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치환의 향기나는 이야기

[중소기업투데이]

노치환 이수현의인문화재단설립위 사무총장
노치환 이수현의인문화재단설립위 사무총장

‘뿌우’ 뱃고동과 함께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온 배는 미끄러지듯 태종대를 돌아 해협으로 들어섰다. 어스름이 밀려드는 바다를 헤치고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배는 현해탄을 향한다. 100년 전 망국의 슬픔을 안은 채 선진지식을 얻기 위해 유학생들이 이 길을 떠났고, 불과 80년여 전 식민치하 이 땅의 선조들이 ‘징용’과 ‘정신대’란 이름으로 끌려가던 비운의 바닷길이었다. 꼭 15년 전인 2003년 7월, 한여름이 시작될 무렵 부산항을 출발하여 큐슈 하카다를 향하는 배위에 10대 17명의 소년범이 함께 승선해 있었다. 사형수와 재소자 대부로 알려진 삼중스님(전국교도소재소자교화후원회 회장. 당시 부산자비사 주지) 주선과 배려, 일본 후쿠오카 난죠인(南藏院) 주지 하야시 가쿠죠(林覚乗)의 협조, 한국의 법무부와 일본법무성이 허가한 유사 이래 최초일 한국죄수의 일본체험, 한마디로 일본정부의 이해와 배려가 없이는 불가능했던 한․일 합작의 선린과 우정의 결실.

“4박5일간의 일본체험은 천지사방이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깜깜절벽 천 길 낭떠러지 위 절망적이었던 저에게 구원의 손길이었습니다. 당시 삼중 스님의 ‘네게서 향기가 난다’는 격려가 세상사를 비관적으로만 보던 제게 희망을 일깨우는 죽비처럼 다가왔습니다.” 감수성 예민한 10대, 서울의 명문예대 문예창작과 수석입학을 한 문학도였던 그가 방황 중에 분출하는 젊음을 억누르지 못한 채 만취상태에서 은행 ATM기를 돌로 부수는 일탈을 저지르다 절도범이라는 고랑을 차고 말았다. “절마들 큰 세상 보고 나믄 인생이 우에(어떻게)바뀔지 아노!“ 당시 행사를 주최한 스님의 한 가닥 바램이었다.

지난주 경찰정장을 입은 한 청년이 안성 벽촌 제자의 사찰에 거처하는 삼중스님을 찾아왔다. 소년원 출소 후 역경에 처한 이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이 경찰이라 생각했고, 경찰공무원채용시험도전 만10년째 필기시험 합격불구, 소년범 출신 이력이 ‘천형’처럼 따라붙어 14번 면접에서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셨고, 지난해 22번째(35세) 그로서는 마지막이었을 수도 있을 도전. 면접관이 물었다. “이번에 떨어져도 또 도전할 건가요?”

경찰이 되고자 의경복무를 했고, ‘음주운전 전력만 있어도 경찰시험통과가 힘들다’는 자문에 10년을 각오했던 그. 이전까지만 해도 면접관 질문에 “ 경찰이 되어 세상을 바꾸겠노라” 당당하게 호기를 부렸던 그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다시 도전할지 모르겠지만)낙방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세상에 대한 선의 한 가지만은 끝까지 품겠다.”

15년 전 스님배려로 떠난 일본체험과 시계선물을 떠올린 그는 연꽃문양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사 선물하며 첫 월급 143만원에서 100만원을 “불우한 이웃에 써 주세요” 라며 스님에게 드렸다. 施人愼勿念, 受施愼勿忘(시인신물념, 수시신물망) 준 것은 잊어버리고 받은 은혜는 결코 잊지 마라( 후한 최원(崔瑗)). 순경 김대진.

이타심(利他心). 물욕이 지배하는 탐심의 시대! 오로지 자신만이 중심이 되는 이기(利己)의 시대, 소년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았고, 돌아오는 여행길에 소년의 무덤을 찾아 자신의 가방을 선물했던 톨스토이처럼 스님과 자신에의 약속을 지킴으로 보은했다.   노치환. 이수현의인문화재단설립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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