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 채권회수 어렵자, 중간상 물건 동원해 상계
채권부실 사고 진짜 원인은, 대기업의 도덕적 해이

[중소기업투데이 황무선 기자] 추위가 가시지 않은 지난 3월초 국회 을지로위원회를 찾아 왔다는 한 육류도매사업자를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그가 을지로위원회를 찾아 온 것은 한화호텔앤리조트(이하 한화)와 선봉프라임(이하 선봉)이란 협력업체(한화측은 계약관계에 있는 고객사라 해명)간 거래에 물건을 납품하고, 둘 사이의 분쟁으로 대금을 떼일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취재를 통해 확인결과 한화측은 “고객사(선봉)가 채무 변제 불가를 선언해 업체를 통해 납품된 물건을 대신 상계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중계업자인 선봉 E대표는 “한화가 대금 지급을 약속하고, 일방적으로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업체까지도 도산할 상황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이 상황은 그대로 납품업체 피해로까지 이어졌다.

한화호텔&리조트 FC사업부문에 대한 홈페이지 캡쳐.
한화호텔&리조트 FC사업부문에 대한 홈페이지 캡쳐.

 

접대, 술접대, 팀원회식까지 협력업체 부담 관행
협력업체 자전거래 등 돈놀이로 부풀린 매출 증대


생사 기로에 선 유통업체들

국회에서 만난 D사 대표가 납입한 물건은 약 10억 규모였다. 해당업체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납입한 물건이 잡히며 회사를 운영할 여유 자금이 묶여버린 상황이었다. 사건이 터지고 다행히(?) 피해업체 중 A사가 한화와 협상을 통해 극적으로 50억 대금을 변제 받았다. 비밀유지 각서를 이유로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한화측은 “A사의 경우 한화 담당자와의 직접적인 거래관계가 확인됐기 때문”이란 설명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당시는 사건에 대한 JTBC의 취재가 진행중인 상태였고, A업체의 대금변제가 이뤄지자 취재도 중단됐다.

하지만 남은 업체들의 상황은 더 악화됐다. 규모가 가장 큰 업체가 문제를 해결해 사건에서 빠지고 나니, D사 대표를 비롯해 채무 규모가 작은 나머지 두 업체의 대금회수는 사실상 더욱 어려워 졌다. 경찰고발을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 한국공정거래조정원, 을지로위원회, 청와대국민청원, 민주평화당갑질센터와 다시 방송국까지 만나고, 사정도 알렸지만 지금까지 문제해결에 대한 뾰족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경찰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문제해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라 업체들은 현재의 상황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협력업체인 선봉은 도산했고, 대표자는 한화와 피해업체에게 고발당한 처지가 됐다. 견실했던 3개 육류 유통업체들도 생사기로에 섰다.
 

사건의 개요

사건이 벌어진 것은 올해 1월 10~14일이다. 대금체불 피해를 입은 A사(50억), B사(30억), C사(20억, 현금), D사(10억) 등 4개 업체는 한화 협력회사인 선봉프라임의 제안으로 1월 11일 총 110억대 육류제품 및 현금을 한화에 입고했다.

갑작스런 납품은 한화가 연말 FC분야 매출을 늘리기 위해 100억 규모의 육류를 국내 유통사를 통해 구매키로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2017년 1조 5000억 한화호텔앤리조트 매출중 FC분야 매출은 약 3000억원이였는데, 2018년에는 5000억까지 매출을 늘려야 한다는 구체적인 사정과 이를 위해 연말 한화가 국내에서 구매를 추진한다는 것이 유통업자들이 한화로 물건과 현금을 공급하게 된 이유였다.

물론 이같은 전후사정은 협력업체인 선봉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은 일부 피해업체들도 한화와의 직·간접적인 소통을 통해 확인했던 터였다. 이를 믿고 피해업체들은 연초 BL(선하증권)을 비롯해 확보한 육류, 현금 등을 한화로 인계했다.

하지만 올해 1월 14일 지급하기로 했던 한화 대금과 물건은 돌연 지급되지 않았다. 1월 10일까지 이어졌던 한화 담당팀장과 협력업체 E대표와 카톡은 물건이 입고된 11일을 전후로 두절됐다. 물론 통화도 안됐다. 14일 이후 대금이 지급되지 않자, 업체들이 한화 내부 사정을 확인한 결과, 해당 팀장은 회사로부터 직위해제 된 상태였다. 협력업체 대표도 사기혐의로 고발됐다.

한화측은 “고객사인 선봉이 지난해 12월말까지 155억원까지 늘어난 채무를 변제할 수 없다 선언했고, 때문에 납품된 물건을 부득이 상계처리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명과 현실은 달랐다. 문제가 터지자 한화 법무팀이 선봉 E대표를 찾아와 늘어난 채무관계, 선봉의 대금변제 계획 등과 전후 사정을 알아보기까지 했다.
 

채권부실 배경된 한화의 ‘自轉去來’

한화에 따르면 협력업체인 선봉과 한화는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양측간 거래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10월 들어 선봉의 월말의 입금이 밀리면서 한화쪽 매출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한화 관계자는 “10월에도 선봉을 제외한 고객사를 통한 매입은 모두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대금도 정상적으로 지급됐지만 선봉의 매출에 대한 대금 입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화가 제시한 선봉프라임과 한화 간 거래 내역에 따르면 한화가 협력업체를 통해 매입한 육류는 2018년 10월 56억, 11월 56억, 12월 147억이었고, 정상적으로 모든 대금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화 협력업체에 대한 매출은 그 해 10월 62억, 11월 90억, 12월 128억의 물건이 공급됐지만 대금납입은 43억, 30억, 53억 등 12월까지 누적된 채무가 155억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이 같은 거래상 문제에 대해 피해업체들는 “한화가 협력업체를 통해 주식거래에서 주가를 부풀리기 위해 약속하고 주식을 돌리는 것처럼, 매출과 이익을 늘리기 위해 협력업체와 ‘자전거래(自轉去來)’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화가 제공한 서류상에는 매출과 매입이 모두 선봉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피해업체가 선봉을 통해 확보한 거래 장부에는 선봉을 통해 매입한 것은 다크호스를 통해, 다크호스를 통해 매입한 것은 선봉을 통해 매입과 매출을 조정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선봉 E대표와 한화 팀장 간 카톡 대화에 나타난 선봉과 다크호스의 채무 규모도 피해업체의 설명과 일치했다.

한화는 선봉과 같은 유사한 협력사를 여럿 두고 있다. 피해업체들은 “이들 업체들이 한화가 해외나 국내에서 물건 구매하는 것을 고정적으로 대행을 해주며, 돈을 내주는(파이낸싱) 명목으로 금리를 얹어 그 업체로 물건을 출고하는 방식으로 국내 육류유통에 간여해 막대한 이익을 챙겨왔다”고 설명했다. 또 “한화의 대부분 협력업체들은 선봉처럼 한 회사가 관계사(다크호스) 하나를 더 두고 운영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덧붙였다. 선봉에서 구매한 육류에 다시 이익금을 붙여 선봉으로 내보내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매출과 매입 규모도 대부분 일정한 상태를 유지했다. 선봉과 한화 간 체결한 계약서를 보면 이번 사건처럼 협력업체의 부실이 커지지 않는 한 한화는 협력업체로부터 매월 일정금액 이상의 매출과 이익금을 안정적으로 거둘 수 있는 거래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매출에 월 2.58% 수수료를 떼기 때문에 연간으로 보면 이자율은 30.96%에 달했다.

피해업체들은 “이는 사실상 불법 고리대금업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거 동양생명이나 CJ, 롯데 등도 유사한 자전거래를 했었지만, 나중 문제가 되자 모두 중단했다”며 “이번 사건을 겪으며 한화가 구태의 거래방식을 고수하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불법적인 거래방식에 지난해 연말 축산업계의 불황과 겹치며 협력업체인 선봉이 한화로부터 받은 물건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게 됐고, 불과 3개월 사이 채무가 155억대까지 커져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이었다.
 

한화호텔앤리조트 담당팀장과 선봉프라임 E대표가 나눈 카톡내용 중 일부.
한화호텔앤리조트 담당팀장과 선봉프라임 E대표가 나눈 카톡내용 중 일부.

155억까지 커진 채무, 한화는 정말 몰랐나?

한화는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선봉 채무가 155억까지 늘어난 것을 회사측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피해업체측은 대기업에서 100억이 넘는 채무를 담당임원이 모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담당팀장과 선봉의 대표가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사건이 발생한 올해 1월 13일까지 나눈 카톡 내용을 보면 피해업체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11월 1일부터 한화 팀장은 선봉 E대표에게 자금 계획과 함께 자금 완불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 대화를 통해 계속됐고, 11월 30일에는 “선봉 미수가 약 12억, 다크가 약 77.5억으로 합해서 89.5억”이라며 선봉 E대표에게 입금을 다시 요청하기도 했다.

이후 12월 20일에는 “11월 채권 약 24억, 12월 채권 약 130억 합이 154억”이라며 “금액은 크고 시간은 없어 답답해 연락을 한다. 문제가 된 유통업체 A사만을 기다리지 말고 여기저기 재고와 선 판매를 움직여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올해 1월 9일 선봉 E대표는 오전 한화 팀장이 표와 함께 “물건은 컨테이너에 있습니다”는 답변에 “C업체 현금 20억 가능하다”, “A사 서류 끝, 재고이체 내일확정”, “B사 1차 재고 이체중”, “B사 오늘 2차 서류까지 이체중”, “B사 3차 제고 15억 준비중”, “D사 전화후 내일 이체확정” 등 4개 업체의 물건과 현금을 확보했다고 통보한다. 이에 대해 한화 팀장은 “서류랑 거래명세서 넘겨달라며 상계 처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니 서둘러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그리고 1월 10일 모든 입고가 마친 후 오후 3시경엔 “상계 진행해야 되는데 재고 언제 이체할 거냐”고 물어본 후로는 더 이상의 한화 팀장과 선봉 E대표의 카톡은 중단됐다.

피해업체측에서는 "물건은 컨테니너에 있습니다"란 한화팀장의 말은 현금을 끌어들이는 명목으로 한화의 재고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카톡 대화만 보면 적어도 한화의 담당팀장이 선봉의 채무를 연말 상계처리하기 위해 4개 유통업체를 끌어들인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27일에는 한화 담당팀장은 선봉 E대표에게 마산갈비 10개 구매 요청과 함께 “담당상무의 지시”라며, “IBP, NBP, EXCEL, SWIFT 등의 단가를 알아봐 달라”고도 부탁했다.

이는 “새해와 명절이 시작하기 전 소고기 물량을 시중에서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피해업체들은 시장의 돌아가는 상황과 시중단가까지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한화의 담당임원이 접대까지 받으며 선봉의 155억의 늘어난 채무상황과 상계처리를 위한 유통업체를 끌어들이는 사실을 업계 있는 입장에서 상식적으로 몰랐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접대비로 사용한 영수증들.
접대비로 사용한 영수증들.

성 접대를 비롯한 대기업 갑질

E대표 : “000상무 언제 왔었지? 왔을 때 이차도 갔었니?”

마담 : “한화 직원들과 4~5명 같이 왔을 때? 그 머리 벗겨진 사람이 000상무지? 그날 아가씨 바꿔서 올라갔어. 그때가 10월 달인가? 그쯤 되지 않았나? 000에게 물건 돌려주기로 했는데, 한화가 막아버려서 그렇게 됐다고 들었다. 진짜 000들이다. 어떻게 네게 그럴 수 있니?”

E대표 : “작정하고 사기 친 거지, 딴 곳에서까지 물건 당기게 해놓고, 막아버려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 한화 말만 믿고 올인 했는데, 11일에 다가져다 물건을 (한화에) 부었는데 이렇게 됐다. 그 후 000상무도, 000도 전화 안 받는다. 그렇게 술 처먹이고, 여자 해주고 매달 (접대)했는데 뒤통수를 때려도 어떻게 이렇게 때릴 수 있니? 술 사 먹인 것만 해도 2~3년 동안 어마어마한데. 거기 다 너희(가계)만 갔니, 강남도 다니고, 돈도 찔러주고...”

취재 과정에서 받은 선봉 E대표가 한화 직원들과 고정적으로 다녔던 룸싸롱 마담과 녹취내용이었다. 물론 대화를 일방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다. 하지만 통화 내용을 통해 협력사 대표가 한화에 관행적인 접대를 오랫동안 해온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선봉 E대표는 2017년 한화 협력업체들 사모임인 ‘한화성공회(일명 한화회)’에 총무를 맡았다. 한화 FC분야 사모임 한화회의 구성은 식재영업1팀 산하 4개사, 식재영업2팀 3개사, 외식시재영업팀 3개사, 외식식재신경로TFT 2개사, 유통영업팀 4개사 등 16개 업체가 참여했고 선봉 역시 유통영업팀 고객사였다. 모임에는 한화도 구성원으로 표시돼 있었다. 한화 담당상무를 비롯해 2명의 팀장 이름도 보였다.

명분은 친목도모였지만 선봉 E대표는 접대모임이라 했다. 연회비는 100만원(한화는 제외)이었고, 모이면 골프와 술자리를 함께하며 어울렸다. 모자란 경비는 나중 각사들이 갹출했다고 했다. 

한화측에서는 이 모임은 “고객사 중심의 친목을 위한 모임이고, 한화 구성원은 정식회원도 아니다. 골프 모임에는 장소를 제공해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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