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의지 반영 해석
곧 동반성장 위한 투자-일자리 대책도 예상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10년 넘게 이어진 '반도체 백혈병' 사태를 풀기 위한 삼성전자의 결단이 나왔나.
올해 안에 피해자 보상을 모두 마무리하고 삼성전자를 괴롭혔던 '악덕기업'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의도에서다. '촛불혁명' 등 사회적 변화와 함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순환출자 해소, 무(無) 노조 경영 폐기 등에 이은 그룹 전체의 방향성을 정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고 전해진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경제 선두그룹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근시일 내에 투자와 일자리 확대의 동반성장 방안도 발표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17일 백혈병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보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과의 2차 조정을 위한 공개제안서를 검토한 끝에 '중재'를 수용하겠다고 22일 발표했다. 백혈병 피해자 보상과 사과, 재발방지 시스템 마련 등을 제3의 기구인 조정위에 일임하고 어떤 중재안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반올림'도 중재 방식을 수용하기로 했다. 양쪽 모두 조정위에 중재안을 백지위임하고 합의를 이룬 것이다.
이에 따라 2007년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근로자였던 고(故)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빚어진 백혈병 사태는 11년 만에 종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삼성전자의 이번 결정에는 서로에게 상처가 컸던 사회적 갈등을 서둘러 해결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아이 둘을 가진 아버지로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며 반도체 백혈병 논란 해소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석방 이후 재계 맏형이자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걸맞은 쇄신안을 준비해 왔다고 전해진다.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위한 계열사 지분 매각과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직원(90곳, 8000여명)의 정규직 직접 고용 등이 그 증거다. 반도체 백혈병 '중재 수용'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백혈병 문제는 2007년 3월 삼성 반도체3라인에서 근무하던 고 황씨의 안타까운 사망으로 불거졌다. 2008년 3월 '반올림'이 만들어졌고, 반도체 생산라인에 대한 역학조사도 진행됐다. 2012년 11월부터 삼성전자의 제안으로 2년여간 반올림과의 대화가 이어졌으나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2014년 10월 진보 성향의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은 조정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고 이듬해 7월 조정위의 권고안이 나왔다. 삼성전자는 1000억 원을 출연해 160명의 신청자 중 보상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40명을 제외한 120명에게 보상했다. 그러나 '배제 없는 보상'을 요구한 반올림과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 2018년 1월 김지형 위원장이 삼성과 반올림 양측으로부터 합의 노력을 재개하고 싶다는 입장을 전달받으며 대화에 물꼬가 트였다. 삼성전자도 조속 해결을 원칙으로 정하고 실무작업을 진행해 '중재 수용' 합의에 이르렀다.
최종 중재안은 9월 말쯤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정위와 삼성전자, 반올림은 오는 24일 3자 대표간 2차 조정 재개 및 중재방식 합의 서명식을 갖는다. 이후 8~9월 두달간 중재안 마련 과정을 거친 뒤 이르면 9월 말 최종 중재안을 발표하는 것이 목표다. 보상은 오는 10월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보상안을 기준으로 2028년까지 지속적인 피해자 보상을 실시할 예정이다.
삼성 안팎에선 그룹 총수의 결단 없이는 풀기 어려웠던 여러 난제들이 지난 2월 이 부회장 석방 이후 신속히 풀리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주식 액면분할(50대1)을 통한 국민주(株) 만들기, 그룹 지배구조 개선, 계열사 노조 인정, 반도체 공장 사망 근로자 피해 보상과 사과 등은 이 부회장의 의지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이다.
재계에선 삼성의 쇄신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다음달부터 9월까지 그룹 차원의 사회공헌 계획과 대규모 투자, 일자리 확대 방안 등이 발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의 한 인사는 "삼성전자의 이같은 결정이 다른 대기업의 움직임에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본다"면서 "사회와 국가가 새로운 방향과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재벌기업도 그에 응해야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는 전환점이라는 인식"이라고 평가했다.