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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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혀
초조하게 서성이는 한 마리 범의 모습,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보아도 철책가를 오가는
그 동물들의 번쩍이는 눈.
그 무서운 분노, 괴로움에 찬 포효
앞발에 서린 끝없는 절망감
미친 듯한 순환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박철의 발행인
박철의 발행인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일부이다.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에게 딱 들어맞는 현실이 아닌가 싶다.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시간 단축이라는 차꼬[걷지 못하도록 죄인의 발을 묶어놓는 형구(刑具)의 하나]에 묶여 분노와 괴로움에 떨고 있다. 이미 체감온도는 40도를 넘어서 분기탱천이라는 분위기에 몇 도까지 올라갈지도 가늠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장대환 매일경제 회장은 지난 2017년 2월 중앙회 조찬포럼에서 “재벌에 치이고 정책에 소외된 중소기업인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야 언론에서 그나마 관심을 갖게 된다고 했다. 숟가락만 들고 있는 중소기업계를 향한 질타였다. 이날 모인 500여명의 중소기업인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대기업 광고수입으로 먹고 사는 메어저급 언론사 대표가 한 이 말은 그냥 쉽게 나온 말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광고주의 눈치를 보며 고민 속에 내뱉은 말일 것이다.

그리고 1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중소기업계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은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중소벤처기업부 설립 등 친(親) 중소기업정책을 펼쳐왔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대통령의 공약인 만큼 당연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지금 와서야 중소기업계가 반발한다? 앞뒤가 맞지 않다. 문제는 대통령 공약집을 재빨리 분석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그 중심은 당연히 중소기업중앙회다. 그럼에도 중앙회는 1년 넘게 입을 닫고, 아무런 말도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에 대한 지역별·업종별 차등적용 등 다양한 출구전략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사이 최저임금 인상은 결정됐고, 근로시간단축 관련 법안은 통과됐다. 뒤늦게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중소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뒷북의 전형을 보여줬다. 급기야 전 박상규 전 중앙회장이 박성택 회장을 찾아가 ‘중소기업연구원’과 ‘정관개정’, ‘노란우산공제’등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한 원로의 외로운 발걸음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게 아닌가.

한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대통령과 '호프팅'을 비롯 기회가 되면 접촉했다. 각계 요로를 통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애로를 전달하고 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최고의 스타가 됐다. 자신들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 영하의 추위를 뚫고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는 등 생존권 투쟁을 벌이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런 노력 끝에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냈다. 지금까지 보여준 중앙회의 행보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이런 가운데 차기 중소기업중앙회장을 노리는 후보자들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까지 거론되고 있는 후보들만도 4~5명. 이 가운데 전임 김기문 회장을 불러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김 전 회장은 아직 입장을 보류하고 있지만, 전혀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25대 집행부가 계속된 압수수색 등으로 중앙회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 그래서 구원투수를 투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김 전 회장을 제외한 여타 후보들은 차기 중앙회장 재목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크다. 슬픔을 넘어 우리를 아프게 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외부의 명망가를 영입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불가능하게 됐다고 하소연한다. 현 중앙회가 정관개정을 통해 외부영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악수를 뒀기 때문이다. 350만 중소기업을 대변한다는 중앙회가 8만중소기업협동조합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추락했다는 업계의 쓴소리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게 어디 이뿐이랴. 홈앤쇼핑에 이어 중앙회가 경찰과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해명은 커녕 변명조차 없었다. 중앙회 소유의 중소기업연구원을 빼앗기고, 머지않아 노란우산공제 사업도 정부가 도로 빼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회는 무사태평이다. 홈앤쇼핑도 실적이 고꾸라지면서 주주들은 한숨이다. 마치 중앙회 앞 텅 빈 포장마차에 쪼그리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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