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태환의 경제단상(斷想)

중소기업투데이 하태환 논설위원
중소기업투데이 하태환 논설위원

내가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에 대해 지인으로부터 들은 것이 기껏 두어 달 전이었다. 그 때 나는 이 생소한 가상의 화폐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주식처럼 거래소까지 있고, 매일의 트레이딩에서 등락을 거듭한다는 말을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나는 내가 이미 까마득한 과거의 인간, 그야말로 고물화 된 인간, 한나 아렌트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눈부신 과학 기술의 진보 앞에 선 인간의 고물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충격을 받았던 사실은 이 가상화폐가 금이나 국가, 혹은 중앙은행과 같은 담보물이나 강력한 보증자가 없이도 수백 수천 달러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충격을 겪고 나서야 가상화폐에 대해 인터넷을 뒤지고, 신문이나 방송을 보니 이 가상화폐에 대해 연일 시끄럽게 떠들거나 동향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은 역시 자신이 관심이 있거나, 아는 것만 보이고 들린다는 말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일보 만물상에 ‘암호 화폐 세계 1위 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다지 길지는 않은 기사지만 상당히 심도 있게 가상화폐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동 신문의 경제면에는 ‘정부 비트코인 투기 대책 나섰다’는 기사와 함께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상 통화가 투기 대상이 되는 현실이다. 비트코인이 1100만원을 넘었다. 거래량이 코스닥을 능가하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며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법무부 등 관계 부처가 이 문제를 들여다볼 때가 됐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그러니까 가상 화폐를 둘러싸고 매우 이질적인 힘들이 충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사실은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인물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한 복판에서 불특정 다수가 네트워크로 연결해 새로운 디지털 화폐를 만들자고 제안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가상 화폐라는 사실이다. 특히 그는 “중앙은행이 화폐가치를 지켜줄 것이란 믿음은 배신당했다”고 한다. 그 기사를 쓴 박정훈 기자는 “최초의 암호 화폐는 반(反)정부 저항 정신의 산물이었다.”라고 단언하였다. 비트코인은 발행 주체도, 보증 기관도 없는 대신 집단 네트워크가 신뢰성을 보장한다. 비트코인 속에 태생적으로 내재한 탈 국가나 탈 권위의 속성은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사실들에 대해 무소불위의 통제와 폭력을 휘두르고자 하는 국가와 대립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낙연 총리의 발언 속에서 드러난 것은 곧 닥칠 막대한 간섭의 징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로서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에 반대하여 일어난 이 신기술의 유희가 보장해 줄 막대한 세금을 놓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총리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 또는 그것을 넘어선 최첨단의 기술들은 이미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상당할 정도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다. 최첨단의 기술이나 기업들은 이미 다국적 기업들이고, 영토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비트코인의 열풍 뒤에는 바로 그러한 국가의 통제 밖이거나, 영토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크게 기여한 것 같다. 그래서 박 기자는 다시 언급한다. “범죄 조직만 애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해킹이나 마약 도박 조직이 비트코인 지불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에 더해 한국에서 특히 그 열풍이 거센 이유는 무엇일까? 국경 없는 재화의 자유로운 이동은 바로 재산의 해외 도피의 다른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특히 한국처럼 북한 핵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재산가들에게는 비트코인이 비록 불안하고 미래가 약간 불투명할 지라도,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위기의 공포를 상쇄해 줄 훌륭한 도피처일 것이다. 내일이라도 뉴욕으로 가서 내 계좌의 비트코인을 달러로 환원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훌륭한 국제 화폐인가? 나는 비트코인의 열풍이 현대 예술품에 대한 투자 비슷한 광적인 면이 있다고 본다. 예술품에 무한한 가치를 준 것은, 거기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은 애호가들의 신념 덕분이다. 비트 코인은 현대 기술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결과물이다. 아마 머지않아 미국 달러 이상으로 안정된 화폐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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