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31일까지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전
지병목 관장 “고종 승하가 3.1운동·민족독립 불꽃 지폈다”
서울서예박물관, 4월21일까지 미소짓는 고종 초상 전시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특별전 '자화상-나를 보다'를 통해 공개된 고종 전신상 '태상황제 사십구세 어용초본(太上皇帝 四十九歲 御容初本)'. 고종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측면상이다. 전시 4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특별전 '자화상-나를 보다'를 통해 공개된 고종 전신상 '태상황제 사십구세 어용초본(太上皇帝 四十九歲 御容初本)'. 고종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측면상이다. 전시 4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중소기업투데이 이화순 기자] “오 슬프다, 우리 2천만 동포여. 대행태상이신 고종황제께서 돌아가신 원인을 아는가, 모르는가... 친일파 윤덕영과 한상학 두 적신으로 하여금 시녀에게 식혜에 독약을 넣어....”

1919년 1월, 기미독립 선언서와 3.1만세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손병희 선생의 이름으로 발표된 국민대회 포고문이다. 포고문에서는 국권회복과 민족을 구하고 고종과 명성황후의 원수도 씻을 수 있으니 봉기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는 망국(亡國)의 한을 품고 숨을 거뒀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 이준 등을 파견해 국권 회복을 기도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한 후 아들 순종에게 양위한 지 12년 만이다.

덕수궁 함녕전에서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죽어간 고종의 붕어(崩御·왕의 죽음)와 함께 일제의 독살설이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친일파 윤덕용이 궁전 나인을 시켜 독이 든 식혜를 고종에게 올려 급서했다는 의혹이 흘러나왔다. 소문이 확산되자 일제는 '매일신보'에 고종이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고종에게 식혜를 올렸던 나인 2명도 잇따라 사망하면서 항일 감정은 극에 달했다.

마침내 백성들이 고종의 인산일(발인)인 3월 3일에 맞춰 3·1운동을 봉기했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외에도 조선의 마지막 황제로 100주기를 맞이한 고종(1852∼1919)을 기리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국립고궁박물관은 31일까지 1층 전시실에서 작은 전시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전을 열고 있다.

지병목 관장은 “3·1운동을 고종 황제 승하와 연계했다”며 “고종 승하로 독립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다. 고종 승하가 그 구실을 했다”고 설명했다.

고종황제 어진 초본 - 채용신 201901-017-39,7x27cm
고종황제 어진 초본 - 채용신 201901-017-39,7x27cm

 

고종 승하, 국장, 영면 등 주제 3가지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국장 때 촬영된 당시 사진과 의궤에 남겨진 기록, 고종이 잠들어 있는 홍릉 사진 등 총 15점올 걸었다. ‘순종황제실록 부록’, ‘영친왕비 일기’가 고종 별세 당시의 상황을 전한다.

‘이태왕전하어장주감의궤’(李太王殿下御葬主監儀軌:고종 황제의 국장 과정을 기록한 의궤), ‘덕수궁인산봉도회등록’(德壽宮因山奉悼會謄錄:고종 황제의 국장 때 대여를 맨 민간단체의 기록)이 고종의 국장을 말한다.

이 기록들은 당시 조선총독부가 고종 황제 국장을 주관하면서 일본식으로 진행했고, 역대 왕의 국장에 비해 절차를 축소하고 변형한 과정을 보여준다.

함께 전시된 ‘종 황제 국장 사진첩’ 2건과 엽서 4장 등 자료들은 국장 진행 과정을 더욱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고종 황제 국장을 보도한 한 이탈리아 신문도 눈에 띈다. 신문에 실린 일러스트는 조선인들을 흑인으로 표현했다. 고종 황제 승하 당시 제작된 어보(御寶)와 옥책(玉冊)를 통해 왕실 의례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전시와 연계한 특별 학술강연회가 21일 오후 2시 ‘고종 국장과 1919년의 사회’를 주제로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에서 열린다.

이욱 선임연구원이 고종황제의 국장 과정을 분석해 대한제국 황실 의례가 국권피탈 이후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살핀다. 윤소영 연구원은 고종 국장으로 인한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 국권피탈 후 억눌린 민족의 한이 3·1운동으로 폭발하는 과정을 발표한다.

1919년 6월 8일, 고종 황제의 국장을 보도하면서 1면에 고종 국장 행렬 삽화를 인쇄한 이탈리아 주간지 La Domnica Del Corriere. [문화재청]
1919년 6월 8일, 고종 황제의 국장을 보도하면서 1면에 고종 국장 행렬 삽화를 인쇄한 이탈리아 주간지 La Domnica Del Corriere. [문화재청]

고종 황제 국장, 조선총독부가 주도

조선왕조에서 왕과 왕비의 장례 절차인 국장(國葬)은 임시기구인 도감(都監)의 주도 아래 70단계에 달하는 절차를 대략 3년에 걸쳐 장중하게 진행했다. 그러나 고종 황제의 장례는 조선총독부가 임시로 설치한 장의괘(葬儀掛)가 주도했고 절차가 축소, 변형됐다. 또 일본 친왕(親王)의 국장을 기본으로 하고 조선의 관습을 더한다는 원칙으로 진행되었기에 일본 신도(神道)식 의례가 적용됐다. 이러한 변형과 왜곡은 일본의 식민 통치 하의 현실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문화재청과 서울시도 지난달 2월 25일부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 5일까지 공동으로 고종의 장례를 연출하는 전시를 덕수궁 돌담길에서 개최했다.

서울서예박물관, 미소짓는 고종 초상 전시

한편 예술의전당은 4월 21일까지 서울서예박물관에서 3·1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서화미술특별전 ‘자화상(自畵像)-나를 보다’전을 개최하면서 근엄한 고종 황제의 모습이 아닌, 거울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고종 전시장 회화(작자 미상)와 궁중화가 채용신이 그린 어진(어진·왕의 초상화)을 전시하고 있다.

거울 앞 고종의 회화에 대해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는 “미술기획자로 일하는 국내 소장가가 지난해 프랑스에서 가져온 작품이다. 고종 초상과 함께 들여온 대한제국 당시 대신들의 초상 11점도 이번에 공개돼 작품 신뢰성에는 문제가 없다”면서 “작품의 수와 무관하게 ‘자화상’ 전시의 고종 회화는 국내 첫 전시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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