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통신/박철의 중기투데이 대표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박철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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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구한말(舊韓末)인 1860대다. 조선은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국가의 기강은 바닥까지 떨어졌고 민생은 파탄에 이르렀다. 전국 각지에서 농민봉기도 일어났다. 함경도에서는 극심한 기근이 덮쳤다. 반면 서구 열강들은 식민지 확보를 위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서슴지 않았다.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민초들은 살길을 찾아 연해주로 눈을 돌려야 했다. 이렇게 시작된 탈 조선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서도 계속됐다. 독립 운동가들도 일제의 핍박을 피해 연해주로 무대를 옮겨 독립운동을 전개해야 했다. 당시 연해주 일대 고려인들은 17만여명. 이들은 또 다시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2500여명이 총살을 당하고 2만5000여명이 한겨울 허허벌판에 버려지면서 희생당하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된 고려인 최승준 선생과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민긍호 선생의 후손인 빅토르 최와 데니스 텐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빅토르 최는 1990년 8월 15일 교통사고로, 데니스 텐은 지난 7월 19일 괴한의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이틀만인 지난 21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발라샥 스포츠센터에서 거행된 영결식에는 5000명이 넘는 추모객이 참가, 데니스 텐과 눈물의 이별을 고했다. 여기는 7년 전 데니스 텐이 가장 행복한 미소와 함께 첫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피겨 영웅의 반열에 올라선 곳이기도 하다. 이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딴 데니스 텐. 그의 ‘한국사랑’은 각별했고 유별났다고 한다. 그는 2010년 민긍호 선생의 묘를 방문하고 민 선생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으며, 한국 역사와 뿌리를 배우는데 지성을 다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 그러나 대회를 앞두고 오른쪽 다리 인대를 다쳐 수상권에서는 멀어졌지만 “나의 뿌리인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밝혀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또 하나의 영웅 빅토르 최. 1962년 6월 21일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빅토르 최는 5살 때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다. 그림에서부터 조각, 음악 등 예술에 남다른 재능을 가졌던 그는 1982년 키노(KINO)라는 록 그룹을 결성한다. 당시 빅토르 최가 발표한 <혈액형>은 수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이 앨범은 당시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관여한 소련 사회에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어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1990년 6월 24일, 모스크바 올림픽 주경기장에는 무려 10만여 명이라는 인파가 빅토르 최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관중들은 빅토르 최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변화와 자유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경기장 주변 경찰 병력도 누를 수 없을 정도로 컸고, 곧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빅토르 최는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인 KGB가 감시하는 최고의 요주의 인물이 된다. 이러던 터에 1990년 8월 15일 의문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여덟 살이었다. 빅토르 최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소련의 젊은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소련 전역에서 다섯 명의 여성이 그를 그리워하다 자살했으며, 수많은 팬들이 빅토르 최의 시신이 안치된 시립병원에 몰려들었다. 병원은 곧 빅토르 최의 추모 인파와 팬들이 던진 장미꽃으로 뒤덮였고, 그의 죽음에 흥분한 팬들의 성화로 장례식이 연기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고려인 두 명은 이렇게 25살과 28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은 늘 사람들의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은가 보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죽음이 짠하게 들려온다.   박철의 기자 tie24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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