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평의 더불어 사는 세상

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이사장(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장태평 더푸른미래재단이사장(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장태평 이사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하면서 행동한다. 즉,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본다. 이런 양상이 심한 것을 타인의식 증후군이라 한다. 예를 들면, 실속없이 체면을 중시한다. 관혼상제에 허례허식이 넘친다. 대학을 선택할 때에도 전공이나 미래의 꿈보다는 일류대학이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심지어 직업도 일류 직장이냐 아니냐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 그러다 보니 실질내용보다 형식이나 외형이 중시된다.

타인의식 증후군의 원인은 먼저 잘못된 집단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집단적 문화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 술을 마실 때, 잘 마시는 사람이나 못 마시는 사람이나 똑같이 먹도록 강요한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술을 강요하여 신입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가끔 일어난다. 노래방에 가면 의례 돌아가면서 누구나 노래를 해야 한다. 이런 강제적인 집단의식은 합리적인 공동체 의식과는 다르다.

우리 집단의식은 농경문화의 전통에서 오는 집단 중시 특성을 가지고 있고, 가족중심의 유교적 철학으로 연마되어 왔다. 집단을 중시하지만, 가족 중심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천륜이다. 어떤 기준보다 강하다. 조상신을 모신다. 더구나 부모와 동등하게 중시하던 군왕이 사라진 지금은 유일한 최고 기준이 가족이다. 기독교문화의 서양식 집단의식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의식이다. 이웃이 형제이다. 서양의 집단의식은 외부(이웃) 지향적, 확장형 집단의식이다. 우리 집단의식은 내부(가족) 지향적, 축소형 집단의식이다. 큰 집단보다는 그 속에 있는 소집단을 더 중시하는 편가르기 식 집단의식이다. 전국보다는 지연이 중요하고, 지연보다는 혈연이 중요하고, 혈연보다는 가족이 중요하다. 옳고 그름보다 우리 편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유행에 민감하고, 그 유행이 상당히 획일적이다. 서로 사정이 다른데도 외형이 유사하면, 같은 취급을 요구한다. 옷을 입거나 외모의 변화에도 나의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타인의 시선으로 판단한다. 강하게 달아오른 사회 여론도 내 주장의 집합이 아니라 타인을 따라 한 것이기에 금세 식는다. 이런 현상의 외형을 보면, 타인을 그냥 따라 하는 것 같지만, 그 뿌리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겠다는 경쟁심리다. 축구 월드컵 응원 때 전국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 광적 열기도 전체 흐름에서 빠지지 않으려는 경쟁심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이렇게 남을 따라 하는 행위와 다르게 요즈음 SNS 망에 시시콜콜하고 잡다하게 자기 자랑을 하거나, 독특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본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타인을 의식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 보면, 타인을 의식하고 그 경쟁에서 돋보이기 위해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다. 수컷 공작이 깃을 아름답게 펼치는 것과 같다. 물론 이 경쟁심은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 우리 학교, 우리 집, 우리 남편 등 ‘내’보다는 ‘우리’라는 말이 훨씬 많이 쓰이고 자연스럽지만, 우리 집단의식은 편 가르기 식 축소형 집단의식이다. 전체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확장형 공동체 의식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식당 등 공중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을 부모들이 방치한다. 아이들이 기죽지 않고, 싸움에서도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순간 부끄럽더라도 이득이 남는 쪽으로 행동한다. 타인의 시선에 찌들어 있다가 정작 필요할 때는 무시한다. 선진 사회에서도 타인을 의식하지만, 그 타인 때문에 사회질서와 예절을 지키고, 절제와 양보를 한다. 타인에게 불편이나 폐를 끼치지 않도록 애쓴다. 공동체를 살찌우는 미덕이다. 우리의 경쟁심을 승화시켜야 한다.

또한 타인의식 증후군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확립해야 한다.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타인이 한 줄 서열 경쟁에 있는 적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보완하고 상생하는 이웃이라고 인식하는 공동체 교육이 필요하다. 

<본지 제29호 15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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