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김치이야기-②] 어머니와 김치맛이 사라져 가는 모국, 新디아스포라?
[이수경의 김치이야기-②] 어머니와 김치맛이 사라져 가는 모국, 新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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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어머니는 일본 히로시마(広島)에서 료칸(요리를 내는 여관)집 딸로 태어나셨다.

1945년 8월6일 당시 히로시마 근처의 시마네(島根)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원자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료칸을 정리해서 상코마루(三幸丸)라는 배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한일 양국에서 외할아버지와 10명의 자식과 집 일꾼들을 챙기셨던 외할머니로부터 엄하게 음식을 배우신 어머니. 어머니는 모든 음식에 대해서 정성을 쏟으셨고, 정갈한 맛으로 집 식구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어서 친인척은 물론, 학교 친구들까지도 일부러 어머니 밥을 먹으려고 귀가 길에 우리 집에서 저녁까지 진을 치기도 했다. 그런 우리 집 겨울철 이벤트는 역시 김장김치 담그기였다. 각종 젓갈과 야채로 버무린 양념으로 150-200포기의 김치를 만들 때는 우리 집이 동네의 김치 커뮤니티가 되기도 하였다. 고추 가루와 마늘, 생강 등이 들어간 기본양념에 젓갈과 조기, 배, 굴, 게, 육회 등등으로 속을 만들어 만든 김치를 비닐에 담아서 큰 장독에 가득 넣은 뒤 묻어 두면 봄철까지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산처럼 쌓인 배추나 무를 잘라서 겹겹이 양념을 넣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시던 어른들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잔심부름을 하던 우리 형제들은 무조건 이유 없이 즐거웠고, 간간이 어른들의 관대한(?) 배려로 겉절이에 신선한 생굴을 듬뿍 넣어서 입에 넣어주시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김치 맛에 행복은 최절정에 달하는 것이었다.

당시 여느 집들도 겨울철 풍경은 비슷한 상황이었으리라. 그런 가족과 지역 커뮤니티를 잇는 김장 (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문화를 인류 유산으로 남기자고 동의하여 유네스코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핵가족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더더욱 삭막해져가는 현대 사회의 따뜻한 윤활유처럼 훈훈한 겨울 풍속으로 계승, 유지시키는 것이 김장문화 종주국의 역할이고 인류사적 사명이 아닐까?

하지만 필자가 구입한 저런 김치를 양산하여 변형된 맛의 김치를 전통김치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재, 과연 한국의 김장문화, 김치 맛, 안녕하십니까? 김치 사업을 하시는 관계자 여러분들 댁의 김치는 어떠신가요?

필자가 만원버스로 통학을 하던 학생 시절, 당시의 일본 슈퍼마켓에는 천편일률적인 일본식 소재와 고춧가루 빠진 스파이스만 진열되어 있을 뿐, 요즘 같은 한국 식재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일본 내는 물론, 해외출장 혹은 유럽에서의 안식년 생활을 통해 충족하지 못 했던 김치를 먹기 위해 한국행 기회를 만들기에 여념 없었고, 1주일 정도 머물게 되면 몸속이 온통 김치 국물로 가득 찰 정도로 다양한 김치맛에 파묻히다 오곤 했다. 그렇게 내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던 힐링 푸드 김치가 언젠가 부터 한국의 웬만한 식당을 가도 맛깔스럽기는 커녕, 푹 삶은 고춧가루 국물에 기절해 있는 듯한 김치(묵은지, 숙성 김치가 아닌)를 자주 보게 되었고, 젓가락이 가다가도 결국 그만 두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김치 종주국으로 알려진 대한민국에서 김치가 왜 사라지거나 변질되고 있을까? 손이 많이 가는 음식, 강한 냄새, 사회 구성원 모두가 여유 없이 바빠졌다는 점, 제대로 김치를 전수 받지 못한 사람들의 증가?, 김치애용자 감소?, 수입 김치의 급증? 하긴 누구를 탓하랴. 나도 그 부류 아닌가?

그렇지만 필자는 제법 노력을 했노라고 변명을 해 두고 싶다. 김치가 그리워서 도쿄 근처서 배추와 무우를 사다가 몇 번 시험을 했었다. 그러나 달고 수분이 많은 배추와 무우는 겉절이는 가능하나 숙성 과정에서 맛이 변하기 일쑤였고, 오이나 부추김치를 맛보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에 가는 이유는 부모님을 뵙고 김치를 비롯한 한국음식으로 충전하는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나를 지탱해 준 부모님도 안계시고, 하다못해 김치의 맛조차도 제대로 볼 수 없는 현실이 슬퍼진다. 한국은 분명 내가 태어난 곳 일진데 점점 멀어지는 거리감을 느끼다 보니, 나야말로 이 시대의 새로운 디아스포라가 되는 것은 아닐까? <다음호에 계속><본지 제30호 12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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