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전통'과 함께 성숙한다.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방천시장(김광석길)에 들어선 프랜차이즈 카페
대구의 방천시장(김광석길)에 들어선 프랜차이즈 카페 모습. 이 사진은 본문 내용과 큰 관계는 없습니다. <사진=평화뉴스>

최근 주말 동네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아귀찜집을 찾았다. 후배 부부를 초청해 저녁을 사줄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 장사 잘 되던 가게는 간판을 내리고, 내부 공사 중이었다. 그리 큰 집은 아니었는데 길목이 좋아 점심이나 저녁때가 되면, 문전성시였다. 이젠 그 기억만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탱탱한 속살의 잘 다듬어진 반건조 아귀에 갖은 양념을 해서 콩나물, 미더덕이 넉넉히 들어 있어 좋아했다. 그 맛의 추억을 떠올리며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다른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거기서 동네 어른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가게 주인이 보증금과 임대료를 턱 없이 올려서 다른 동네로 쫓겨 가듯 떠났다는 것이다.

결국 그 아귀찜집 세입자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희생자였다.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 말이 꼭 들어맞았다. 그 집은 ‘홍대 앞’이 괴물처럼 확장되면서 비교적 월세가 싼 망원동까지 집어삼키며, ‘망리단 길’이라는 억지로 꾸며댄 이름의 길 끄트머리에 있었다. 점점 주변이 인기를 끌면서 갈수록 사람들이 몰린 탓에 가게 주인은 아귀찜 가게를 내보내고 스테이크 집을 들인다고 한다. 아귀찜 가게보다 배나 넘는 보증금에 역시 배가 넘는 월세의 유혹을 집 주인이 이기지 못한 것이다.

최근 기사에 쓴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불만과 생존을 위협 받는 불안이 떠오른다. 어쩔 수 없이 자본 측면에서 ‘을’이나 ‘병’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위기가 바로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우리 이웃들에게 겁을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과연 ‘백년가게’가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난달 뜬금없이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 육성사업으로 ‘백년가게’를 내놓았다. 소상인·소기업 대상으로 11월 말까지 공모에 들어갔다. 30년 넘게 영업하는 도소매 점포나 음식점들 중에 성장잠재력을 확인, 100년 이상 존속·성장할 수 있도록 육성·지원한다는 얘기다. 물론 오랫동안 한곳에 자리 잡고, 고객들과 숨쉬어온 ‘노포(老鋪)’가 있다면, 좋은 일이다. 지역 명소로는 물론 지역 상권 생태계를 다시 만들어 거리에 활력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년상인 희망자, 청년몰 입점 예정자 등 청년들의 기술 전수와 창업과도 연계시킨다는 방침이라 더 반갑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는 100여개를, 2022년까지 총 1300곳을 선정한다고 한다는 점이다. 백년가게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 잘 아는 공무원에게서 나온 ‘공무원표 탁상 기획’이라는 것이다. 현장을 찾아가 점검해야 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줄 세워서 백년가게를 만들 셈인가. 숨 한번 크게 쉬고 넉넉하게 생각하자. 자생적인 백년가게는 서울 곳곳, 지방 골목골목에서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정부는 조용히 지원만 하자. 백년가게가 생길 수 있도록 법과 제도만 마련해 주자. 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릴 적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골목길, 납작한 1층집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할머니 손을 잡고 찾았던 전통시장은 아파트 숲으로 변했다. 하다못해 예전 봄이면 목련에 라일락 꽃 향기가 가득하고, 초여름 빨간 장미가 물들었던 담장은 찾을 수 없다. 땅 주인들의 개발이익과 공무원들의 도시계획 편의성 아래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들은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뭣이 중한디? 이제는 추억을 찾아야 할 때다. 늘 함께 해서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제 되찾아야 한다. 백년가게도 그헌 환경에서야 자리잡을 수 있다. 그래야 도시도 전통과 함께 해야 성숙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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