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섭 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 /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윤병섭 한국중소기업학회 부회장 /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지난 11일 정부는 가업상속지원세제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개편 방향은 상속세 부담이 기업의 고용 및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사후관리 부담의 완화를 통해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 발표내용을 보면 가업상속공제 사후관리 기간을 7년으로 단축하고 업종 변경 범위를 중분류 내까지 허용하는 등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했을 뿐 공제 대상과 한도 확대가 없어 중소기업계의 반응이 싸늘했다.

상속세가 ‘부의 대물림’이라는 굴레를 씌운 징벌적 세금으로 여기는 중소기업 경영자는 해외 이전, 경영권 매각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유니더스, 쓰리세븐, 락앤락, 농우바이오 등은 상속세 부담으로 기업을 매각했다.

중견·중소기업 인수합병(M&A) 건수는 2016년 275건에서 2018년 352건으로 28%나 급증했다. 앞으로 이러한 사례가 속출할 것이다. 혹자는 M&A나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면 된다지만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창업주가 곧 기업의 신용이자 자산의 전부를 상징하므로 중소기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상속세를 납부할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 경영자는 매각이 손쉬운 사모펀드에 회사지분을 넘길 것이며, 경영능력 발휘 보다는 부의 축적에 능한 사모펀드가 일자리에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고용감소는 명약관화하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10~50%의 5단계 누진세율 구조로 가업상속은 최대주주 등의 주식을 할증 평가(30%)하고 있다. 할증을 반영하면 최고세율이 65%에 이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8개국 최고세율 평균 26.5%의 2배를 넘어선다.

OECD 35개 국가 중 13개 국가는 상속세가 아예 없다. 상속세가 있더라도 획기적으로 낮추거나 폐지하는 추세다. 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도 상속세율을 26.5% 수준으로 맞춰야 세계적 흐름에 부응한다는 중소기업계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높은 세율은 단기적으로 세금이 더 걷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기업유지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상속세를 부과해야 사회적 가치를 지속해서 창출할 수 있기에 상속세 부담을 경감시켜줘야 한다. 국가적으로 볼 때 기업승계는 창업 후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기술·경영 노하우 등 인적자산을 잇고 기업가정신 등 정신문화를 대물림하며, 일자리 창출 및 유지, 지역사회와 더불어 지속 성장해 경제 안전성을 높인다.

상속세율을 낮춰 기업승계를 촉진한다면 대리인 비용을 줄이고 자금의 경색 또는 곤경으로 상속을 하지 못해 제3자에게 매각할 때 발생하는 거래비용을 없앨 수 있다. 원활한 승계로 기술·경영 노하우의 효율적인 활용 및 전수를 이뤄 기업 경쟁력을 증진하도록 도와주자는 가업상속공제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려야 한다.

늙어가고 있는 중소기업에 가업승계의 골든타임도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중소제조업 최고경영자의 평균 연령은 53.4세이며, 30년 이상 장수기업 평균 연령이 63.3세로 그만큼 중소기업의 승계는 우리 경제의 당면 현안이 됐다.

1970년대를 전후한 창업 1세대는 빈손으로 기술이 어우러진 제품을 생산해 시장을 개척해온 억척같은 경제 주역이다. 나라 발전과 국민 생활 향상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퇴임을 앞두고 가업을 승계할 때 부담해야 할 과중한 상속세 문제로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상속세 문제 해결에 집중하느라 중·장기 승계계획은 고사하더라도 단기 승계계획이 담긴 경영계획을 세우고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어려움도 해결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장수기업이 많은 일본처럼 우리나라가 창업 100년을 맞는 기업이 많이 나오도록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상속세 경감이 장수기업 배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경제의 든든한 자원으로 성장한 장수기업들의 원활한 승계를 지원해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책임의 역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영리한 중소기업 고령화 대비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소기업의 승계는 국가경제 관점에서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의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의 애로를 청취하고 승계를 원활히 하는 상속세법 및 제도 기반을 공고히 구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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