마더십’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그녀는 평등한 근무 환경과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 내 어린이집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아이를 낳고 한 달 반 만에 회사에 복귀했어요. 대표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니까요. 그런데 몸이 힘든 건 참을 만한데 아이가 참 많이 보고 싶더라고요. 일하는 엄마로서 제가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엄마 없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이에게 고맙고 미안하죠. 엄마 CEO로서 직장 어린이집을 꼭 만들고 싶어요. 업계에 흔치 않은 여성 CEO, 엄마 CEO여서 그런지 많은 분이 저를 잘 기억해주시고 신뢰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성 CEO에게만 육아와 가사에 관한 질문을 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있는 남성 CEO에게는 그런 질문을 하지 않잖아요. 남녀 모두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거나, 아예 묻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이효진 대표는 사람 냄새 나고 마음 따뜻한 CEO지만, 동시에 욕심 많은 성장형 CEO이기도 하다. 창업 3년 만에 취급액 1000억원을 달성하는가 하면, 이듬해에는 발행한 투자 상품이 8000호에 달하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국내 P2P 금융시장을 개척한 그녀는 업계 최초로 인공지능 챗봇 ‘에이다’와 ‘자동 분산 투자 서비스’를 도입했고, ‘최저 금리 보상제’를 최초로 시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거칠 것 없이 약진하는 이효진 대표와 8퍼센트는 그야말로 공격적인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이 대표는 답은 간단하다. “사회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8퍼센트의 중금리 대출 서비스를 통해 대출 양극화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고,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길 소망합니다. 합리적인 금리로 대출을 실현해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을 기꺼이 돕고싶습니다.”

혁신에 대한 이 대표의 생각은 이렇다. “혁신은 무에서 유를 온전히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불합리한 점을 해소해나가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혁신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삶 속 불편과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궁리할 때가 바로 당신만의 혁신이 눈을 뜨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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