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방한
‘한강의 기적’, 재일동포 후원의 기적임을 기억했으면
항일의병 다룬 논문 준비하며 울기도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황무선 기자]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황무선 기자]

[중소기업투데이 김우정 기자] 일본 역사학계에서 언론사 특종 같은 ‘사고(?)’를 잊힐 만하면 치는 것으로 유명한 이수경 교수.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일본 내각이 개입한 정황을 미우라 고로 수기5권을 입수해 밝히면서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고,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희생된 한국인들의 슬픈 현장과 당시의 유언비어에 대한 언론보도 및 당국 관계자(악인 3총사)들의 행위를 고발하는 등 한일연구에 평생을 바친 역사학자다.  또한 윤동주, 송몽규의 연세대 동인지 '문우'의 해석과 그들의 재판판결문을 입수해 일제의 재판 비화를 공개했고, 독도에 대해 140년 전부터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약 40권에 달하는 일본 역사·지리·지도 교과서를 모두 찾아내 분석한 논문은 한일 양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 국회도서관을 검색하면 그의 연구 업적은 이미 160편을 훌쩍 넘고 있다. 특히, 일본 왕궁의 서릉부에서 항일의병 사진을 찾아낸 이 교수는 일본어로 집필한 그의 논문을 통해  “대한제국의 경찰권과 국가가 일제로 넘어가는 순간, 우리 조정의 왕족과 고위급 인사들은 창경궁에서 일본이 마련한 스모시합을 즐겼다”며 “일본 제국주의의 얄팍한 돈뿌림에 넘어가 의병을 밀고해 먹고 산 동족의 불행한 구조를 밝혀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논문을 집필하면서 수없이 울어야 했고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145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가쿠게이대학은 아시아 최고(最古)의 교원양성 국립대학이다. 지금껏 이 교수가 배출한 제자들은 무려 1만 5000여 명이며, 이 대학 전체 교수 365명 중 최고의 연구업적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도쿄가쿠게이대학 연구업적 우수상’을 받았고, 이후에도 ‘연구 업적 탁월연구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차례나 응급실로 실려가는 등 생사(生死)의 고비를 넘나들기도 했다.

재일동포 활약상 교과서에 실어야

“1948년 런던올림픽 때 한국에서는 선수들을 파견할 돈이 없었어요.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재일동포들이 돈을 모아 런던올림픽 참가비와 유니폼 등을 지원했어요. 1986 아시안게임 때 동포 8000명이 전야제에 참석하며 물심양면지원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 때에는 100억 엔을, 올해 치러진 평창동계올림픽때에는 2억 엔을 기부했습니다. IMF 위기 때는 어떠했습니까? 일본 전역의 재일동포들이 십시일반 870억 엔을 모아 지원하는 등 재일동포는 한국 경제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습니다. 방림방적, 코오롱, 한일합섬, 롯데, 신한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기업들이 한국 경제에 공헌을 해 왔고, 경남 출신으로 나고야에서 사업을 일으킨 정환기 선생은 ‘국가발전에 교육만큼 큰 원동력은 없다’며 진주교육대학에 260억 원을 기부했습니다. 오사카에서 남해회관을 운영하신 김창인 선생도 제주대에 지금까지 150억 원 가량을 희사했고요. 재일동포들의 ‘친정돕기’ 정신이 있었기에 ‘한강의 기적’도 일으키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들의 이런 공로를 “ 디아스포라의 재일동포들이 피땀 흘리며 조국에 공헌했던 그 헌신적 내용을 청소년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수록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교과서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분석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조총련계 조선학교에서는 2003년부터 교과서를 대폭 개정하여 재일동포의 삶과 발자취를 사회 교과서에 21페이지나 기재했고, 재일동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지도하고 있다는 이 교수의 주장이다.

"우리 교과서는 관동대지진의 피해만 전할 뿐 재일동포의 고군분투와 조국 공헌, 동포의 인고의 삶에 대해선 일체 기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목이 말라 물은 마셨으면서도 우물에 대한 감사나 혹은 우물 판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은 한국 정서상 도리가 아닙니다. 정부의 정책이 ‘기민(棄民)’이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이 교수는 이어 "한국 정부가 재일동포 단체인 민단에 제공하는 지원금이 매년 80억 원 가량으로 알고 있다"며 "1946년 10월 한국계 재일동포들이 규합해 출발한 민단이 지금까지 모국인 한국에 보낸 천문학적 금액에 비하면 이자 수준도 안 된다"고 일갈했다. 이에 정부가 보은차원에서 재일동포들이 한국에 공헌한 사실을 재평가해 동포 차세대 교육 지원은 물론, 재일동포 고령자 복지사업과 모국체험 등의 다양한 복지사업을 전개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한국정부의 재일동포 지원은 북한이 조총련에 대한 폭넓은 지원을 통해 일본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자 뒤늦게 시동을 걸어 민단지원에 나선 데서 시작해 현재에 이른다. 출발선에서부터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얘기다.

위안부 돈보다 인간의 존엄성에 기인한 명예회복이 먼저

이 교수는 한‧일 외교에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는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일본이 위안부 해결로 10억 엔을 내 놓았지만 매우 조심스런 사안이다”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연세가 90대가 되신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게는 돈보다는 그들이 보내야 했던 지옥에서의 삶에 대한 명예와 존엄의 회복,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진정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문제 해결 방법도 바꿔야 돼요. 위안부로 돌아온 당신들을 제대로 보호하거나 치유해주지 못한 것은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였죠. 실제로 만신창이가 되어 고향에 갔지만 받아주지 않아서 산 속에 숨어 살다 몸이 썩어 돌아가신 분도 계시거든요.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무력하여 그들을 지키지 못했던 자성이 필요하지요. 그 분들은 우리들이 보호하고 끌어안아야 할 우리 국민이 아니던가요? 그러니 우선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그 분들의 존엄성 회복에 대한 노력을 다한 뒤, 1차 책임자인 일본이 강점기를 통해 국가로서 인권유린의 공간으로 내몰린 (식민지)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던 법적 책임 및 명예훼손에 대한 보상 방법을 논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이 교수는 우리 학계와 정부를 향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한국이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는 것은 기초과학 분야가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것, 취업과 관련된 인기 위주의 응용 기술, 성과주의에 치우친 투자가 문제라는 설명이다.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한국인 연구자들은 우수한 인재들이 많기에 기초과학에 진력하는 연구자를 장기적 안목으로 지원해야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수 있다는 당부다. 매년 노벨상이 발표될 즈음이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지만 실행되지 않는 해묵은 과제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이 교수의 지적이라 아프고 무겁게 다가왔다. kwj@sbiztod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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