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희정의 들꽃향기

김희정 원코리아 이사장
김희정 원코리아 이사장

최근 오사카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관광하고 싶은 도시 1위로 선정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국사람들에게는 오사카가 그저 관광하고 싶은 호기심 많은 도시로만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오사카에서 살아가고 있는 재일동포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 오사카의 히가시나리 구민센타에서 나는<자백>이라는 영화를 보았다고 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먹먹해진 가슴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 관한 내용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최승호 감독은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인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가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리게 되자 그를 중심으로 국정원에 의해 간첩 조작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찍었다.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내몰았던 가장 강력한 증거는 그의 여동생의 ‘자백’이었는데 그녀의 자백은 결국 국정원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허위 진술이었다. 검찰 측에서 주장했던 증거들은 위조로 밝혀졌고 결국 유우성씨는 무죄를 선고 받게 된다.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에 휘말려 구타, 폭언, 고문을 당했던 수많은 피해자들은 아직까지도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오사카시 이쿠노쿠에 살고 있는 이철씨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에 휘말려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멀쩡한 아들이 한국에 공부하러 갔다가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자 화병이 난 아버지는 53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고 3년 뒤에는 어머니마저 5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는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 때문에 늘 불효자의 심정으로 살고 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는 40년이 지난 후에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부모님과 그의 청춘은 누구에게서 보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영화 ‘자백’은 평범하고 힘없는 시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국가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커다란 상처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사실과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한 사람의 진정한 용기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가 2016년 가을에 개봉이 되었고 그 해 겨울에 촛불 혁명이 일어났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겠으나 촛불 혁명은 국민들이 진실을 알 권리와 행동하는 용기를 단합된 힘으로 보여 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최승호 감독이 무대 위에 올라와서 인사를 했다. 현재 MBC 사장이기도 한 그는 바쁜 일정 중에서도 사장이 되기 전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오사카를 방문했다고 인사말을 꺼냈다. 그는 영화를 만들면서 어려웠던 뒷이야기와 함께 시민들이 응원해 주는 뉴스타파 방송이었기에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었고 이러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 감사함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한국은 국가가 시민을 감시하는 나라가 아니라 시민이 국가를 감시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점점 우경화 되어가는 일본을 우려한 듯 일본시민들에게 이 영화가 일본사회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거짓 조작 사건에 가담해 진두지휘를 했던 사람들을 집요하게 취재하면서 “한마디만 말씀해 주세요. 미안하지 않으세요? ”를 외치던 언론인 최승호 감독의 말처럼 정말 빨리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억울한 피해자도 인권 유린의 피해자도 나오지 않는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내 마음에 먼저 작은 촛불을 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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