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치환의 향기나는 이야기 –인연 緣-絆(きずな)

[중소기업투데이]

노치환 이수현의인문화재단설립위 사무총장
노치환 이수현의인문화재단설립위 사무총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황금빛 보름달이 중천에 떠오를 무렵, 들일에서 돌아온 엄마의 투박한 손에서 빚어진 송편이 가마솥에서 모락모락 솔잎 향이 벤 하얀 김을 뿜어냈다. 두 손위에 번갈아 하하 호호 불다 따끈한 송편을 한 잎 베어 무는 순간, 고소한 동부향이 입 안 가득, 행복에 젖은 내 마음은 어느새 둥근 달 만큼이나 부풀어 올랐다.

한국축구의 현재이자 미래인 손흥민에게 올해 추석은 더할 나위없는 행복 그 자체일 것이다.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축구결승에서 숙적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 환한 미소와 함께 한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금메달을 깨무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흐뭇했다. 그는 덤으로 체육․예술특기자에 주어지는 병역특례 혜택도 받았다.

“사상 최초 빌보드를 석권한 방탄소년단은 왜 안 되나.”는 형평성 제기 국민청원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그의 병역면제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차범근-홍명보-박지성 계보를 잇는 손흥민에 대한 국민적 성원, 그를 향하는 국민적 사랑의 근원은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지난 9월 러시아월드컵. 세계1위 독일과의 최종예선 후반종료 직전 손흥민의 두 번째 골은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프라인의 손흥민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전력질주, 아웃 직전의 공을 낚아채 독일골문에 밀어 넣던 쾌거. 추적을 포기한 채 허탈해 하던 독일 수비수의 모습은 더욱 대비된다. 혹자는 ‘병역면제를 향한 절실함’이라 할지 모르지만 필자는 결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국민적 성원은 그의 발끝에서 만들어지는 골만이 아닌, 축구선수를 초월한 손흥민 이라는 한 인간에게서 보여 지는 열정과 겸허의 인성과 인품의 결과이다.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를 거쳐 축구종가 영국 토트넘에서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스트라이크다. 그런 그에게서 교만이나 거만을 발견할 수 없다. 한국축구가 건져낸 황의조라는 월척은 자신을 내려놓은 채 묵묵히 2선에서 떠받친 손흥민의 양보와 배려의 결과였다. 손흥민은 필드의 스트라이크이자 공수의 리베로이자 마에스트로다. 손흥민은 울보다. 경기에서 이기면 기뻐서 울고 지면은 안타까움에 운다. 그만큼 매 경기 그는 혼신을 다해 자신을 불사른다.

한국축구는 진화하고 있다. 과거 ‘태권도축구’라는 오명을 들을 만큼 거친 투혼을 발휘하며 승부에 집착했던 한국축구는 이제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갖춘 선진축구로 진화하고 있다. 절대 져서는 안 되는, 꼭 이겨야만 하는 불구대천의 원수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선수들은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 명승부를 펼쳤다. 실력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오늘의 손흥민이 있기까지는 ‘손부삼천지교’로 일컬어지는, 어려서부터 축구의 기본기와 인간됨됨이를 중시한 철저한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다. 아시아에서도 변방이었던 베트남 축구를 ‘킹축구’로 업그레이드 시키며 베트남영웅으로 떠오른 박항서 감독의 배경에는 한국인 특유의 정(情)과 히딩크로부터 전수받은 교감과 소통의 ‘파파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한․일이 결승에 오르면(병역문제가 걸려 있는)황의조에게 양보하라”는 오사카 감바 동료선수들의 성원은 황의조의 인간승리이자 국경을 넘어, 국익을 초월해 한․일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공은 둥글다. 빈부와 피부색의 검고 희고를 초월, 공 하나는 전쟁을 일으킬 수도 전쟁을 멈추게 할 수도, 인종갈등을 종식하고 세계평화를 일궈낼 수도 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손흥민에게서 그 미래를 본다. 전 세계가 손에 손을 잡고 휘영청 한가위 보름달 아래 ‘강강수월래’를 외치는 그날을.

노치환 이수현의인문화재단설립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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