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들의 모국사랑(하)

‘배워야’ 가난과 망국의 恨풀어
엔화가 교육발전의 불씨됐다
조상대대로 일궈 온 땅, 일제
토지조사사업으로 소작농 전락

김희수 전 이사장은 1987년 부도직전의 중앙대를 인수해 2008년 두산그룹에 경영권을 넘기기 전까지 중앙대를 국내 정상급 대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김희수 전 이사장은 1987년 부도직전의 중앙대를 인수해 2008년 두산그룹에 경영권을 넘기기 전까지 중앙대를 국내 정상급 대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나라를 빼앗기고 땅을 잃어버린 백성으로서 고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나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나 모두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못 배우고 무지한 백성으로 태어난 탓에 모진 고난의 세월을 그렇게 견뎌내야 했다.”(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

재일동포들이 피와 땀이 젖은 엔화를 벌어 모국의 교육 사업에 눈을 돌린 이유다. 김희수 전 이사장을 비롯해 정환기, 강길태, 김창인 등 손가락으로 셀 수가 없다. 물론 현지에서 학교와 장학재단 설립을 통한 교육 사업을 전개한 재일동포기업인들도 적지 않다.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한 뒤 전국적으로 토지조사사업을 핑계로 조상대대로 이어온 땅을 빼앗았다. 하루아침에 소작농으로 전락한 백성들은 풀뿌리로 연명해야 했다. 결국 만주나 일본 등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다. 합병 이전 일본거주 한국인은 대략 790명에 불과했지만 한일이후 17만1543명(조선총독부 통계 연보)으로 늘어나는 등 탈 조선이 가속화됐다.

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
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

김희수, 중앙대 22년 경영

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주경야독 끝에 도쿄 전기대학을 졸업한 그는 양품점을 시작으로 부동산 임대업에 뛰어들어 탁월한 경영수완을 발휘, 80년대 초 이미 30조원의 거상의 반열에 올랐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모국의 교육 사업에 눈을 돌렸다.1987년 부도직전의 중앙대를 인수,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대학 반열에 올려놨다. 그러나 일본의 거품경제와 한국의 IMF등의 악재가 겹쳐 2008년 두산그룹에 경영권을 넘겼다. 당시 중앙대의 자산은 대략 3조5000억원. 인수당

시 700억원대의 빚을 지고 있었지만 두산으로 넘길 당시는 단돈 1원의 빚도 없는 알짜 대학으로 만들었다. 두산은 김희수에게 1250억원을 건넸다. 김 전 이사장은 전액 수림문화재단과 수림장학재단에 기부했다. “교육사업은 기부”라는 말을 남기고 2012년 88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어갔다.

정환기 선생
정환기 선생

진주교대에 260억 기부한 정환기

1924년 2월 21일 경상남도 진양군에서 태어난 정환기 선생은 1927년 3세 때 흉년으로 먹고살기 어렵자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1년 나고야 고다마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건어물상 창업을 시작으로 양복점, 잡화점, 택시회사 등으로 사업 규모를 키워 ㈜호박그룹을 일구었다. 그는 1957년 고향마을에 전기를 넣어주고 사봉초등학교에 책·걸상을 기증하는 등 지속적인 고향사랑을 실천하다가 1998년에는 진주교육대에 가정학술재단을 세워 현재까지 260억원 가량을 기부했다.

당시 그는 “국가와 지역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 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초등 교육이 제 기능을 다해야 한다.”고 하면서 “앞으로도 초등 교육 발전에 뒷받침이 되도록 발전 기금을 희사하겠다.”고 밝혔다.

1993년에는 경상대에 5억원을 출연했고, 2006년에는 진주개천예술제 제향 초헌관으로 참여하는 등 지역 전통문화예술 발전에도 기여했다. 정환기는 2017년 5월 사망하였다.

김창인 선생
김창인 선생
강길태 선생
강길태 선생

김창인과 강길태의 흔적

오사카에서 남해회관을 운영해온 김창인 선생은 1929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서 태어나 한림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열여섯 살 때 제주~오사카 정기여객선인 기미가요마루호(君代丸)에 몸을 싣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자수성가 후 2008년부터 제주대에 재일제주인센터 운영기금으로 100억원을 기부했다. 이어 센터 건립기금 30억원, 재일제주인 연구사업 지원 20억원, 재일본 제주인사(史) 연구 및 편찬 사업 등에 50억원, 대학 발전기금으로 30억원 등 금액만도 총 230억원에 이른다.

1921년 순천 황전면에서 태어난 강길태 전 이사장은 집안형편이 어려워 14세 될 때까지도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복도에서 수업을 참관을 하다가 황진보통학교 박규봉 선생님의 주선으로 3학년에 편입했고, 그때 “훗날 돈을 벌면 학교를 세우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형을 찾아가 긴기대학을 졸업한 뒤 오사카시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 1976년 7월에 순천여자상업고등학교(현재 순천청암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한데 이어 1980년대 초에 폐교직전에 놓인 순천간호전문학교를 인수해 1983년 대학의 법인명을 “청암학원”으로 개명하고 초대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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