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이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릴 때마다 ‘재일동포’가 구원투수로 앞장섰다
모국이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릴 때마다 ‘재일동포’가 구원투수로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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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일등공신, 재일동포의 모국사랑 (중)

구로공단, 코오롱창업주 제안 성사
런던올림픽 재일동포 후원으로 참가
88서울올림픽… 현 시세 5천억 기부
재일동포 어린이들이 지난해 7월28일 부터 4박 5일간 서울을 방문해 모국을 체험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2018 어린이 잼버리(김소부 인솔 단장)가 개최되었다. 당시 홋카이도 부터 오키나와까지 전국의 동포 어린이들 350명과 리더, 운영 스태프 등 총 450명이 참가했다.
재일동포 어린이들이 지난해 7월28일 부터 4박 5일간 서울을 방문해 모국을 체험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2018 어린이 잼버리(김소부 인솔 단장)가 개최되었다. 당시 홋카이도 부터 오키나와까지 전국의 동포 어린이들 350명과 리더, 운영 스태프 등 총 450명이 참가했다.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하는 구로디지털단지(구 구로공단)는 80년대 한국수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여기에도 재일동포들의 땀과 눈물이 녹아있다. 구로디지털 단지는 14만평의 규모에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년에 걸쳐 조성됐으며 정부의 수출전진기지확보차원에서 재일동포기업가들을 유치하면서 본격화됐다.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통해 재일동포들의 자금력과 선진기술 및 경영노하우를 도입하기 위한 박정희 정권의 이해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구로디지털단지의 아이디어는 이원만 코오 롱그룹 창업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제안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시작 2년만인 1966년 1차로 재일동포기업 14개사와 한국기업 7 개사가 입주, 3분의 2가 재일동포기업으로 채워졌다. 동흥전기제작소(전 기·기기), 한국마벨(전기·기기), 대판대섬유(고무·풍선), 삼화합성공업 (완구), 대판교육(섬유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듬해에 재일동포기업 18개사, 국내기업11개사, 외국계기업 2개사 등 총 31개사가 입주하면서 구로디지털단지는 준공식을 마쳤다. 여기서 생산된 제품은 전량 수출품목이었다. 초창기에는 섬유, 봉제, 가발, 전기 등 경공업분야를 중심으로 국가의 수출을 견인했다. 1971년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한데 이어 1980년에는 18억 9000만 달러를 기록하는 등 1971년 부터 1980년까지 연평균 수출증가율은 무려 36.5%를 달성하는 쾌거를 보였다. 재일동포들은 구로공단을 시작으로 마산수출자유지역, 반월공단 등으로 진출하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 에도 크게 기여했다.

현재 구로디지털단지는 전통적인 봉제, 섬유, 전기전자업종이 사라지고 정부의 시책에 따라 IT산업단지로 변모, 현재 3300여개 기업체가 자리잡고 있다.

런던올림픽에서 서울올림픽까지

1948년 7월, 지금으로부터 71년 전이다. 당시 국민소득에 대한 통계도 국가의 틀도 잡히지 않던 시절이다. 7월29일부터 8월 14일까지 제14회 런 던 올림픽이 개최됐다. 어렵사리 한국도 IOC로부터 올림픽 출전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참가여부가 불투명 했다. 유니폼은 물론 숙박비, 여비가 부족해 올림픽 출전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소식이 일본으로 전해지자 재일본조선체육협회가 나서 한국의 올림픽 선수단 67명을 일본으로 불렀다. 선수단은 미8군의 보호 아래 부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8년 6월23일 일본 하카다(博多) 항에 입항한 선수단은 도쿄를 거쳐 재일동포들의 환영과 함께 올림픽 출전 행사비용 65만엔을 지원받아 요코하마항을 출발해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한 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런던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에는 일본 육상연맹도 투척용 창, 원 반, 해머 등 당시 한국에서 조달이 곤란한 국제 경기용구를 증정 받아 올림픽에 출전했다. 한국 역사상 올림 픽 참가 최초의 일로 당시 전 세계 59 개국이 참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때는 민단중심으로 무려 100억엔(한화 541억원)을 모아 한국에 기부했다. 현재 송파구 소재 대한체육회본부와 하남 미사리조정경기장, 장충체육관, 올림픽공원내 체조와 수영, 테니 스경기장이 모두 재일동포들의 성금으로 지어진 건물들이다.

민단과 별도로 재일한국인부인회도 7년 동안 ‘1일1엔모으기운동(돼지저 금통 운동)’을 통해 16억원을 모아 전국 국립공원과 명승지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바꾸는데 기여했다. 88올림픽 당시 재일동포를 제외한 미국과 유럽 등 여타 해외동포들이 낸 후원금은 대략 6억원. 재일동포들의 유별난 모국 사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전에서부터 IMF까지

재일동포들은 6·25 전쟁 때는 조국수호를 위해 642명의 학도의용군으로 장진호 및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다가 135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IMF당시 재일동포들은 개인계좌를 통해 1997년부터 12월부터 3개월 동안 일본엔화송금 캠페인을 전개했다. 당시 목표액 120억엔을 초과한 140억엔 가량을 본국에 송금, IMF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에서도 재일본 한 국계 은행을 통해 개개인의 한국계좌로 엔화를 송금했다. 도쿄한국대사관을 비롯해 일본 주재 한국 공관 10곳 가운데 9곳의 부지와 건물도 기증했는데 이는 현재 시세로 2조 원을 넘는다. 이 가운데 1948년 사카모토(阪 本)방적을 창업한 서갑호씨는 가장 활발한 기부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주일대사관자리인 도쿄 노란자위 땅 미나미아자부의 3086평의 대지와 건 물을 통째로 한국정부에 헌납했다. 오사카 총영사관 설립기금은 물론 오사카 민단과 재일동포들의 2세 교육 을 위한 민족학교에 매년 수천만엔을 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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