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가 한국에 남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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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 일등공신, 재일동포의 모국사랑 (상)

구로디지털단지 조성에서부터
평창올림픽까지 물심양면지원
정부, 재일동포 공로 인정하는
분위기 조성해 모국 품격 지켜야
재일동포들은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구로디지털단지 조성을 통한 한국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사진은 봉제공장 및 구로디지털단지 전경[구로구청]
재일동포들은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구로디지털단지 조성을 통한 한국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했다. 사진은 봉제공장 및 구로디지털단지 전경[구로구청]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27일 재외동포 대표들을 만나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늘 재외동포와 내국민은 하나였다"며 동포사회를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1년7개월이 지나도록 큰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재일동포들이 매년 늘고 있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온다.

올해 초 재외동포재단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재일동포들이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며 2억엔(약20억원)을 기부했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재일동포들의 성금 기부는 처음이 아니었다. 한강의 기적도 그들의 성금 없이 불가능했고, 해방 3년 후 ‘독립 한국’을 세계에 알린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도 88서울올림픽 개최도 그들의 뜨거운 애국심을 담은 성금이 있어 가능했다.

해외서 자린고비 생활 속 통근 성금

‘비단옷(緋緞) 입고 고향(故鄕)에 돌아온다’는 뜻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은 고향 떠난 한국인에게는 성공의 최대치로 인식돼 왔다. 특히 재일동포 1세대(이하 재일동포)들에게 금의환향은 간절한 꿈이자 이국땅에서 차별을 버티게 하는 삶의 의미이기도 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서부터 1945년 해방되기 전까지 살기 위해, 혹은 전시 노동력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들. 그들은 차별과 냉대의 극심한 환경 속에서 이를 악물고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번 돈으로 기업을 일으키고 모국과 고향에 보내기도 했다. 대다수 재일동포들의 공통점이다. 그들은 모국이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릴 때 재일동포들은 너나할 것 없이 구원과 사랑의 손길을 뻗쳤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학도의용군을 자원해서 파견했고, IMF 외환위기 때는 재일동포 1가구 10만엔 이상의 외화송금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780억엔을 모아 모국에 송금, 한국의 경제파탄을 막는데 크게 기여했다. 천안함 폭침 때와 세월호사고 등 대형사고가 터질 때에도 모국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한국국적 포기 재일동포 매년 8000명

해방 직후 재일동포는 200만명을 넘었으나 현재 약 5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매년 8000명 가량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고 한다. 저출산 방지를 위한 예산을 매년 수조원씩 쏟아 붇고 있는 한국정부가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해방 74년이 지난 지금, 재일동포 사회는 1-2세 보다 3-5세 세대가 대부분이다. 그토록 금의환향을 꿈꾸던 1세들과는 달리 3-5세들은 모국의 뿌리는 알지만, 민족의식의 약화로 인해 한국을 이웃나라 정도로 느낀다.

그렇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그토록 재일동포 1세들이 허리를 졸라매고 가난을 참으며 도와준 모국과 고향이 지원을 받아 성장한 후에는 동포 후손에게 고마움에 대한 보은 차원의 지원이 없는데 대한 섭섭한 마음 때문이다. 재일동포들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당시의 정치 경제계를 아는 이들은 누구라도 잘 안다.

구로디지털단지의 상징인 ‘한강의 기적’이나, 한국의 세계 10대 경제대국 진입도 재일동포들의 경제적 도움을 빼놓을 수는 없다. 한국이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 된 뒷면에는 재일동포들의 역할이 컸다.

‘우리학교’ 조선학교 통해 알려진 재일동포의 고통

지난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을 수상한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조선학교인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로, 2007년 극장 개봉을 해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김명준 감독이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교원, 학생들과 3년 5개월이라는 시간을 같이 보내며 담담하게 그들의 일상을 그려낸 영화다.

우리학교로 불리는 이 조선학교는 재일동포 1세들이 직접 세운 민족학교다. 일본에서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조선사람으로서의 나'를 지키기 위해 일본학교가 아닌 '조선학교'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조선학교에서는 재일동포들이 모국인 한국을 위해 바쳐온 공헌·역할과 재일동포 사회에 대해 교과서의 21%에 걸쳐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그에 비하면 한국의 학교 교육은 재일동포들의 공헌과 그들이 일본에서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겪은 끔찍하게 차별받는 생활과 일본 속의 삶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이런 한국정부에 대해 일본 재일동포들의 마음은 찢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열사들 뒷바라지한 오기문여사와 신한은행

올해가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되는 해로 김구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독립운동가의 활약이 재조명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효창공원에 안치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열사의 유해 송환과 안치 사업이 가능했던 것은 못 배웠어도 기업을 일으켜 애국하고자 비축했던 자금을 쾌척했던 재일동포 오기문 여사(1911-2014)의 공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19년 도일한 후 1923년 일본 천황 암살을 모의하다 발각돼 체포됐던 박열 열사측에서도 자금이 충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포 사랑에 일생을 바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한 오기문 여사의 존재가 한국에서 거론되는 일은 과거나 지금이나 거의 없다. 그녀의 돈이 필요할 때만 찾을 뿐이었다.

한편, 1982년 한국에 설립된 신한은행은 재일동포기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재일동포 341명이 250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신한은행은 2019년 현재, 명실공히 한국대표 은행으로 성장했다. 설립 당시 신한은행은 후진적인 한국의 금융문화를 일거에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재일동포들의 이같은 헌신적인 공로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재일동포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재일사학자로서 민족교육연구자로도 알려진 도쿄가쿠게이대학의 이수경 교수는 “1950~60년대 한국이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일 때, 재일동포들의 자금이 한국으로 유입되어 산업화의 밀알이 되었고,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한국이 중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우리가 돈이 없던 시절, 부잣집 아이들도 해외유학에는 100달러 이상을 가지고 나갈 수 없었다.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고, 학교에 가도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흔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모국의 학교를 지원하고 장학금으로 인재를 육성해 대한민국 사회 발전에 교육적으로 공헌을 한 동포의 수는 셀 수도 없다. 이제 한국도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선 만큼, 재일동포들의 삶과 모국에 대한 공헌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우리 정부가 챙겨야 할 올바른 도리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 1월 재외동포재단은 재일동포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기원을 위해 2억엔(약20억원)을 기부했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서 재일동포들이 한국사회에 남긴 유산을 간단하게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보충해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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