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에서] 디자이너 이영희 1주기에 부쳐
[윤중로에서] 디자이너 이영희 1주기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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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순 편집국장

사람은 가도 작품은 남는다. 한복 디자이너로 일생을 풍미했던 디자이너 이영희 1주기다. 이영희는 배우 전지현의 시외조모이다. ‘바람의 옷’ ‘색의 마술사’로 불리기도 한 이영희 한복 디자이너는 지난해 5월 17일 타계했다. 일주일 후면 꼭 1년이다.

그는 한복이 우리나라 전통의상으로만 머물지 않고 세계인들에게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의상이 될 수 있도록 평생 한복을 위해 열정을 쏟아부었던 장인이었다. 40년간 전통한복의 대중화를 위해 ‘개량한복’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는가 하면,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고급 기성복) 참가를 비롯해, 2016년까지 파리 오트쿠튀르(맞춤복)에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한복의 세계화를 선도했다.

1994년 그의 파리 패션쇼를 동행 취재했던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복의 특징은 아름다운 곡선과 색채의 마술이라 할 정도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컬러감이다. 양장지와 달리 한복은 색채의 마술이라 할 정도로 미묘한 농담(濃淡)의 차이를 보인다.

그해 프레타포르테에서 이영희는 비단으로 지은 한복을 쭉쭉빵빵 세계적인 모델들에게 입히되, 저고리는 벗기고 치마만 입혔다. ‘바람의 옷’이라는 이름으로 치마를 봉긋한 가슴의 절반만 가려 모델들의 쇄골과 어깨, 가슴선이 그대로 노출시킨 옷이었다. 객석에 앉은 관객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원더풀” “뷰티플”과 “어머나~” “망측하게시리”.

기자는 속으로 무척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섹시미가 가미된 변형된 우리의 전통 복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평가는 어떨까. 현지의 평가가 나오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브닝 파티복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현지 패션 평론가의 평이 다음날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저고리를 벗어제끼다니... 저것도 한복이냐”며 폄하했던 한국인들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유행의 첨단을 걷는다는 파리, 그중에서도 세계 패션디자이너들의 평가 현장인 ‘파리 프레타포르테’에서 이영희의 옷은 그해 가장 핫한 뉴스가 됐다. 그의 무대는 곧 우리 전통이 약간의 변화를 통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자리였다. 한판 신나게 즐긴 ‘혁신’과 ‘전위’의 퍼포먼스 현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언론인으로서 기자는 현지 기사에 몹시 불편한 점이 있었다. 분노도 느꼈다. 그것은 한복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기모노 코레(한국의 기모노)’라 쓰고 한복의 선을 ‘기모노 라인’(Gimono Line)이라고 표기한 것이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밀려올라왔다. 또 패션쇼장이 있던 행사장 1층에 일본의 불교미술품이라고 소개된 입상(立像)은 한눈에 봐도 삼국시대 불상이었다. 당시 분노를 삭여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영희는 이후 ‘기모노 코레’라 불리던 우리 옷을 한복(Hanbok)으로 바로 잡으며 한복의 현대화, 세계화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한복을 들고 뉴욕카네기홀 패션쇼, 뉴욕 맨해튼에 ‘이영희 한국박물관’ 개장, 워싱턴 스미소니언 역사박물관에 12벌 한국 영구전시 등을 진행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08년 이영희는 구글아티스트캠페인 ‘세계60인의 아티스트’로 선정됐다.

국립대구박물관은 대구가 낳은 이영희의 추모 1주년을 기리는 전시 ‘이영희 기증복식, 새바람’을 17일부터 9월15일까지 펼친다. (주)매종드이영희가 기증한 8천여점이 넘는 이영희의 수집품, 재현한복, 창작한복 그리고 파리컬렉션 작품 중 대표작들과 진귀한 한복사료들로 연출된다고 한다. 1주기에 다시 그를 만나볼 기회다.

이영희 한복디자이너가 94년 파리 패션쇼에서 선보인 '바람의 옷' [김중만]
이영희 한복디자이너가 94년 파리 패션쇼에서 선보인 '바람의 옷' [김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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