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일, 서울 인사아트센터, 이방자여사 서거 30주년 작품 전시
소장자 정하근씨 "미술관에 소장되었으면"
사군자, 화조도, 서예, 도자, 칠보 등 170점 내놓아

[중소기업투데이 이화순 기자]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1901~1989) 서거 3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유작을 재조명하는 이방자여사 작품전3~15일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2층에서 마련됐다.
이방자 여사는 장애인과 소외 계층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미술 작품과 공예품을 직접 만들었다. 사진은 칠보 작품을 만들고 있는 생전의 모습.
칠보 작품을 만들고 있는 생전의 이방자 여사 모습.
호산 안동오 선생과 함께 만든 '백자청화진사 매화문호'와 '청화백자 수자문호'
호산 안동오 선생과 함께 만든 '백자청화진사 매화문호'와 '청화백자 수자문호'

'이방자여사 작품전'은 이방자 여사의 아름다운 삶과 정신에 매료된 정하근 고은당 대표가 지난 30년간 줄기차게 이 여사의 작품을 수집해온 덕분에 이루어졌다.

전시에는 묵란 등 사군자와 화조도 50, 서예 18, 도자 34, 칠보 32, 기타 35점 등 모두 170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출품작들은 모두 이방자 여사가 한일 관계와 역사를 넘어서 한국에서 장애인과 소외 계층을 위한 기금 마련과 교육을 위한 과정에서 직접 제작하고 만든 공예품과 미술 작품들이다.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이방자 여사 작품전' 전시장 풍경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이방자 여사 작품전' 전시장 풍경

그 기조에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이 가득한 작품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대가들에게 배운 솜씨와 정신력에 예술적인 면모까지 갖고 있다.

남편인 황태자 이은(영친왕 1897~1970)과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았다는 채색수묵화 한매쌍작을 비롯해, 근대 한국화의 대가였던 이당 김은호와 월전 정우성에게 배운 솜씨로 그려낸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 글씨 國精民康’(국정민강), ‘大公無我’(대공무아) 등의 글씨와 칠보 작품, 호산 안동오·도천 천한봉과 함께 빚은 도자기, 백자항아리, 백자철사문병, 청화백자도자기, 1년에 걸쳐 제작한 칠보 혼례복 등 한점 한점 내공도 사연도 깊다.

영친왕과의 애틋한 사연을 담은 '한매쌍작'(왼쪽)과 채색수묵화 '포도' .
영친왕과의 애틋한 사연을 담은 '한매쌍작'(왼쪽)과 채색수묵화 '포도' .

황태자 이은과의 결혼, 복지의 어머니로 일생 마쳐

이방자 여사는 1901년 일본 황실 가문인 나시모토가의 마사코로 태어나 16세에 조선 황태자 이은과의 결혼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한일 관계 속에서 11세에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조선 황태자 이은에게나 이방자 여사에게나 정략 결혼은 고통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자 여사는 두 나라의 관계나 왕족간의 관계가 아닌 한 남자의 아내로 내조를 하며 살기를 희망하였다고 한다. 차분하며 배려심이 깊었던 이 여사는 남편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조용하고 세심하게 내조를 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큰 아들 진은 8개월만에 급사했고, 몇번의 유산으로 10년만에 아들 구(1931~2005)를 출산했다.

전시장 중앙에 놓인 '남녀 칠보 혼례복'이 눈길을 끈다.
이방자 여사가 1년간에 걸쳐 손수 만든 '남녀 칠보 혼례복'이 눈길을 끈다.

역사의 영욕 속에 황태자 부부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버림받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 왕족 신분이 상실된 두 사람은 1952년 발효된 대일강화조약에 따라 국적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환국하지 못하다가 1962년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 귀국해 창덕궁 낙선재에 머물렀다.

더욱이 해방 후 왕가의 재산이 몰수되어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고, 일본인이라는 차가운 시선을 벗어날 수 없었다. 1970년 남편을 여읜 이방자 여사는 국내외로 활발한 복지 활동을 하면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가 아닌 복지의 어머니로 일생을 마쳤다.

이방자 여사의 묵란도와 서예 작품.
이방자 여사의 묵란도(왼쪽)와 서예 작품.

생전에 이방자 여사는 내게는 두개의 조국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는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하근 대표는남편의 조국을 자신의 조국으로 알고 평생 봉사한 분이 잊히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일본에서 기념관을 짓고 싶다며 계속 연락해오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방자 여사의 유작 전체가 미술관에 소장되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다고 밝혔다.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욕의 시간을 흔들림 없는 꿋꿋함으로 견뎌내고 영친왕의 유지를 받들어 오로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한 아름다운 손길과 마음씨를 추모하며 소박하면서도 희망 넘친 예술혼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30년간 이방자 여사의 작품을 수집해온 정하근 소장자.
30년간 이방자 여사의 작품을 수집해온 정하근 소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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