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 천용수 코스트그룹 회장
‘조선대외경제투자협력委’와
‘조선투자자문회사’ 설립 합의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천용수 회장
천용수 회장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대북사업가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때 대북사업의 맹주로 평화자동차가 명성을 떨쳤으나 현재는 그 위세도 한풀 꺾인 상태다.

이런 가운데 호주 여권으로 대북사업을 하고 있는 천용수 코스트그룹 회장이 국내 중소기업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7월17일 천용수 코스트그룹 회장은 북한 평양에서 조선대외경제투자협력위원회와 ‘조선투자자문회사’(영문명: DPRK Investment Consulting) 설립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북한으로부터 대(對) 북한 무역 및 투자의 유일한 창구로 지정된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에 투자하는 모든 기업은 조선대외경제투자협력위원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번 합의서 체결로 코스트그룹을 통하면 모든 비즈니스 거래가 바로 승인된다. 천 회장은 “이번 합의서에 따라 앞으로 서울과 평양, 중국 베이징과 선양, 미국 LA와 뉴욕, 일본 도쿄에 투자유치를 위한 법인을 세울 예정”이라며 “이미 중국과 호주의 2개 회사와 대규모 투자유치 컨설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선투자자문회사 설립은 천 회장이 26년간 뚝심과 끈기로 펼친 대북사업의 성과로 볼 수 있다. 그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중국 5개, 영국 2개 컨설팅 회사를 물리치고 합의서에 서명했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으로부터 신뢰가 두텁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 회장은 “최근 남한에서 10대, 20대들이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는 기자의 얘기에 “통일이 돼서 국격 제고는 물론 남북경제교류가 활발해지게 되면 한국의 청년들이 고민하는 청년실업문제도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며 함께 공동 번영해 나가는 파트너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상들의 북한 진출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천 회장은 “그동안 많은 해외동포들이 북한에 진출했다가 실패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실패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정확한 사전 정보 없이 투자하거나 편법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무엇보다 북한의 법질서 안에서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혼자보다는 여러 명이 컨소시엄 형태로 하면 실패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빼 놓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3년 8월 호주로 이민을 간 천 회장. 그는 사업 초창기 호주의 프리맨틀 항구에서 선원들의 ‘알부민’ 심부름을 하면서 돈을 모아 선식사업과 자원 재활용업을 전개하는 등 3년 만에 그럴싸한 회사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믿었던 회사 직원이 공금을 모두 날려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시 금고에 남은 돈은 1달러짜리 5장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1년 만에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이후 그는 호주 정착 10년째인 1992년 대북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북한의 광산업 전망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뒤 과감하게 도전장을 낸 것.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3년 동안 북한 전역을 샅샅이 뒤지며 시장조사를 하는 등 적지 않는 투자를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쓴 맛을 봐야했다. 북한 당국은 광산개발에 따른 이익금을 코스트그룹과 북한이 7대3으로 계약한 것을 뒤집었고, 홍콩 투자은행이 중간에서 장난을 친 결과다.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했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 없었다. 폴리우레탄 폼(스펀지), 가발, 세탁비누, 세숫비누, 가루비누 공장 사업에 투자를 이어갔다. 1995년 폴리우레탄 폼을 생산하는 삼흥코스트합영회사는 서방에서 투자한 북한 최초의 합영회사로 기록된다. 하지만 성공의 달콤한 맛을 보기도 전에 또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평양 사무소 직원의 개인비리가 천 회장에게 불똥이 튀었다. 국정원 프락치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썼다. 이런 가운데 천 회장이 투자한 광산이 대홍수로 인해 산사태가 나는 등 그야말로 3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그는 특유의 뚝심으로 북한 당국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등 정성을 다했다. 북한 당국도 천 회장이 그동안 보여준 신용과 신뢰에 보답했다. 북한산 아연을 해외에 팔수 있는 기회를 줬고 인도네시아 산 생고무를 북한에 납품하는 사업까지 획득했다. 2003년에는 북한 지역에 설탕 공급 독점권을 따내는 한편 러시아에서 구입한 디젤유와 벙커시유 등을 북한의 광산지역에 공급하고 평양과 함흥에 여러 개의 주유소도 설립하는 등 그의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코스트그룹은 최근 대(對) 북한 무역 및 투자의 유일한 창구로 지정되면서 그의 대북사업도 빛을 발하게 됐다. 코스트그룹의 연간 매출은 대략 2억4000만 달러. 북한과 한국, 호주(중국) 등 3개국에서 차지하는 매출이 3:3:4의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다. 그는 대북사업을 하면서 누구에게나 늘 “재밌다”는 말로 대신한다. 즉 북한 진출은 경쟁이 없어 스트레스가 그만큼 적고 아울러 새로운 시장에 대한 흥분과 기대를 할 수 있는 시장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상상만으로 북한에 진출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천 회장의 설명이다. 그가 남북한 평화구축시기에 어떤 일을 벌일지 기대된다.     박철의 기자  tie24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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