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사회적 관심은 개인적 상처에서 시작됐어요”
배우에서 '폴란드로 간 아이들' 감독으로
문화·예술, 급변하는 사회로 다가가는 교두보

[중소기업투데이 김우정 기자]  배우였던 추상미가 영화감독이 되어 나타났다. 31일 개봉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제작하면서 문화·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공헌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사회적 책임, 사회공헌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생기게 됐나?

“사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됐어요. 제가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겪으면서 북한 꽃제비 영상을 보고 눈물을 많이 흘리게 돼요. 제 아이에 대한 애착이 다른 아이에 대한 아픔으로 확장이 되는 어떤 경험을 하는데 이때 사실상 관심이 시작된 거 같아요. 사회적인 것에 대해 먼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한게 아니라 이런 개인적인 체험과 아픔에서 출발해 영화로 만들고 하면서 이런 고민과 관심이 많아지고 한국역사와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저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의식들이 개인화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럴 때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거든요.”

-배우에서 감독으로 전환하면서 단점과 장점은 무엇인지.

“어려운 부분은 너무 많죠. 영화를 찍으면 필요한 기술들이 많아서 기술적인 부분을 공부하고 있어요. 그런 물리적인 어려움들이 있지만 사실 더 좋은게 많아요. 배우일 때는 이미지도 관리를 해야하고 세상과 분리된 채 나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지냈거든요. 감독은 직업자체가 세상과 소통해야하고 열려 있어야 해서 나를 열고 세상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영화를 제작하는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단지 상업성보다는 의미있는 영화로 만들려고 한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어요. 저희 아버지가 프란체카프카의 소설이 원작인 ‘빨간 피터의 고백’이라는 연극의 배우셨거든요. 그 연극 주제가 ‘인간에게 자유란 어디서 비롯되는가’ 였는데 당시는 70년대말 유신정권 시대라 대학생들이 거의 다 거리로 뛰쳐나가 시위를 할 때였어요. 그런데 이 연극 한편을 보는 것과 거리에 나가서 시위를 하는게 똑같은 걸로 인식될 정도였어요. 당시 거리에 시위가 줄어들 만큼 대학생들이 극장에 와서 이 영화를 보는걸 지켜보신 아버지가 그때 깨달으셨던 건 ‘아 좋은 예술작품 하나로 순간의 분노를 잠재우고 성찰을 하게 만들 수 있구나’ 이런 인식을 하셨던 거 같아요. 저도 연예인으로만 살다가 이런 부분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아 배우는 많지만 좋은 작품이 귀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 내가 배우의 포지션이 아닌 아티스트로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일에 기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최근 개봉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라는 영화는 어떤 건가?

“폴란드로 간 전쟁고아들의 이야기예요. 1951년도에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이 서울 이남지역으로 내려오면서 전쟁고아들이 남북을 합쳐 10만명 정도 발생하게 됐어요. 수용은 커녕 전쟁에 방해가 되기도 하는 이들을 김일성이 사회주의 동맹국가들로 보내게 되요. 그 중 1500명의 한국전쟁 고아들이 2차 대전에 가족을 읽거나 본인이 고아였던 300명의 푸른 눈의 폴란드 선생들에게 보내져요. 이 폴란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대리부모가 되어주게 되요.”

-그럼 한국전쟁과 분단의 상처에 대한 스토리인가?

“한국전쟁과 분단에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뭔가 생산적이고 아름다운 것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폴란드선생님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한국 전쟁 고아들을 낯선 타국의 아이가 아닌 자신의 유년시절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품어줬던 이야기를 이 영화에서 다루게 됐어요. 역사가 남긴 큰 상처가 전쟁고아의 존재라면 이 상처를 수습했던 이들도 있었다는 거죠.”

-영화 제작과정에서 있었던 특별한 경험은?

“남한 청소년들만 배우로 캐스팅한 게 아니라 조연배우들은 북한 청소년들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한 청소년들은 연기는 잘하지만 실제 그들의 채취나 느낌과는 다르기 때문이죠. 또 북한에서는 예술 의무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기 때문에 우리나라 민속적인 춤과 가락이 몸에 배어 있어요. 이런 것도 영화에 활용 하자고 생각해 40명의 탈북학생 모아 오디션을 봤고 그중 20명을 발탁했어요. 같이 영화를 위해 폴란드에 갔던 북한 학생들은 처음에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지만 폴란드 선생님들을 만나 따듯함을 느끼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도 털어놓으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어요. 탈북학생들과 저에게 치유의 여정이 된 듯해요. 산후우울증의 상처를 가지고 갔던 저도 폴란드 선생들이 가진 전쟁의 상처와 만난 것 같았거든요. 그 과정에서 서로가 위로를 얻은 듯해요.”

-분단과 통일에 대해 생각을 듣고 싶다. 

“2차 대전의 마지막에 있었던게 한국전이예요. 그런데 아직 해결이 안됐어요. 아직 분단상태에 있기 때문에 2차대전의 마무리가 아직 지어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죠. 세계 열강의 다툼과 냉전구도 속에서 생긴 비극이기에 마찬가지로 통일에 대한 여정에 있어서도 세계인의 도움과 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문화·예술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건 어떤건가.

“정부는 빠르게 바뀌고 움직이고 있어요. 어떤 시선으로 이 세상을 그리고 통일을, 북한을 바라보게 만드느냐가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런 프레임, 틀이 굉장히 중요한 걸 느꼈어요. 최근 북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슈가 있었고 북한이나 통일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하는가를 고민해야 되요. 사실 국민들이 따라갈 수 있어야해요. 시대를 같이 넘어야 하는데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죠. 이 영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이 거기에 대한 교두보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정부는 해줄 수 없는 역할이죠.”

-앞으로의 계획은?

“폴란드 선생들의 연세가 아흔이 넘으셨더라고요.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 이전에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급하게 지원을 받아서 다큐멘터리부터 만들었어요. 지금 개봉하고 있는건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예요. 앞으로는 같은 소재로 극영화로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그 작업을 앞으로 몇 년동안 하게 될거예요.”

-중소기업투데이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정상회담 이후로 탈북민, 통일, 북한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데 앞서 잠시 말씀드린대로 이런 시대적인 흐름과 변화에 일반 국민들은 물론 기업은 더더욱 빠르게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대기업 뿐 아니라 중견 중소기업도 마찬가지겠죠.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문화 예술이 접점이 되는 교두보 역할을 해야할 거고 기업에 계신 분들도 함께해주셔서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려요. 앞으로 중소기업투데이도 많이 사랑해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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