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나미술관, 7월7일까지 '나나랜드' 전시
1인 가구 시대, ‘나나랜드’에 21명의 작가가 모였다.
나는 나, 1인 체제, 젠터 뉴트럴, 바디 포지티브, 자화상 등

[중소기업투데이 이화순 기자] ‘나답게 사는 것’ ‘가장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서울 은평뉴타운에 위치한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이 이 주제에 도전했다. 올해 첫 전시로 ‘나나랜드:나답게 산다’전을 7월7일까지 열고 있다.

'나나랜드'전은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9'에 꼽힌 '나나랜드'에서 가져왔다. ‘나나랜드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라라랜드'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나나랜드의 사람들(나나랜더)에게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 기준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의 기준이라고 믿는다.

안띠 라이티넨 'Voyage' (2008)
노세환의 '저울은 금과 납을 구분하지 않는다'(철봉, 아크릴, 와이어, 가변크기, 2019)

전시는 ‘가장 나다운 것’을 발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의 의식 변화와 사회현상을 보여준다. 사비나미술관과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첫 협력 전시다.

전시는 크게,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 나를 찾는 ‘나는 나’, 혼자일 때 진짜 내가 되는 ‘1인 체제’, 기준 따위 필요 없다고 외치는 ‘젠터 뉴트럴’과 ‘바디 포지티브’, 나를 찾는 여행-나와 당신의 자화상 등으로 나뉜다.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나를 찾는 작품으로 사진작가 노세환의 신작 설치물 '저울은 금과 납을 구분하지 않는다'를 제목으로 한 거대한 모빌이 전시장에서 움직이고 있다. 금수저, 흙수저를 생각하는 관람객이라면 자극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관람객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님께 받은 이름을 로또 추첨기 같은 기구 앞에서 자의로 바꾸는 실험을 해볼 수도 있다. ‘작명쇼’(구혜영 작가)가 그 작품이다.

구혜영의 '작명쇼'(싱글채널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2019)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뽑는 관람객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 오른족에 이명옥 관장. [이화순 기자]
구혜영의 '작명쇼'(싱글채널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2019)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뽑는 관람객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 오른족에 이명옥 관장. [이화순 기자]

 

김화현 '군선도'(순지에 수묵 담채, 2017)

그런가하면 이제까지 남성이 대상화해온 여성이 주체가 되어 남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작품에 투사한 김화현의 수묵 담채 ‘군선도’(2017)도 눈길을 끈다. 한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남자 아이돌 그룹을 연상시키듯, 예쁜 남자들이 그림 속 인물로 등장한다.

가장 나다운 모습은 혼자 있을 때다. 쁘레카의 '1인 가구 사진관'은 나만의 1인 가족 사진을 찍어볼수 있다. 2016년부터 촬영한 1인가구 사진과 소파를 설치하고, 관객 혼자 또는 어느 대상과 함께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설치작가 고재욱의 반거울 노래방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혼자 노래할 수 있는 1인용 동전 노래방 형식의 'DIE for'를 발견하게 된다. 진짜 노래방기계라 노래를 불러볼수 있다.

김승현의 ‘모바일 홈 키트’는 여행 가방을 펼치면 어른 한명이 누울 수 있는 침대로 변하는 작품이다. 기자가 직접 누워봤더니 작은 공간에서도 나만의 시간을 찾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꽤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김승현 '모바일 홈 키트' (혼합재료, 180x50x80cm, 2019)에 누워본 기자
김승현 '모바일 홈 키트' (혼합재료, 180x50x80cm, 2019)에 누워본 기자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규정하는 고정 관념을 깨주는 작품도 있다.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차용하고, 공유하는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성 중립)’ 움직임을 느껴볼수 있다. 젠더 뉴트럴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분법을 없애고, 대립 개념이 아닌, 중립성을 지향하고 아예 성의 구분 자체를 없앤다.

사진작가 윤정미는 국내 처음으로 사진 속 장면을 미술관 속에 설치작업으로 내놓았다. 왼쪽 공간은 핑크, 오른쪽 공간은 블루로 구성한 '핑크 & 블루 프로젝트'다. '핑크 & 블루 프로젝트 III' 연작 사진과 함께 이를 재현했다. 핑크와 블루는 젠더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아닌, 젠더의 경계를 오가고 바꾸며, 지워나가는 공간으로 치환된다.

윤정미 '핑크 스페이스&블루 스페이스'(가변설치, 2019)  [이화순 기자]

20년 전 문신을 새긴 몸을 소개했던 김준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젠터 뉴트럴에 주목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흔적이 지워진 이미지의 향연이다.

각자 조각과 사진작업을 진행하던 유화수와 이지양은 2018년 프로젝트 ‘당신의 각도’에서 자신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7명의 장애인과 협업했다. ‘바디 포지티브’ 개념에 부합하는 7인의 사진은 장애인들의 특징과 요구사항을 반영해 제작한 테이블, 독서대가구, 시계 등 가구 세 점과 가구를 담은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특별 제작돼 눈길을 끈다.

유화수, 이지양 작가가 7명의 장애인과 협업한  '당신의 각도'(2018)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나다움을 찾는 나나랜더들은 결국 예술가의 자화상인 동시에 관객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김미루의 ‘사헬, 말리, 사하라’ 시리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된 나 자신에 근접한 ‘나’를 찾게 한다. 또 천경우의 ‘Portrait Made by Hand’는 관객이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관찰한 후 글로 묘사하고 성찰하게 하는 프로젝트로 이번 전시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다.

황영자의 ‘인터뷰’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자화상과 인형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출구를 표현한다.

사비나미술관 소장품 특별전에 걸린 '조던 매터: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
사비나미술관 소장품 특별전에 걸린 '조던 매터: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

한편 사비나미술관은 '나나랜드'전과 함께 소장품 특별전으로 뉴욕 사진작가 조던 매터의 사진전도 연다. 조던 매터는 트램펄린이나 와이어, 안전장치 없이 도약하는 무용수의 정직한 신체의 움직임을 순간 포착하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지난 2013년 아시아에서의 첫 전시였던 사비나미술관의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사진전으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은 바 있다. 미술관 4,5층에서 여는 이번 특별전에는 '나나랜드'전의 주제와 연계된 사진 26점, 메이킹 필름을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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