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 하루전, 구상안 발표
국가보훈처 공동, 독립운동 기념공원 위상 바로 세운다
한국 축구역사 산실 ‘효창운동장’ 보존
옛 ‘효창원’ 공간 회복… 손기정 체육공원 '20년 6월 준공
대시민 공론화 거쳐… '24년 준공

서울시, 김구 등 독립운동가 7인 잠든 '효창공원'이 ‘효창 독립 100년 공원’으로 거듭난다.
서울시, 김구 등 독립운동가 7인 잠든 '효창공원'이 ‘효창 독립 100년 공원’으로 거듭난다.
효창운동장

[중소기업투데이 이화순 기자]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이봉창 의사 등 조국 해방에 삶을 바친 7인의 독립운동가가 잠들어 있는 서울시 용산구 ‘효창공원’(16만924㎡) 이 5년 후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거듭난다. 

서울시는 일제가 훼손한 ‘효창원’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오랜 시간에 걸쳐 노후되면서 주민들에게 외면받아온 ‘효창공원’의 위상을 바로 세운다는 계획. 독일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같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마주하며 그 정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상 속 기념공원, 미래세대가 뛰어노는 새로운 명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 정조의 장자인 문효세자의 묘역인 ‘효창원’이 있던 자리다. 일제는 울창한 송림으로 사랑받았던 효창원에 골프장과 유원지를 지었고, 해방 직전에는 묘역을 서삼릉으로 이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규모는 1/3로 축소됐고 도로로 단절되면서 폐쇄적인 공원이 됐다.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했고 그 자신도 1949년 효창공원에 묻혔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삼의사’와 임시정부에서 주석, 비서장, 군무부장을 지낸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생 등 독립운동가 7인의 묘역이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봉환되면 안장하기 위한 가묘도 있다. 

1960년에는 ‘제2회 아시안컵’ 개최를 위해 ‘효창운동장’이 조성됐고, 이후 반공투사기념탑(1969), 대한노인회관(1972) 같은 다양한 시설이 난립하면서 효창공원의 역사적 가치는 점점 퇴색됐다. 

현재 묘역은 추모행사 때만, 효창운동장은 훈련‧연습용도로, 기념관은 단체이용객 위주로 이용하면서 근린공원 수준인 연간 33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그동안 추모행사 때에만 참배객 위주로 방문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7인의 묘역은 ‘일상 속 성소’로 전환한다. 

전면철거, 축소 등 의견이 분분했던 ‘효창운동장’은 공원과 하나되는 축구장으로 거듭난다. 다만 독립운동가 묘역을 가로막고 있는 스탠드, 조명탑 등 일부 시설은 없애고 운동장과 공원 사이 주차장과 도로를 녹지화해 연결성을 강화한다. 

기존 ‘식민지 역사박물관’에 더해 효창공원 북쪽으로는 암울한 시기에 민족의 혼을 되살린 스포츠영웅 손기정 선수와 그의 조력자 남승룡 선수를 기념하는 ‘손기정 체육공원’이 내년 6월 준공 예정이다. 남쪽으로는 이봉창의사 생가 터에 ‘이봉창의사 기념관’이 내년 4월 문을 연다.

서울시는 국가보훈처와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인 11일 하루 전 ‘효창독립 100년공원 구상안’을 이와 같이 발표했다. 

효창공원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은 이전에도 있었다. '05년 국가보훈처가 효창공원 전체를 민족공원으로 성역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효창운동장 이전‧철거 문제를 놓고 보훈단체와 축구단체 간 의견대립으로 무산됐다. '13년에는 국립묘지 지정이 추진됐지만 공원이용 제약 등을 우려한 지역의 반대로 무산됐다. 

효창공원의 새로운 공간 구상 방향은 ▲효창운동장은 창의적 계획을 통해 변화 가능한 ‘다층적 공간’으로 ▲독립운동가 7인의 묘역은 ‘일상 속 성소’로 ▲주변 지역은 ‘확장된 공원’의 개념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폐쇄적이고 정적인’ 공간이었던 효창공원을 ‘함께 기억하는 열린’ 공간으로 바꿔나간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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